김아미
‘남다르게 공부해서 남다른 대학에 가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자 엄마의 동경의 대상이 매번 다짐한다던 문구이다. 나도 나름 바쁘게 살아가고 싶었다. 모든 것에 애매한 사람, 그게 내 인생이었으니까. 1학년 2학기를 자유학기로 정한 우리 학교에서 나는 칼림바와 창의미술 중 한 가지를 골라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선택한 것은 창의미술이었고, 첫 단계는 소묘였다. 늘 연필로만 그림을 그리던 나에게는 잘 맞는 수업이었고 그만큼 자신 있었던 부분이었다. 차분하게 연필을 들고 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꽉 붙잡은 채로 원기둥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옆은 정육면체, 구 순으로. 모든 그림을 마친 나에게 온 것은 약간의 칭찬과 나와는 비교되지도 않을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이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자리일 지도 모르겠지만 나라는 사람은 공부에도, 운동에도, 그림에도, 심지어는 키조차도 딱 중앙에 위치하는 사람이다.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도 항상 제자리인 것처럼 드러났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꿈일 때, 그러나 모든 것에 뒤쳐진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지칠 때 어떤 길을 따라야만 할지 선택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더욱 자신이 만나는 다른 사람의 모습, 혹은 특징에 따라 겉모습, 혹은 내면까지도 모두 바꾸게 된다. 친구에게는 마냥 웃음 많은 사람이, 가족에게는 어리광 부리는 막내딸로, 혹은 수업시간에는 조용한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낸다. 어떠한 형태로 변한 것이 내 모습인지, 애초에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것이 대부분이나 더욱이 사람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사전에 정의하지도 못할 나이라 마음에 와닿지조차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는 행복에 손을 올려 말할 수는 있다. 행복하고 싶다라는 작은 바람 한 마디, 행복한 것처럼이 아닌 행복한이 되고 싶어 행복한 척 살아간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일 뿐이고, 전세계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그런 모습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자신을 뛰어나지 못한 사람, 그저 중앙에만 머무르는 혹은 그보다 더 아래에 머무르는 사람으로 생각할 뿐이다.
처참히 세워놓았던 정상의 무게가 급격히 하나씩 떨어질 때 순간적인 행복감은 오히려 더 컸다. “너는 어짜피 안 되니까 너 빼고 놀게”라는 말이나 아예 물어보지 않음이 두려워 함께하기 위해 항상 따라다녔다. 주도적이지 못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막상 나서지 못했다. 이런 나라, 이것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나라서 끝없이 무너진다. 이미 충분히 공부에 질린 나와는 다르게 누군가는 인생을 길게 보는, 혹은 열정적으로 살 용기와 희망과 함께 살아간다. 직면 대신 회피하는 나 자체가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확실한 위치에 올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고 되고 싶다. 남다르게 공부해서 행복감을 얻는다면 나는 그 길을 그대로 따를 자신 있다.
이것저것 다 도전해보며 내 길을 찾고 싶었다. 그 이유 때문이라도 매일 밤 영어 수업을 듣는다거나, 선도부에 뽑힌다거나 도전이라는 것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앞길을 막던 것이 내 실력을 더 이상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 그들로 인해 빼앗기는 능력들. 2주 전부터, 학교 체육시간에는 넷볼 수행평가를 위해 각자의 포지션을 맡아 넷볼 연습을 하고 있다. 왠지 모르게 할 때마다 약간의 쾌감을 얻을 수 있었고 공을 잡을 때만큼은 나 또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학생이 부족해 내가 대신 들어가는 나의 서브 팀에서 나는 ‘골 디펜스’를 맡고 있으며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가장 넓다. 나 자신이 유일하게 잘한다고 생각하는 포지션이지만 오히려 나를 포함한 나의 메인 팀에서 나는 가장 이동이 없는 ‘골키퍼’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내 자신에 대한 파악이 끝난 이후였던지라 만족하지 못했지만 팀의 조화를 위해 순응하기로 했다. 이후, 또다르게 인원이 부족했던 팀은 내 친구를 데려갔다. 인기 많다는 이유로 공을 잘 받지도, 던지지도 못하면서도 그저 경기에 합류한다는 사실이 당연하다는 것이 부당하다고밖에 느껴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난 체육관 옆에 앉은 군중이 된다. 그리고 난, 이것이 내가 유일하게 외칠 수 있는 마지막 주문임을 명심한다. ‘나 없이도 세상은 평화롭다. 부당한 일이 있어도 세상은 영향 받지 않는다.’ 글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할만큼 사회는 복잡한 감정들과 모순으로 가득찬다. 거미줄처럼 끈끈한 사건들이 뭉쳐 사회를 만들기에 사람들은 단순한 포지션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밝혀내는 과정에 놓여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