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조선왕조실록 근대 편 6

빼앗긴 나라의 책임은?

by 제이티


19. 항일 의병

고종이 퇴위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왕의 자리를 넘기고 꼭두각시 순종을 왕으로 앉혔으니 이제 군대를 해산시킬 차례다. 이른바 정미 7 조약.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과 경찰권마저 통감부에 넘겨준다는 무시무시한 조약이다. 군대 해산식이 열릴 계획인데 차질이 생긴다. 대대장 박승환이 군대 해산에 항의로 권총 자결을 한 것이다. 소식을 접한 병사들은 즉각 무장하고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인다. 의병 부대와 대거 합류해서 을사 의병과 해산 군인들이 만나 드디어 항일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정미의병으로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의병이 연대되고 이제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하나의 팀이 되어 하나의 적을 향해 진격한다. 다만 아쉬운 건은 동학농민운동 때 힘을 합치지 못하고 너무 늦은 후에나 힘을 합친다는 게 소를 잃어봐야 외양간을 고치듯이 말이다. 연합의병은 서울 진공 작전 진행하나 결국 패하고 풀뿌리 흩어진다. 의병은 용맹했고 나라를 향한 마음 또한 투철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자연발생적이고 비조직적인 의병은 우수한 화력으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병을 폄하하지는 말자. 그들도 이미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어리석은 게 아니라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이다. 손쉽게 의병을 토벌한 일본은 이제 마지막 단계에 진입한다. 이제 간판을 바꿀 차례


20. 안중근


황제라는 지위도 대한제국이라는 호칭도 껍데기만 남은 상황 일반은 껍데기마저 거둬들이기 위해 다음 스텝을 진행한다. 저항을 막기 위한 법들이 만들어지고 나라의 부를 빼먹고 경제의 부속물로 만들기 위한 조치들이 이어진다.


이제 간판을 바꾸기 위해 마지막 절차를 밟는 중 조선의 한 청년이 등장한다. 이름은 안중근 을사조약 고종의 퇴위, 군대해산을 겪으면서 안중근은 힘을 키워서 조선을 회복시키는 것보다 지금 힘을 다해 싸우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대일 항전을 위해 연해주로 망명하고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격투를 벌이기도 한다. 1909년 11명의 동지들과 손가락을 자르고 맹세를 나눈 후 드디어 결전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 치밀한 준비 끝에 거사를 진행한다. 안중근과 일본인인 양 환영 인파에 섞여 역 안으로 들어가 열차에서 내린 이토를 저격한다. 안중근이 쏜 총알 세 발은 모두 이토의 몸에 박혔다. 이어 이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머지 세 발은 이토와 가까운 세 사람에게 쏘았다. 그리고 꼬레아 우라!! 를 외치며 당당하게 체포되었다. 메이지 유신의 영웅이자 조선침탈의 원흉 이토는 그렇게 모든 걸 다 가진 줄 알았으나 대한제국 청년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 이어 안중근은 감옥에서도 법정에서도 시종 의연하여 주변을 감동시켰다. 젊은 시절 메이지 유신에 적극 참여했고 일본을 제국주의 강국으로 만든 이토는 일본의 영웅이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하지만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다 조선의 영웅에게 생을 마감했다. 안중근의 행위는 실정법 상 ‘테러’였지만 대한의용군 참모중장이라는 자격으로 이토를 죽인 것이기에 전쟁포로로 취급해 달라고 당당히 외쳤다. 테러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밝힌 것은 아직 일본이 공식적으로 조선을 합병하기 전에 거사했으므로 전쟁으로 보는 게 옳다. 그는 죽을 때까지 당당한 태도와 소신을 굽히지 않았지만 그의 논리는 몇 개월 만에 근거를 잃게 된다. 몇 개월 후 이제 나라가 사라진다.


21. 한일합방


이토의 죽음에 일본의 여론을 격양되고 이제 조선을 병합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껍데기밖에 없던 대한제국은 이제 그 껍데기도 사라지게 된다. 초대 총독으로 데라우치가 부임하고 1910.8.29 정식으로 조선이라는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는 없어졌다. 나라가 망한 것이다. 조선왕조는 건국 519년 만에 27명의 왕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한일합방에 공헌한 자들은 상을 받았고, 반대한 자들은 자결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을사년 같은 격렬한 반응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일본에 10년 20년 지배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어느새 식민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제 일본에게 맞선다는 것은 무모한 달걀로 바위 치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토록 무모해 보이는 승산이 1프로도 안 되는 독립을 위한 투쟁이 35년간 이어졌다. 누군가는 가산을 정리해 국경을 넘어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고 누군가는 지하조직을 만들고 독립운동을 전개해 갔다. 독립투쟁의 길은 고문과 투옥 총살과 교수대 그리고 가족들의 고난이라는 예정된 길이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은 1프로의 가능성과 희망을 가졌던 선조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다.


22. 빼앗긴 나라의 책임은?


나라를 빼앗긴 데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고종과 매국노인 이완용에게 물어야 할까? 시곗바늘을 돌린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한 가지 고려할 사항은 조선은 왕국이었다는 사실이다. 나라를 빼앗겼다고 말하려면 조선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조선 국민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이 한 일 합병을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빼앗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은 공화국이 아니라 왕국이므로 그런 말은 어울리지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선의 지배층이 일본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소유자가 왕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외형상 왕국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즉 왕실만 집중적으로 공략해 쉽게 나라를 빼앗을 수 있었다. 왕국이라 하더라도 유럽 국가처럼 의회가 있었다면 주권의 소유자가 왕과 국민의 의회라면 일본이 적어도 조선을 통째로 삼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10년 전에 독립협회의 입헌군주제 제안이 아쉬울 뿐이다. 물론 의회가 있어도 결국 일본은 의회를 장악했겠지만 수백 명의 의회로부터 쉽게 동의받기는 어렵다. 더구나 나중에 조선이 해방되었을 때도 국제 정치 무대에서 발언권이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왕실에 집착한 왕이 진정 존경받거나 동정을 받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을 불쌍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지금이 왕조시대인지 민주주의 시대인지 의심스럽다. 병자호란을 맞았을 때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면 더 많은 조선 백성이 죽음을 당했겠지만 일본의 압력을 고종과 순종이 끝까지 거부했다고 해서 조선 국민들이 특별히 피해를 입었을까? 한일합방의 원인을 못된 일본에게서 찾으면 역사를 배우는 의미가 없다. 진정한 치욕은 못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못난 지배자를 두었다는 사실이다. 과거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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