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길들여 지길 바래요
그동안 그댈 너무 많이 닮아 있었나 봐요
지워질 때도 됐는데..-그래서 그대는
이 가사가 무슨 말이었는지 무슨 의미였는지 이제야 와닿는다. 나는 누구였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되어야만 했을까?
사람은 저마다 상실과 지울 수 없는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질문이 나의 지난날을 괴롭혔다면 어떻게 종착점을 찍을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을 긴장시킨다. 어떻게든 시간은 지나가고 하루는 흘러가고 내일이 오는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어제와 다름없는 삶을 반복을 한다면 이 또한 인생이라면 인생은 어디까지나 대단한 허무이자 ‘텅 빔’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이 쓸쓸함을 지우기 위해 ‘영혼’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다음 세상이 있다면 어떻게든 삶을 연장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 중 하나가 살고 싶어서가 아닐까?
온기가 없는 삶. 색깔이 없는 삶. 설레지도 흥분되지도 끌리지도 않는 나날의 반복에서 무언가를 떠올리는 마취제가 아마 지금 내가 쓰는 글이자 ’ 이야기‘가 아닐까?
무의미한 삶에서 대단한 공허와 텅 빔을 이겨내기 위한 것이 꿈과 이야기라면 이제는 애석하게도 그 의미를 깨달은 바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이 나에게 어떠한 바스락거리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너무나 길들여져 있었나 보다.
나는 나라는 사람을 사랑하기가 그토록 힘든가 보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행복이 굴러와도 발로 차버린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음을.. 분명히 알고는 있지만 역시 삶이란 알고 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는 대로 펼쳐지는 삶이라면 ‘평안’이라는 단어가 찾아올 수 있으련만.. 이 역시도 또 하나의 이야기이자 허상이기에... 알고 있음과 깨달음은 한 글자 차이지만 너무도 큰 차이기에.
언젠가 평안해질 미래의 나가 지금 차가워서 굳어버린 나에게 따뜻한 온기를 품어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왜 신은 감정을 주시고, 무뎌지는 법을 배우라고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