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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Sep 05. 2020

남이 잘되면 배아픈 이유-최후통첩 게임

 엄마가 저녁으로 치킨 한 마리를 사줬다. 당연히 유교 국가답게 형은 냉큼 닭다리를 하나 집어 먹은 다음 이따 학원 끝나고 올 동생을 위해 나머지 닭다리 하나를 남겨야 된다는 마음이 들기도 전에 또 다리를 하나 더 집어서 입에 넣고 말았다. 먹다 보니 남은 건 목뼈랑 날개 조각. 때마침 동생이 집에 와서 내 닭다리는 어디 있냐고 따지며 물었다. 화가 난 동생은 다 필요 없다며 쓰레기통에 남은 치킨을 버리지 않는가? 집에 돌아온 엄마는 버려진 치킨을 보고 귀한 먹을 것을 버렸다고 ‘다음부터는 치킨 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고 하신다.


욕심 많은 형 때문에 치킨을 두 번 다시는 못 먹게 되는 것인가?     


 치킨을 버렸던 동생은 쫄쫄 저녁을 굶었다. 서러웠는지 배가 고팠는지 동생은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만약 남은 날개랑 목이라도 먹었으면 맛이라도 보고 배가 덜 고프지 않았을까? 어쨌든 치킨은 치킨이니까 말이다. 사실 동생은 다리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아빠는 회사의 인사팀장으로 계신다. 성과금을 분배해야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해야 좋을지 고민이다.


A 안은 성과금 S A B에 따라 1500만 원 1000만 원 500만 원 배분하는 안이고

B 안은 각 1000만 원 700만 원 400만 원으로 배분하는 방안이다.     


당연히 A 안은 전체적으로 모든 직원의 급여는 상당 수준으로 오르지만 직원 간의 격차는 커지는 규모였다. B 안은 급여는 소폭 오르지만 격차는 작아지는 구조다.

직원들은 어떤 안을 했을까?     

예상외로 B 안이 선택되었다. A 안이 더 임금을 많이 받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당연히 A 안은 선택해야 할 것이고 먹다 남은 치킨이라도 먹어야 이득일 텐데 말이다.

     

이러한 결과를 알려주는 놀라운 법칙이 있다.     

바로 최후통첩 게임.     


두 명의 참가자를 모집하고 둘 중 한 사람에게 100달러를 주고 그 돈을 다른 사람과 나누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때 배분권을 가진 A가 자신이 99달러를 갖고 B에게 1달러만 주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단 이때 B가 거절하면 둘 다 돈을 못 받게 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1달러라도 챙겨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거절했다. 어차피 공돈인데도 말이다.     

최후통첩 게임은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흔히 고전 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으로 정의하지만 위의 실험은 기존의 관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인간은 합리적이지가 않고 감정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동생은 치킨이 먹고 싶지만 기분이 나빠서 안 먹었고, B 등급을 맞아도 100만 원이나 더 벌 수는 있지만 동료가 나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특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사람을 움직이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이때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평등을 추구하는 DNA를 타고났다고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이와 비슷하다. 사촌이 땅을 사면 하다 못해 소고기라고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왜 배가 아플까?      


이를 확장해서 생각해보자.


분명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 대국인데 왜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낄까? 심지어 지금 1인당 소비하는 칼로리의 양은 옛 중국의 진시황제보다 더 높다고 한다. 황제보다 분명 잘 사는데 왜 그리도 자살률이 높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분명 물질적으로 절대적으로 성장했으나 그만큼 불평등이 심해지고 공정한 기회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공정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평등과 공정함을 중시한다는 최후통첩 게임은 누구나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도 있지만 독재를 만들 수도 있다.      


가령 어느 독재자가 나와 횡포를 부리고 무리하게 세금을 걷는다고 치자. 당연히 국민들은 힘을 모아 저항하고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때 독재자는 어떻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후통첩 게임을 적용하는 것이다.


A안 모두에게 세금 30% 인상

B안 월소득 1000만 원 이하는 30% 500만 원 이하는 25% 200만 원 이하는 15% 인상을 주장하는 안을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처음에는 모두가 A안에 반대하겠지만, B 안이 제시되고 나면 b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 내분이 생길 것이다. 이를 이용해서 독재자는 모두에게 30% 인상을 할 수도 있고, b 안을 선택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결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A안도 B안도 결국 세금 인상은 피할 수 없으며 결국 독재자의 의도가 먹힌다는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은 바로 이점을 이용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할 때도 일본이 조선이 지배할 때도 공통점으로 보이는 정책이 바로 “분열” “편 가르기”다. 독립군이 하나로 힘을 모으지 못하는 것도, 회사의 노조가 결국 분열되는 것도, 학교 조모임이 망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후통첩 게임이 주는 시사점은 크다. ‘공정성’ ‘평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인간이 내리는 결정은 과연 합리적일까? 우리는 결정권자들의 최후통첩 게임에 항상 당하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회사나 조직의 관리자들은 빵을 절대 똑같이 던져주지 않는다. 통째로 던져주고 알아서 나눠 먹으라고 말한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1인당 똑같이 먹는 게 중요할까? 조금이라도 많이 먹는 게 중요할까? 10을 3으로 나누면 3.3이지만 0.3을 나누어 줄 수 없으니까 9만 주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4:3:3으로 나눌 수도 없지 않은가?

남은 1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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