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서
요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다. 친구가 친구 같지가 않다. 학교 복도를 나가면 다 나를 까는 눈빛들로 가득하다.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는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힘들다. 하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자퇴라는 생각이 문득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친구는 늘 나를 무시하고, 괴롭히고, 나를 낮춰보는 말들을 했다. 처음엔 그냥 "애들이 다 그러니까" 하면서 넘기려 했다. 하지만 점점 그 친구의 태도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나는 속으로만 참았다.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말하면 더 커질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 친구의 태도가 너무 싫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제, 그만큼 참을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그 친구가 또 나를 비웃듯이 말을 했다. 그때는 참을 수 없었다. "왜 이렇게 하는 건데?" 하고 따지면서 조금 크게 말했더니, 그 친구는 갑자기 다른 사람들한테 나를 깔아뭉개는 말들을 퍼뜨렸다.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이, 나는 그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고,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나를 비난했다. "그 친구가 무슨 문제냐?"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굴어?" 내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모르고,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친구는 다른 애들까지 끌어들여서 나를 더 이상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정말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그 친구는 자기가 아무 잘못 없다고 주장하고, 나는 그 친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그 친구를 향해 쏘아보는 눈빛을 보냈다. 내가 보낸 그 눈빛이 그 친구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내 안에 쌓인 모든 불만과 분노를 그 친구에게 보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 눈빛을 보고 그 친구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 감정을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그 눈빛을 전혀 무시한 채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계속해서 비난했다. 주변 친구까지도 말이다. 하지만 그 주변 친구는 나에게 엄청 잘해주던 친구였다.
"병ㅅ"
그 친구의 인스타 메모였다. 그 단어는 여러 손가락을 치켜들어 나를 몰아붙이는 듯 했다. 내가 왜 병ㅅ이 되어야 하는가. 내가 무얼 잘못했는가. 내가 아무리 속으로 참아도, 그 친구는 결국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내가 반응하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 이제 나는 그 친구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대로 계속되면, 내가 어떻게든 이 상황을 풀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떠나버리는 게 나을까?
"나의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이 갈등에서 나는 내 감정을 억누르려 했고, 결국 그것이 폭발했다. 내가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내 감정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그 감정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었다. 이와 같은 감정의 폭발은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인간 존재의 한 부분인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마르틴 부버는 이를 “나-너” 관계로 설명했다. 다른 사람을 단순히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독립적이고 존중받을 만한 존재로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관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를 그저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며 나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 친구 역시 나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나를 ‘문제적인 사람’으로 치부하며, 내 감정을 이해하기보다는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했다. 이때 발생하는 갈등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보낸 눈빛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철학적 질문을 마주한다. "감정의 표현은 반드시 언어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 한마디로 말하지 않아도, 비언어적인 방식으로도 감정은 전달될 수 있다. 내가 그 친구에게 쏘아보았던 눈빛은 내가 가지고 있던 분노와 실망을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전달하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그 친구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도 전달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나는 그 감정의 해소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더 큰 갈등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는 ‘타자’의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주체로서 독립적인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가 그 친구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나의 감정만을 강요하면서 갈등은 심화되었다.
이 갈등의 해결책은 있기는 할까. 자기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 아닐까. 내가 내 감정을 누르고 참기보다는,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에는 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정을 표현할 때에는 타인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 내 감정만을 우선시한 채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한다면, 결국 이 갈등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