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원
인공지능이라는 존재는 우리들에게 가장 큰 편리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러 분야에 사용된다. 특히 학업에서도 교과서에 나온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해야하는 수행평가와 같은 것들과 같이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막상 현실로 옮기면 어려움을 겪는 분야등을 도와주고 있다. 선생님들이 알려주고, 다시 설명해주어야 하는 부분이 생겨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서포터 역할을 담당해주는 것이 인공지능이다. 몇가지의 프롬포트만 작성하면 답을 알려주고, 비어버린 누군가의 역할을 대체해주면서도 마치 내가 한 것만 같은 느낌을 빼먹지 않고 챙겨주어 우리들에게 성취감 또한 심어준다. 물론 이렇게 점점 우리들이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깔끔한 인공지능에 의존하게 되면서 우리들은 점점 선생님의 도움도, 누군가의 손길도 전부 옛된 기억으로만 남아가게 된다는 점이 장단점 여러방면으로 보여지고 있다.
우선 첫 번째로는 디지털 분야에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처음에는 대형 회사, 대표적이게는 넥슨과 같은 게임회사처럼 서로 공동체를 이루고, 또 서로 직급과 계급을 나눠간다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자신의 의견과 제안은 제한되고 한계점이 존재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롭지는 못하였으나, 튼튼하고 안정적인 회사의 분위기와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한 숨 돌릴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인공지능의 존재로 점점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서로 독립하고, 개인과 집단으로 경쟁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서포터의 역할을 맡은 존재가 원래는 여러명이 뭉쳐 해결해야 했던 주요 업무들을 맡고, 인간보다 더 빠르고 효율성있게 움직여주는 덕에 개인이 새로운 컨텐츠와 물품들을 창출해내는 것이 가능해지는 추세가 바로 원인이다. 물론 이렇게 개인과 개인으로 서로 분리된 이 상황 속에서의 장점은 당연히 전에는 한정적이었고 제한적이었던 자신의 의견 배출양이 확장되어 더 많은 아이디어들을 낼 수 있고, 바로 실현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인 돈. 이 물질적인 요소 하나로 개인의 회사 창립의 최대 행복을 설명할 수 있다. 아무리 수가 커도 밑의 분모가 큰 분수로 곱하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을 수학에서 자주 보았을 것이다. 그처럼 수익배분에 대해 많은 불만을 내놓고 있는 것이 바로 현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 중 하나인데, 아무래도 자신이 낸 아이디어로 벌어낸 수익이더라도 그저 자리를 지키기만 한 직원에게까지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은 의욕을 잃기도 하며, 일에 대한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자기 혼자만의 능력으로 벌어들인 돈을 전부 혼자 가져간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임을 알게 된다면, 다들 개인으로 독립하여 새로운 컨텐츠를 만드는 창의적인 직업이 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특별하게도 이 단점은, 회사에서 생활할 때도 똑같이 겪는 위기이자 불안이다. 그것은 바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혼자 해나가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안해보이며, 언제 무너져도 모를 그런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사실 모든 이들이 조금 놓쳤던 부분 중 하나인 회사에서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의아할 것이다. 스포츠 분야, 내가 가장 즐겨보는 야구에서 예를 들어보면, 야구 선수들은 나이가 많은 사람도, 들어온지 몇 년도 되지 않은 신입도 거의 몸에 부상이 갈 만큼 경기장에서 많은 열정을 보여준다. 부상을 입어도 경기장에서 얼굴을 비추고, 또 새로운 경기의 라인업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 있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를 본 많은 이들은 몸을 아껴야 한다, 구단에서는 이 선수의 회복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등의 걱정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야구팀의 대표는 이상하게도 선수의 건강을 신경쓰는 모습보다도 마치 에이스이기에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이 경기에서는 누구보다 빛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듯이 절대 라인업에서 제외시키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스포츠 분야에서는 사람의 실적, 즉 1년에 얼마나 많은 성과를 이루었는지 등을 확인하면서 순위를 매기고 마치 소고기처럼 등급을 매기기 때문이다. 당연히 회사라는 거대한 기관 속에는 많은 선수들이 존재할 것이고, 많은 직원들이 존재할 것이며, 아쉽게도 그 모든 사람들이 빛날 수는 없다. 흐르는 전류의 양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한 사람에 전부 몰리거나, 혹은 분산은 되더라도 몇몇의 성과를 내지 못한 선수들은 결국 빛을 비추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보면 어째서 많은 야구 선수들이 오른팔을 다쳤으면 왼팔을 쓰고, 허벅지가 다쳤으면 발목에 더 힘을 가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들은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등급을 매일 어떻게든 올리기 위해, 또 자신의 존재를 비춤으로써 자신의 분량과 활약을 더 챙기기 위해 그렇게 몸을 던져가면서까지 경기를 뛴 것이었다. 이처럼 어쩌면 당연하게도 하나의 단체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경쟁이라는 것이 또 발생하게 되어서 늘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혼자 살아가기에 내 앞에 발자국이 없는 사람과, 같이 살아가지만 발자국이 너무 많아서 내 발자국 찍을 공간이 없는 사람 중, 과연 어떤 사람이 더 불행할까. 그렇게 한 번 생각해보니, 나는 전자가 어쩌면 더 힘들고 고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존재를 알리지 않아도 괜찮더라면 이미 많은 발자국들이 찍혀서 하얗게 쌓인 눈이 없어진 길을 걸어다니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성과를 남길 수 있는 눈의 여백을 찾고자 노력하는 삶이 어쩌면 조금 빛나지 않더라도, 또 눈이 쌓인 곳을 찾다가 많은 이들에게 치여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나의 필요함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아닐까. 만약 아무도 눈치주는 이가 없다면, 남들 다 눈을 밟으면서 길을 치울 동안 나 혼자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눈치를 보고 뭐라도 하는 심정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분위기에 휩쓸리느라 획일성과 간단함은 얻었지만 자신의 진정한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지는 못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깊숙한 하얀 길을 처음 밟은 최초자의 그 뿌듯한 길은 말이다. 그 느낌은 과연 어떨까. 눈길이 높아 종아리가 젖어도 따뜻한 그 느낌보다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