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탑뉴스에 오르내리는 기사 중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토픽은 유명인의 "인성 논란"으로 대표되는 조금 크거나 혹은 작은 사건을 크게 보이는 뉴스가 가득하다. 하지만 더 가관인 건 분명 어제까지 응원하고 사랑을 주던 대중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하루아침에 돌아선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중범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당사자들은 굳이 대중들이 욕을 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에서 조사하고 그 죄의 무게에 따라 벌을 받게 된다.
가령 축구선수가 골을 못 넣었거나, 연예인 누구가 몇 년 전에 빚을 갚지 않았다거나, 과거에 학폭 논란이 있었다던가 과거의 연인에게 잘못을 했다 등등. 빛나고 반짝이던 스타들도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이 되고 만다. 왕조시대에는 아무리 유능하고 업적이 있었어도 역모에 휘말리면 가문이 박살 나듯이, 요즘 시대의 "역모죄"는 유명인 것 같다.
죄를 지은 유명인을 두둔하거나,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그 죄인" 은 나한테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잘못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나랑 자주 보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가 아닐까? 특히 원수는 회사에서 만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실제로 볼 일도 없고 저기 저 먼 인터스텔라에만 살 것 같은 유명인이 나랑 뭔 상관일까?
어째서 항상 실시간 검색어의 순위를 차지할까?
흔히 하는 말로 정치적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인 가십거리를 이용한다는 일종의 "음모론"이 있다. 그 말의 진위를 떠나서 그 티브이 속 사람들은 여기에 없는데 더군다나 내 삶의 눈곱만큼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우선순위인 듯 시답지 않게 남의 상처와 죄를 스스럼없이 댓글에 이미 돌을 맞아 상처 난 자리에 또다시 날카롭게 후벼 판다.
원래 인간의 본능이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건지?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은 온라인 속의 사람들과 다른 사람인 게 분명하다. 같은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이 진짜 모습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 "웃음"에서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 "톱스타가 뜰 때보다 질 때 신문부수가 더 많이 팔린다." 그래서 기자들은 스타를 만들어 높이 높이 뛰운 다음에 추락하기를 기다린다고..
섬뜩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것 같다.
어디 무서워서 출세하겠나?
요새는 남을 비난하기도 무섭다.
나도 지은 죄가 많은데. 오늘도 내일도 죄를 지을게 분명한데..
며칠 전에도 걸려온 엄마 전화에 잔소리가 듣기 싫어 괜히 짜증내고 끊은 적이 있다. 툭하면 아프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고, 또 뭘 해줘야 하는가 부채의식에 걱정보다는 부담감만 가득했다.
또한 오늘은 무심코 던진 나의 말 때문에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원래 죄라는 것은 남이 상처 받거나 피해를 입었다면 죄가 되기 마련이다. 우물가에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듯이..
그렇게 나도 의식하지 못 한 사이에 상처를 주고 죄를 짓고 산다. 그게 법에 걸리지는 않지만 누군가에는 평생의 상처가 될만한 그런 종류의 죄가 있다.
과연 나는 떳떳한가?
아마 누군가에 향한 비난이 강하다는 건 나의 죄를 숨기기 위한 게 아닐까?
[죄와 벌]의 주인공 로쟈는 자신이 지은 살인죄 때문에 감옥에 가는 게 벌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불안해 잠을 못 자고 망상과 초조함에 보낸 하루하루가 그에게는 진짜 "벌"이었다.
마찬가지로 유명인 혹은 일반인도 죄를 지었다면 이미 그 사람은 벌을 받고 있다. 우리가 돌을 던지지 않아도 그의 마음속은 이미 파도와 폭풍이 넘실대고 있다.
그러니 굳이 나까지 어깨 아프게 던질 필요가 없다.
이미 그는 어깨보다 심장이 충분히 아프기 때문이다.
늦은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끄적거리는 것도 내가 지은 죄가 많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