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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 된다면?

#성선설 #성악설 #프로이트

by 제이티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를 보면 투명인간이 되는 아이템이 있다. 반지나 망토를 입으면 바로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이다. '투명인간', 듣기만 해도 호기심을 주는 단어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말로 하면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사람들은 진정한 자유를 맛볼 수 있을까? 법과 시스템이 없는 세상. 사람들은 분명 있지만 무인도와 같은 세상에서 살게 된다면 말이다. 어떤 세상이 열릴까? 아니면 세상은 그대로이고 나는 변할까?


많은 청소년에게 위의 질문을 던지면 의외로 나를 괴롭히는 친구나 가족을 몰래 때려준다는 응답이 제법 많이 나온다. 비단 청소년뿐이겠는가? 직장인이라면 꼴 보기 싫은 상사에게 복수를 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안보이니까 학교를 땡땡이치거나 직장을 안 가도 그만이다. 마음껏 장난을 쳐도 혼나지도 않고, 몰래 음식을 집어먹거나 백화점에서 슬쩍하더라도 cctv에 찍히지 않는다. 오늘 뭐 입지 고민을 안 해도 되고, 머리를 안 감아도 되고, 화장을 안 해도 누가 흉보거나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뭐 마블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가 될 수 도 있겠다.


그런데 만약, 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분명 존재는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모두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니까 눈치 볼 필요 없는 자유를 누리게 될까? 아니면 눈치가 안 보이니까 나 하나쯤 나쁜 짓을 해도 남들이 모르지 않을까? 법과 시스템이 사라지고, cctv가 먹통이고. sns가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꽤나 비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들은 식량을 공정하게 나누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경찰관도 식료품 가게를 털고, 도둑과 방화가 끊이지 않았으며, 살인과 강간은 예삿일도 아니었다. 시스템이 붕괴된 세상은 자연이 아니라 정글의 세계였다.


킹덤과 부산행과 같은 '좀비' 영화를 보자. 좀비는 또 다른 좀비를 물어뜯고 또 좀비를 만든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도망을 친다. 그런데 이런 영화들은 보는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다. 살아남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 살기 위해 남을 밀치거나 자기들만 살기 위해 기차 문을 잠그거나, 성벽을 높이 세운다. 양반들은 배를 타고 떠날 때 '아랫것'들은 태우지 않고 떠난다. 법과 시스템이 붕괴되었을 때 인간의 모습은 좀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가 않다. 모든 종들의 지배자인 인간이라면 품어야 할 고귀한 이성과 인품은 느껴지지 않았다.


비단 영화에서 뿐 아니라 현실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른바 미국에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날 때마다 뉴스에서는 나이키 가게가 털리고, 슈퍼마켓 창문이 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방화는 기본이고, 어둡고 컴컴해질 때 사람들은 가게에 불을 질러서 빛을 밝히고, 낮에 비싸서 아이쇼핑한 신발을 직접 가져온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원래 '악'할까?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말했던 철학자는 고대의 플라톤과 20세기에 프로이트가 있다. 둘의 공통점을 보자면 인간을 그저 동물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종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잠 오면 잠을 자고, 종족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하는 인간은 오로지 성욕과 폭력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동안 동물과는 다르고 우월한 이유가 오로지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이성'이라고 보았던 기존의 철학자들과 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주장이었다.


동물과 다름없는 인간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동물적인 그 특성 성욕과 폭력성을 잘 눌러야만 문명이라는 걸쭉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든 학교든 법을 통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우면서 자라고, 어길 시 처벌도 받는다. 바로 동물적인 특성을 눌러야지만 이 시스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영화처럼, 좀비가 나오거나 재난상황이 닥치거나, 모두가 눈이 먼다면 우리 사회는 영화처럼 잔혹한 세계가 펼쳐질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폭력과 성욕을 잘 관리해야 만 한다. 프로이트는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본성을 억압하고 눌렀는데, 오히려 억누르다 보니 문명이 파괴된다는 역설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보자. 폭력적인 게임과 선정적인 영상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가? 총싸움 게임을 많이 하고, ufc 경기를 자주 보는 학생은 성인이 돼서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을까? 그리고 야동을 많이 보는 사람은 성범죄가가 되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은 하얀 종이처럼 착한 것인데 유해 영상 때문에 범죄를 일으키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인간의 본성은 악한데 폭력적인 게임 덕분에 폭력성을 해소하는 게 아닐까?


가학적으로 음식을 탐하는 먹방 때문에 아이들이 음식의 소중함을 모르고, 무리한 과식을 하고 학교에서 연예인을 따라 하듯이 따라 하는 것일까? 술, 도박, 게임, 마약 등은 공익광고나 학교에서 해롭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해로운 것을 아예 못하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해롭다면서 담배는 왜 팔고 술은 왜 팔면서, 청소년이 술과 담배 피운다고 야단을 하는 것일까? 심지어 담배는 국가에서 전매하지 않는가?


1920년 미국에서 이러한 생각이 시대를 강타했던 적이 있었다. 이른바 '금주법' 열풍으로 미국 내에서 술 판매가 금지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밀주가 성행하고 이를 관리하는 '마피아'가 더 커져버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인간의 본성을 악이라고 규정하면서 누르는데, 오히려 억누르다 보니까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법과 시스템이 시선 때문에 인간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가? 아니면 그것이 있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의 본성을 악하다고 인정하면 우리는 통치자에게 우리의 자유를 한 움큼 내주고 지배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명분을 주게 된다.


법 없이도 살 양반이 많다면 굳이 법을 만들 필요도 없고, 굳이 죄 많은 인간을 심판하겠다는 절대자도 필요가 없다.


누군가가 욕을 하거나 주먹이 먼저 나간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저거~ 저거 못 배워서 그래"


배워야만 사람다워지고, 못 배운 게 죄가 되는 것일까?

그런데 언제부터 인간의 본성(폭력, 성욕)은 죄가 되었을까?


마스크를 코까지 올려 쓰는 이유가 벌금 때문인지 도로 위에서 천천히 액셀을 밟는 이유가 과속카메라 때문이지 알 수는 없다. 모두가 내면의 양심이 있다면 굳이 그런 법을 만들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 내면의 양심은 배워야 할까? 아니면 타고난 것일까?


철학은 물질적인 증거가 없는 관념의 싸움이라고 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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