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신전과 로마의 콜로세움 사진을 비교해보면 둘 다 지금 봐도 상당히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신전은 쭉 뻗은 기둥에 1층이 불과 하지만 콜로세움은 3층 높이에 76개의 출입구가 있다.
쭉 뻗은 기둥은 보기 좋지만 아쉽게도 1층이다. 하지만 3층은 공간을 분할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지 않은가?
바꿔 말하면 로마의 건축물이 그리스에 비해 훨씬 '실용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이 경기를 했던 로마의 대표적인 공연장이었다. 5만여 관중이 모이는 곳인 만큼 당연 튼튼해야 한다.
그래서 “ARCH” 양식으로 하중을 줄이면서도 그렇다고 지금의 아파트처럼 개성이 없지도 않다.
각층마다 기둥을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 양식을 사용하면서 인테리어 효과까지 놓치지 않았다.
기둥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는 각 지역의 문화와 양식을 수용할 줄 아는 개방적인 태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움은 놓치지 않은 로마의 미술은 도로와 수도 목욕탕에 이르기까지 지금의 선진국과 비교해 봐도 밀리지 않은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고 있다.
1세기의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과 19세기 나폴레옹 황제의 개선문만 봐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견고하면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있다. 모든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이미 인간이 할 수 있는 미술은 그리스 로마를 거치면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그리스 로마 미술은 변질되기 시작한다.
BC 80년 술라의 조각상과 BC27년 아우구스투스의 조각상은 놀랍도록 차이가 많이 보인다.
둘 다 독재자와 황제인데 어째서 술라는 주름 가득하고 인상 가득한 얼굴인데, 아우구스투스는 나이를 알 수 없는 팽팽한 피부를 자랑하고 있을까?
정답은 바로 ‘포에니 전쟁'이다.
그 유명한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다던 한니발 장군을 무너뜨린 로마는 이내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고 본격적인 제국 국가가 된다. 당연히 제국 국가인 만큼 넘쳐나는 식민지의 세금과 값싼 농산물이 본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와 값싼 농산물의 유입은 자영농의 몰락을 가져오고 결국 귀족 중심으로 하는 ‘라티푼디움(대농장)’만 살아남게 된다. 지금의 동네 마트가 사라지고 대형 프랜차이즈 마트와 편의점이 골목을 지배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자영농이 붕괴된 로마는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공화정이 붕괴 되게 된다.
대다수가 투표권이 있는 자유인보다는 빵이 있는 노예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술품의 고객이 소수를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걸 상징한다.
완벽하게 제정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콘스탄티누스” 조각상처럼
‘미’보다는 ‘신성’ ‘권위’로 양식이 변한다.
쉽게 말하면 크기가 커지고 감정과 표정이 없는 그런 미술품으로 말이다.
그리스 로마의 인간중심적이고 감정에 충실하고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은 이제 점차 사라진다.
이는 ‘중세로 가는 입구’ 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종교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이집트, 현세적이고 미를 추구한 그리스 미술, 거기에 실용성을 더한 로마 미술까지 서양미술을 정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