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하
우리 집에는 의외로 꽤 많은 명품들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전신 거울 뒤 문을 열면 숨겨진 은폐한 공간이 나타나는 데 이곳엔 없는 게 없는 엄마의 옷 창고이다. 맨날 출이닝 바지에 털이 다 빠져가는 털털이만 입고 다니는 엄마의 모습과는 달리 작게는 500만원 대 부터 크게는 1000만원 이상 까지 다양한 종류의 명품 옷들이 들어가 있다. 펜디에서 나온 국내에 100몇 개 밖에 없다는 678만원 짜리 금색 반딱이 옷, 샤넬에서 나왔다는 한정판 몇 천이라는 벛꽃 드레스, 명품 특유의 선 무늬 같은 게 새겨진 에르메스 트윌리 스카프... 등 팔리지도 않고, 입지도 않지만 전시만 해두고 있는 옷들이 천지이다. 사이즈가 작냐고 물어봤더니, 그건 아니란다. 그러면 하기 부끄럽냐니 그것도 아니란다. 출이닝만 입는 건 편해서 그렇단다. 그리고 페인트 칠이 벗겨져 나가는 엄마의 화장대 3번째 칸을 열어보면 온갗 진귀한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들과 반지들, 그리고 팔찌들과 귀걸이들이 나온다. 평소엔 열어볼 일이 없어 몰랐었는데, 이번에 대청소를 하게 되어서 봤더니, 먼지나 쌓여있을 것 같던 화장대 안에는 브루치, 귀걸이, 반지, 목걸이, 팔찌, 발찌 등 보석박힌 것들이 수두룩 빽빽했다. 그러나 엄마가 끼는 팔찌는 여름에 종종 내가 만든 비즈 팔찌를 꼈고, 엄마가 끼는 귀걸이는 아프고 귀찮다고 몇 년간 한 번도 낀 적이 없으며, 엄마가 끼는 반지는 아주 특별한 날 녹 슬어 가는 꽃 반지 뿐이었고, 엄마가 다는 브루치는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악세사리들은 모두 볼 날도 없는 것들이었다. 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 많은 것들을 팔지도 않고, 끼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소장하고 있는 이유는 일종의 수집 욕구가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사 갈 사람도 없는데, 버리는 것 너무 돈 낭비 같아서 그냥 가지고 있는 거였을까?
아이폰과 삼성폰, 요즘 많이 거듭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어느 한 메체는 아이폰과 갤럭시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보았다. 설문조사 결과, 아이폰을 쓰는 남자는 어려보이고 현대적이고, 소통이 잘 될 것 같다는 결과가 있는 반면, 갤럭시를 쓰는 남자는 직장인일 것 같고, 나이 많은 아저씨일 것 같고, 무서울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국 우린 이성적이고 효율적인 결과에 비례해 조금 더 성능이 좋은 폰을 고르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애들이 아이폰을 쓰니깐.. 이유도 모르는 채 노땅이라고 불리니깐... 삼성폰을 쓰면 거울샷 찍기도 그러니깐.. 아이폰을 쓰는 거였다.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는 걸 해겔의 인정투쟁이라고 부른다. 우린 쉬는 시간에 책만 읽는 아이에게 다가서지 않는다. 그러나 우린 책 읽는 아이와 비슷하게 생기고 키도 거의 비슷한 아이임에도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거나 활기 차 보이면 다가서서 같이 논다. 그럼 그 아이는 다른 아이와 대화를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발견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정투쟁이 심한 지금, 아이들은 점점 더 과격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목소리도 높이기 시작했다. 우리 반에는 맨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있다. 걔내들은 친구와 떠들다가 할 말이 없으면 항상 갑작스럽게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온 열정을 다해서 내 이름 맑음을 부르는데, 쉬는 시간은 기본이고, 운동장을 돌다가도, 체육 시간에도, 이동 수업을 하러 복도를 걸으면서도, 줄 설 때도, 급식실에서도 늘 부르다보니, 이제 그 아이들은 우리반에서 꽤 영향력있는 아이 순위에 오르게 되었다. 아이들은 인정투쟁을 자신의 이미지를 꾸미고, 얼마나 더 재미나게 노는 지로 경쟁하지만, 어른들의 놀이 방법은 희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을 사 과시적 소비를 하는 걸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로는 명품이 있다.
과시적 소비와 관련하여, 농촌 인구보다는 도시의 인구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지출하며, 또 도시일수록 그런 지출의 압력이 강하다. 그 결과, 그럴듯한 외양을 유지하기 위하여 도시 주민들은 농촌 주민에 비하여 그달 벌어 그달 먹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경우, 농부와 그의 아내 및 딸들은 똑같은 수입을 가진 도시의 장인 가정에 비하여 옷도 덜 유행적인 것
을 입고 매너도 덜 세련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 주민이 과시적 소비에서 오는 독특한 만족감을 더 추구한다는 얘기는 아니고, 또 농촌 인구가 금전적 품위를 덜 의식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과시적 소비의 증거를 내놓으라는 도발과 그런 일시적 효율성에 유혹당하는 현상은 도시일수록 더 뚜렷하게 발견된다. 그래서 이 방법(과시적 소비) 에 더욱 즉각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하여 도시의 주민들은 과시적 소비의 기준을 아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 유한계급론
소리를 지르고 목소리를 높여 관종끼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어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내가 도데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이 물음의 답은 배척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대답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 안 놀아줄까봐 였던 대답이 점차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야~' 라는 마인드로 변해가는 걸 우린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옷을 입을 때도 유명한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고,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으며, 나이키 가방을 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정투쟁은 조금 더 앞서나가 권력을 쥘려는 인간의 본능일까? 난 그렇다고 본다. 문물이 발전하기 전 시기, 인간에겐 인정투쟁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누가 더 조개 껍데기를 목에 많이 걸고 있는지, 누가 신체를 덜 노출하는 지 였다. 추위와 배고픔이 적이었던 시절, 각 마을에는 추장이라는 사람이 존재했고, 그들은 다른 사람과 같은 옷을 입지 않았다. 그들은 가죽으로 몸을 덮음으로써 남들과 다른 신성한 존재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따랐다. 난 바로 이런 문화에서부터 인정투쟁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신성한 사람을 따라하면 자신도 신성해질 거라는 생각에서 부터 시작된 고위 관직자를 따라하는 것이, 이젠 아이돌들을 따라하고, 외국인들을 따라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