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신성의 수단에 불과했던 미술에 작가 이름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십자군 전쟁과 14세기 상공업의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활발한 무역으로 도시가 생기기 시작했고 재력이 풍부한 신흥 시민계급이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상인 가문이 그 유명한 메디치다. 새로운 상인계급은 부를 과시하길 즐겼고 당연히 예술가들은 돈이 흐르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아래로 모이기 시작한다.
이 시기는 아직 교회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지만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탐구가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엄격한 종교의 권위 앞에 억눌렸던 인간의 본성과 개성이 드디어 다시 고개를 드는 시기. 또한 르네상스 시기는 과학적 태도, 자연과 인간의 재발견, 현실에 바탕에 둔 시각, 인간의 욕구가 꿈틀대는 시대다.
로마 시절의 찬란했던 문명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회귀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성에서 인성으로, 스토리에서 미로, 이콘에서 작가로, 상상에서 현실로,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오면서 세상을 알린 천재들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동시에 그를 보는 사람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줘야 하는 예수의 몸을 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옆면이나 뒷모습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또한 예수의 발아래 성은 너무나 작아 보인다. 중세의 거장은 왜 이 정도까지 밖에 그리지 못했을까? 지금에 와서 보면 이상하지만 이는 화가의 잘못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런 그림의 어색한 점을 알아차리는 것은 한 세기 지나서이다. 대체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그 계기는 무엇인지 서양미술의 놀라운 도약을 가져온 순간을 찾아보자.
마사초 <성삼위일체> 그림을 보면 벽면을 파낸 듯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맨 바깥부터 좌우 사람들은 이 그림의 기증자다. 한 단 위로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서있고 그 뒤에 십자가에 박힌 예수가 있으며 그 뒤에 높다란 단 위에 신이 서 있다. 이 화가는 평면에 4단계 이상의 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이 바로 서양미술 최초로 '원근법'을 제대로 구현한 작품이다. 마사초는 23세 무렵 피렌체에 와서 새로운 미술에 눈을 뜨게 된다. 그를 원근법의 세계로 이끈 사람은 브루넬레스키라는 건축가였다.
피렌체 두오모 광장에서 젊은 브루넬레스키가 실험을 하고 있다. 한 손엔 세례당 그림을, 한 손엔 거울을 들고 있다. 그림으로 얼굴 앞을 가리고 거울 든 손은 앞으로 뻗어 위치를 맞추고 있었다. 가만 보니 그림 아래쪽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그 구멍을 통해 거울과 거울 너머 세례당을 함께 바라보던 그는 정확한 위치를 찾고 웃기 시작했고 이 웃음은 대단한 발견을 알리는 웃음임에 틀림없었다. 그 구멍을 통해 바라본 거울 속의 세례당은 실제 세례당 그림과 겹쳐져서 무엇이 실물이고 무엇이 그림인지 도무지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유명한 '원근법' 실험이다. 그는 이 원근법을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그는 원래 이름 있는 조각가였는데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한 꿈이 있었다. 바로 두오모 성당의 돔을 자기 손으로 완성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확신이 있었다. 로마에서 콜로세움을 보면서 고대의 로마의 건축법을 공부하면 가능할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는 폐허나 다름없는 로마를 헤집고 다니면서 연구를 한 끝에 '원근법'를 터득하게 된다. 폐허들 사이에서 건물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가상의 ‘선’을 그었다. 건물들은 뒤로 갈수록 일정하게 줄어들어야 했고 쭉 선을 긋다 보면 한 점에서 만나게 되었다.
'선이 만나는 점', 이른바 소실점이다.
이 소실점 원근법은 2D 그림에 모든 공간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기술이었다.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이 원근법은 마사초를 거쳐 만테냐에 이르기까지 여러 예술가의 노력으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원근법: 평면에 공간을 그려내는 기술
원근법이 구사된 그림은 통일감과 안정감을 준다. 풍경과 인물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화면 위에 떠 있는 느낌마저도 들게 한다.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해서 감흥이 없지만 원근법은 실로 대단한 발견이었다. 납작한 캔버스 위에서 세상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을 그리는 마법이었다.
만약 두초가 원근법을 알았고, 중세 교회의 제약이 없었다면 더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예수의 뒤에서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그림을 구상했을지 모른다. 마치 이 그림처럼 말이다.
이 그림의 액자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틀처럼 보인다. 비록 종이이지만 실제로 바람이 들어올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