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족쇄를 풀다 -유화-

북유럽 르네상스

by 제이티


1432 <마리아의 수태고지> 프라 안젤리코 청금석 안료를 쓴 당대 최고 비싼 그림이지만 만화나 일러스트 같은 느낌이 든다. 전체 색조는 선명하지만 광택이나 빛의 표현이 전혀 없이 마치 크레파스로 칠한 듯 한 느낌을 준다. 왜 당대 최고의 화가에게 문책을 한다면 그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빨리 그리지 않으면 물감이 마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어요.


맞다. 당시의 주 물감은 템페라화로 안료에 계란 노른자를 섞어 만든 물감이었다. 선명하지만 빨리 그려야 했고 수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세밀 묘사는 자동차 타고 달나라까지 갔다 오란 말과 같다. 하지만 저기 북부 플랑드르에서는 놀랄만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의 결혼> 1434년 여전히 중세의 그림자가 드리운 시절인데 이 그림을 보면 압권이다. 앞의 인물보다는 배경에 그려진 사물이 진짜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 중에 주인공은 앞에 있는 강아지다. 당시 화가들이 강아지의 털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어떻게 한 땀 한 땀 그릴 수가 있는지. 지금도 CG 중에 제일 어려운 부분의 동물의 털을 묘사하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거울을 보라. 거울 속에 반사된 사람은 두 사람이 아니라 네 사람이다. 아직 놀라기도 이르다. 거울을 둘러싼 조그만 한 거울 안에 예수가 죽는 날 벌어진 10가지 장면이 들어 가있다. 음식으로 치면 그야말로 모든 재료를 몽땅 때려놓고 진하게 국물을 우려낸 짬뽕이라 할 수 있다. 아니다. 재료 하나하나를 살리는 것으로 봐서는 임금님 수라상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걸까?


그 비밀은 “유화”에 있었다. 유화는 그림의 차원을 바꾸어 놓았다. 기존의 템페라화와 프레스코화는 노른자나 회반죽에 안료를 섞어 칠하는 방식인데 두 방식 다 모두 빨리 말라버렸기 때문에 모두 빠른 시간에 그려야만 했다. 패스트푸드에서 음식의 고명을 바라면 안 되는 것처럼 정밀한 묘사할 여유가 없었다.

반면 린시드유라는 점착제로 사용한 유화는 플랑드르에 풍부했고, 이를 이용한 작품은 오랜 시간을 갖고 천천히 그릴 수 있었고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수정 가능했다. 거기에 테레빈유를 가미에 물감의 농도마저도 조절할 수 있어서 기름을 적절히 조절하면 투명한 느낌에 광택까지 얼마든지 표현 가능했다.


전자가 한 번에 칠하는 “서예”라면 후자는 컴퓨터 “워드” 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신기술 유화는 화가들에게 새로운 창작의 족쇄를 풀어주었고, 새로운 도전의 세계로 이끌었다. 얀 반에이크를 비롯한 뛰어난 후배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은 도무 뼛속 깊은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잘 그려도

대선배 얀 반에이크를 뛰어넘을 수 없었으니까


플랑드르의 이러한 신기술은 이탈리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을까?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듯이 사람들은 “몇 번이고 덧칠하고 계속 수정할 수 있는 유화는 사기”라며 비아냥 거렸다. 실력 없는 화가들이나 쓰는 편법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여전히 프레스코화나 템페라화처럼 단번에 완성해야 하는 그림이 진짜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누구의 말이 맞을까?



피렌체의 유명화가 판 데르 후스 <포르티 나니 제단화> 이 기술을 도입해 놀라운 정도로 세부묘사를 보여준다. 얀 반 에이크의 사실적 묘사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교회의 입맛에 맞는 중세의 그림처럼 밖에 표현을 못한다. 엉성한 구조와 공간 배치 그리고 너무나 작은 아기 예수는 보는 내내 어색하다.


기를란다요 <목동들의 경배> 템페라로 그려졌지만 꼼꼼하게 세심하다. 거기에 화면 속 공간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고 인물들이 모두 비례가 맞다. 비록 유화보다 세밀 묘사는 떨어지지만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준다.

과연 피렌체 화가들이 콧대가 맞는듯하다.


전통이 깊은 곳에는 원래 새로운 곳이 파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 신기술은 어디에 꽃을 피웠을까?

문화예술의 도약을 꿈꾸는 신생 도시 베네치아는 이 기술을 받아들인다. 스타트업 기업이 대기업보다 변화와 혁신이 빠른 법이다.



베네치아의 대표화가 티치아노의 작품을 보자. <성 세바스찬의 순교>를 보면 북유럽의 유화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원근법과 해부학이 완벽하게 녹아들어있다. 모든 장점을 하나로 합쳐 놓아 새로운 예술의 시작을 알린 혁신적인 화가가 바로 티치아노다.

티치아노의 그림의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유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본 피렌체의 거장들도 이제 새로운 눈으로 유화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16세기 라파엘로는 유화를 받아들였지만 미켈란젤로로 대표되는 피렌체 화가들은 여전히 소묘를 중시하고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후의 심판>이라는 압도적인 작품을 보고 난 후배 화가들은 미술은 연장 탓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화는 서양미술을 한 차원 끌어올린다. 붓이 아니라 연필이 나와서 많은 사람이 글을 쓸 수 있듯이 유화는 이전의 그림을 보다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고화질 티브이가 더 커지고 더 생생해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극장을 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좋은 카메라가 나오면 안 찍던 사진도 찍게 된다.


바로 이 그림처럼 말이다.




종교가 자유를 억압하는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교회의 권위가 무너지고 신분이 요동치는 시절

월매가 이몽룡에게 반말을 하듯이, 돈으로 신분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열릴 때 상공업으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그림 속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키기 시작한다. 그림 안의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일부러 보여주려고 말이다.

자랑하기엔 유화만 한 것이 없지 않은가? 어찌 보면 요즘 세상의 인스타그램이 이들의 유화가 아닐까 싶다.


이제 원근법 해부학 유화로 고전 미술 3가지의 퍼즐이 맞추어졌다. 다음 퍼즐은 무엇일까?


https://youtu.be/d8XTlROgj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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