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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Dec 08. 2020

흉년이 오면 지주는 웃는다.

문명의 출발 나라의 시작은 농경에서 시작된다. 먹을게 많아지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들고 직업은 분화되고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와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된다.


그렇다면 문명사회 농경사회에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 생산수단의 기반이 되는 '토지'다.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자 당연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자기 땅에서 땀 흘려 열심히 일하면 가을에는 수확이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때를 놓치면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기에 농부는 절대 게으름이란 단어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도덕교과서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일하는 자와 놀고먹는 자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늘 존재했다. 땅을 소유한 자와 그 땅에서 생산하는 자는 원래 일치했으나 모든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이 원칙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이른바 지주와 소작 영주와 농노 봉건적인 제도는 어떻게 작동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흉년'이다.


영세한 지주나 자영농은 작황이 안 좋거나 기근이나 여러 재해가 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 당장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쌀이나 먹을 것을 빌려야 한다.


누구한테 빌려야 할까? 베짱이가 개미집을  찾아간 것처럼 열심히(?) 먹을 것을 비축한 농부집으로 찾아가 빚을 지게 된다. 그런데 자기 식량을 선한 마음으로 퍼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부보다는 투자가 더 많은 돈을 모이게 하지 않는가? 하지만 가진 게 없는 베짱이는 그나마 남아있는 자기 땅을 담보로 개미에게 식량을 꾸게 된다. 비극의 시작이다.


다음 해에 풍년이 들어 작황이 좋으면 빚을 갚으면 그만이지만 만약 또 한 번 기근이 들면 어떡할까?

그렇다 담보로 내놓았던 땅을 고대로 뺏기게 된다.

땅을 뺏긴 베짱이는 생산수단이 이제 없다. 하지만 먹고는 살아야 한다. 이제 예전의 내 땅이었지만 지금은 개미의 땅이 돼버린 곳에서 여전히 농사를 짓는다. 생산량의 반절을 바치면서 말이다. 그리고 친구였던 개미는 이제 베짱이가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같은 급이라기엔 뭔가 조금 아쉽다.


자기에게 빌붙어서 사는 빌어먹는 처지가 된 베짱이가 불쌍하지만 그렇다고 땅을 돌려줄 생각은 전혀 없다.


이제 제법 땅을 가진 개미는 손에 흙을 묻힐 이유가 없다.


풍년이 오면 부자가 될 것이고 흉년이 오면 더 부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주들은 흉년을 기다린다.


자산이 늘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를 고쳐보겠다고 수많은 인재들이 해법을 제시하고 많은 나라가 세워졌지만 이내 흉년이 오면 똑같은 현상이 되풀이 됐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세계 어디든 격차와 부의 쏠림 현상은 꼭 정치인이 부패하거나 지도자가 무능해서만이 아니다.


경제는 자연스럽게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로 흘러가게 된다.


우리가 가는 식당이 맛집이어서 손님이 많은 게 아니다. 애초부터 손님이 많으니까 맛집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검색에서 제일 위에 뜬 것부터 클릭하지 않는가? 검색 페이지에 2번째에 나온 식당은 맛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다.


'더 위너 테이킷 올'


그냥 강자가 세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강함은 어디서 왔을까?


그저 상대방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흉년이 오면 지주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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