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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가 돼야만 행복한 미운 오리 새끼

by 제이티

미운 오리 새끼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오리와 달랐다. 그렇다고 특별한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른 오리보다 조금 크고 모양이 달랐을 뿐. 그런데도 오리들은 그를 '못생겼다'는 이유로 미워한다. 새끼 오리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많은 고난을 겪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가 조금만 더 예뻤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것'은 왜 '못생긴 것'과 동급이 될까?

다른 것 = 못생긴 것 = 미운 것


책 #동화 넘어 인문학은 이점을 날카롭게 비튼다. 명백한 오류지만 현실에서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끼 오리는 불행했다. 하지만 역경과 차별을 이겨낸 미운 오리 새끼는 백조가 됨과 동시에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 책은 동화의 아버지로 알려진 안데르센의 심리적 독백이라 할 만큼 작가의 삶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그는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그의 값비싼 꿈을 뒷받침 하기에는 현실은 초라하기만 했다. 가수가 될 거라고 무작정 상경한 그는 어딘가 다른 촌스러운 억양과 스타일이 기가 죽어 있었다. 이때 바로 은인 후원자가 등장한다. 극장 지배인 요나스 콜린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안데르센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그를 세련되게 바꿔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말투부터 몸가짐 억양 하나하나까지 상류층 사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를 그를 변신시키기 시작한다. 갓 데뷔한 신인 아이돌이 점점 카메라 마사지를 받으면서 세련되듯이 그렇게 상류사회 백조 사회로 스며들기 위해 안데르센은 노력했고, 결국 눈 부신 성공을 거둔다. 그렇게 백조 사회에 무사히 안착했지만 아무도 그를 백조로 대접해주지는 않았다. 결국 이 동화는 작가 본인의 인정 투쟁기를 다룬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동화는 '외로움과 슬픔을 이기고 결국 행복해지는' 동화일까?


'타인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죽도록 고생했고, 어느 날 타인이 아름답다고 말해 주자 겨우 안심한다는 결말이 행복일까?


계급 상승을 열망한 작가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성공 스토리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야기 아닌가? 뻔한 드라마 공식이자, 우리가 열광하는 성공신화 스토리다. 이른바 자수성가 스토리는 가난하거나 젊은 청춘들에게 꿈과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많이 미디어로 팔려왔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흔히 성공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가난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도전했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으며 결국 성공해 낸다는 해피엔딩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동화 속의 오리는 끝까지 자신의 눈으로 자아를 보지 못한다. 평생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보게 만드는 것, 타인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최고의 성취, 그 성취를 위해 고난과 역경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공식은 지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 지금 당신이 가난하고 실패한 이유는 게으르고, 무능한 탓이라는 것. 미운 오리 새끼처럼 어려운 환경이지만 본인의 노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공식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함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 충분하다. 여전히 미디어는 성공한 자수성가 스토리를 보여준다. 그 속에 열광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라 부끄럽다.


미운 오리 새끼는 작가 안데르센이 아니라 바로 나 인듯하다.


계급 상승을 열망하고,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거라는 착각.

언젠간 백조처럼 날아오를 것이라고 믿는 아집.

거기에 백조를 동경하면서 동시에 오리를 경멸하는 이중성.


나의 노력이 언젠가 보상을 받을 거라는 믿음으로 해오지 않았는가? 기대한 만큼 성과가 따라주지 않으면 실망하고 자책했던 세월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를 떠나갔던 사람들이 왜 그랬는지 내가 왜 불행한지 모든 이유를 아직 성공을 못해서 행복하지 않기에 그렇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쏟고 치고, 하루에도 몇 번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내려놓으라고 말하는데, 그러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과연 있긴 할까?


그런데 꼭 우리 사회는 성공을 해야만 행복할까? 성공은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고, 그 승리자는 단연 소수 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소수가 행복하기 위해 다수가 불행해야만 하는 것일까?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새삼 이 동화가 잔인하게 느껴지고 숨이 막혀 오는 것은 미운 오리 새끼 그 자체로 행복한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남의 시선과 타인의 인정 투쟁을 벗어나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 여전히 세상은 차별과 보이지 않는 선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말이다. 안데르센의 계급 상승의 열망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그는 적어도 현실에 안주하거나 순응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을 바꾸기에는 개인의 힘은 너무나 보잘것이 없지 않은가? 분명 좋은 사회는 미운 오리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하지만, 아직 가본 적이 없는 현실 넘어 세계는 머릿속에 도무지 그려 지지가 않는다. 여전히 세상은 만인이 아니라 만 명에게만 평등하기 때문이다.


날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타고난 환경을 바꾸기 위해 발버둥 친 그의 노력에 대고 왜 미운 오리 새끼 그 자체로 행복할 순 없나?라고 폄하거나 깎아내릴 수가 없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인정 투쟁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그의 배경을 우리는 잘 모르지 않는가?


안타깝고 애처로운 그가 다음 세상에서는 백조도 오리도 행복한 세상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아니면 적어도 백조로 태어났으면 한다.


그렇게 애쓰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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