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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Aug 28. 2021

플랫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내 손안에 작은 세상. 우주로 통하는 웜홀 스마트폰.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사이를 넘어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돼버린 스마트폰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전의 세상을 어떻게 살았지? 하는 의문이 든다.  카톡과 네이버 구글 유튜브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친구처럼 익숙하고 그것들이 새로운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으면 이제 의심을 넘어 종교가 되었다.


유튜브 알고리즘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장은 전날 밤에 쿠팡 로켓 프레시로 회의는 줌으로 바깥은 위험하니까 가볍게 음식은 배달의 민족으로 놀러 가고 싶으면, 누군가의 인스타 피드로 여행을 간다. 굳이 친구와 가족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된듯하다. 아니 손가락과 핸드폰만 있으면 뭐든지 다 되는 세상에 이미 살고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의 어플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카톡, 유튜브, 배달의민족, 페이스북, 구글.. 등등 이런 기업들은 이전의 기업들과 이미지와 느낌부터가 다르다. 뭔가 크레이티브 할 것 같고, 회사는 캐주얼한 복장에 두발 자유화에다가 반려견을 데리고 가도 될 것 같은 그런 구글 같은 느낌이 든다. 세련되고 먼지도 없고, 냄새도 안 날 것 같은 지구의 환경을 생각할 것만 같은 회사인데, 그것 말고 묘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배달의 민족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유튜브는 기존의 방송국이 아니며, 인스타그램은 여행업체가 아니다. 없는 게 없는 플랫폼 세상의 비결은 바로 진짜 그들은 만드는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저 길만 깔아놓고 열심히 사람이든 물건이든 다닐 수 있게 하는 플랫폼이다. 플랫폼의 작동원리는 간단하다. 여러 장기에 피를 보내는 혈관처럼 그저 파이프를 이곳저곳 뚫어 넣고 알아서 만들고 사고팔고 하게끔 하면 그만이다. 시간도 공간도 필요 없고, 그저 서버와 데이터망만 있으면 될 뿐 직원도 필요하지 않다. 스마트폰과 통신기술에 따른 변화라 생각하지만, 사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전 세계 유통 시장 망을 하나로 만든 나라 칭기즈칸의 몽골제국도 결국 길을 지배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찬란한 로마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듯이 도로를 지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왜 지금도 강남이 집값이 비싼 이유 중 하나가 모든 버스와 지하철이 강남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결국 생산수단인 '' 차지한 자가 역사를 지배했듯이 지금의 '' 차지한 플랫폼 기업들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서 우리를  길로만 다니게끔 신호등 역할만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길만 깔아놨다. 누가 가던지 오던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리고   길을 지나는 자는  사용료를 내야 한다. 길을 사용하지 않으려면 길을 만들거나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는데, 혼자 처음가는 길은 무섭기 마련이다. 길이 어두우면 환한 가로등이 필요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그런 안전장치를 제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접 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고 자유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잔소리하는 상사도 없고, 일하고 싶으면 하고 일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사장님 입장에서 장사도 안되는데 하루 종일 알바를 쓰는 거보다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서  바이 건으로 지급하는  훨씬 이득이기 때문에 훨씬 비용적인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가  속도를  내듯이 길은 하나인데 이용자가 많으면 어떻게 될까? 결국 돈을 버는 쪽은 배달을 하는 사람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다. 상추값이 올라도 최저임금이 올라도, 수수료는 똑같으니까 말이다. 마음에  어도   수도 없다. 요새 전화로 주문하는 사람이 없으니깐 말이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누가 누구인지 어디가 맛집인지 알 수가 없다. 배달의 민족에서 주문을 할 때 짜장면이 먹고 싶다면, 어디에서 주문을 할까? 뻔하다. 위에 뜨거나 아니면 별점이 높은 가게를 찜하기 마련이다. 당연 맛집이니까 별점이 높다고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콜버튼을 누른다. 백화점에서 직접 입어보고 옷을 사는 대신 네이버에서 간단한 검색으로 후기와 별점을 보고 옷에 내 몸을 맞춰서 산다. 직접 가는 수고도 덜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내가 마음에 들어 사는 그 옷이 남도 마음에 드는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고르는 기준이 남들의 눈이다.


가령, 과연 맛집은 음식이 맛있어서 맛집이 되었을까? 아니면 맛집이니까 음식이 맛있을까? 당연히 신선한 재료와 요리 솜씨가 음식 맛의 기본이니까 이것을 잘 지키는 가게가 성공하지 않을까? 장사를 한 번이라고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버리는 재료가 상당하는 것을. 사장님을 눈물을 머금고 재료를 다 버릴 수 있을까? 그랬다가는 남는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맛집은 장사가 잘되니까 식재료가 빨리빨리 회전이 된다. 따라서 유명할수록 손님이 많으니까 재료가 신선하고 결국 음식은 맛있다. 유명한 집이 맛집이 될 가능성은 높지만, 그렇다면 유명하지 않는 가게는 맛이 없을까?? 아니면 사람들이 몰라서 사라진 게 아닐까?


유튜브 영상이 하루에 몇 개나 업로드가 될까? 인스타그램 피드 사진에 몇 장이 올라올까? 네이버 블로그는 또 어떤가? 아니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여기 이 브런치 플랫폼에서는 하루에 과연 몇 개나 올라올까? 많고 많은 사진과 글 영상 물건 중에 내 취향과 필요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영상을 보기 전에 조회수와 댓글 수를 보듯이, 결국 별점에 의존해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별점이라는 것도 결국 타인의 평가 아닌가? 타인의 기준이 내 기준이 되는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인플루언서가 걸친 옷을 사듯이 말이다.  


치열한 플랫폼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경쟁을 한다. 상품의 질이 올라가고 전문화되고 다양해지는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 요리를 엄마한테 배우지 않고 백종원한테 배운다. 세상에 그 보다 훌륭한 요리사는 아마 있겠지만 아마 우리는 절대로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허락하지 않으니깐 말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아이들은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하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카메라는 참가자의 불성실한 태도나 인성을 비추고, 때로는 심사자들의 독설을 클로즈업한다. 실수한 참가자는 무슨 나라라도 판듯이 닭똥 같은 눈물로 팀원들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자기가 잘못해서 남들이 피해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심사위원이 칭찬하는 참가자가 어느새 내 마음에도 들기 시작한다. 말을 듣고 보면 그런 것도 같기도 하고, 지적당한 참가자는 이상하게 뭘 해도 미워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직접 투표해서 아이돌을 만든다고 하지만 나의 투표의 기준은 나의 취향일까? 아니면 심사위원의 심사평일까? 아니면 카메라에 많이 잡히는 참여자일지도 모른다. 아예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뽑겠는가? 결국 많이 비추는 참가자가 승자가 된다.


경쟁의 끝이 언제나 그렇듯이 승자독식으로 간다면 새로운 플랫폼 생태계의 미래는 밝아 보이지만은 않다. 동네에서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는 이제 지구 건너편 아이와 경쟁을 해야 한다. 영상을 올린 순간 지적질과 악플 세례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닐 확률이 크다. 그래도 댓글이라도 달리면 다행이다. 대다수의 영상은 사람들은 알지도 못한 채 사라져 간다. 자극적인 썸네일과 어그로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발버둥이다. 그렇지 않으면 클릭하지도 않으니깐 말이다.


경쟁을 강요하는 플랫폼에서 진짜 문제는 바로 나보다 잘하는 인간들이 너무너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것도 글로벌하게 말이다. 동네 축구짱은 이제 거드름 필 곳도 없다. 이미 사람들은 메시와 손흥민의 경기를 수 없이 봤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공을 만져본 적도 없는 이들도 많다.


생산이 고도로 전문화되고 질이 올라가면, 결국 승자가 살아남는 구조에서 그들이 유일한 공급자가 된다면, 대다수는 소비자만 된다. 그저 카드를 지르고, 카카오 페이를 안면인식으로 결재하는 경제활동에 적합한 인간으로 남게 된다.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인간으로 말이다. 이미 엄마가 해준 밥보다 배달 음식이 맛있다.


플랫폼은 경쟁을 하지 않고 경쟁을 시킨다. 누구에게나 길을 열려 있으니 와서 마음껏 달리라고 유혹한다. 성공한 사례를 보여주며, 여러분들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으며,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조던을 보고 농구선수를 꿈꾸는 미국 흑인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NBA에 들어갈 확률은


13만 분의 1


나머지 12만 9999명은 무엇을 해야 할까?


플랫폼 세상은 뭐든지 손가락만 까딱하면 되는 세상인데, 정작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없어졌다.


눈은 높아지는데 내 능력은 그대로


하지만 한 가지 할 수 있는 게 남아있다.


'댓글 리뷰 좋아요 싫어요'


역시 곰은 재주만 부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그 곰이 재주를 부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채찍을 맞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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