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서천재 정태유 Dec 04. 2019

매일 책을 산다. 책으로 산다.

세상은 온통 책으로 가득하다.

  '신간은 대개 1년이면 잊혀지는데 특히 책을 빌리는 사람들에게서 잊혀진다.'
    - 에반 에사르

  인터넷 서점의 경우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그중에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산 책의 권수를 손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12월만 되면 나는 내가 산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읽은 책이 몇 권이나 되는지 살펴본다. 그렇게 한 해를 되짚어 보고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의 독서계획을 세운다. 올 한해 계획했던 책을 읽었는지, 어떤 점이 부족했고 어떤 점이 뿌듯했는지 등을 반추해 보면서 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대략 한 해에 약 400여 권을 사서 읽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여태껏 읽지 못해서 애태우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책들을 전부 포함해서 그렇다. 지난 내 독서 생활을 살펴보고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일 년 365권의 책을 사서, 매일 한 권씩 읽었다고 한다면 실제로 매일 책을 산 것은 아닌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책을 사려고 일부러 서점에 간 적이 언제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한 달 이내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 글을 읽는 것에 많은 흥미를 느낄 것이다. 만약 1년도 더 지난, 기억에도 흐릿할 정도라고 한다면 ‘책’이라는 ‘물건(Object)'에 대한 관점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진심으로 책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책을 우선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서점에 가는 것이다. 그곳에 초대형 서점이든 동네서점이든, 심지어 전철역 키오스크처럼 베스트셀러나 잡지만 파는 곳이라도 상관없다. 그 어느 곳이든 책을 파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가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책을 사는 것이다. '책 = 인생(Book = Life)'이라는 개념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해서든 책을 읽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도서관에 간다든가 책 대여점 등 굳이 사지 않더라도 빌려서 읽는 방법도 있는데 굳이….'     

  책을 읽기만 하면 된다고 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서 책을 산다고 하는 그 행위가 있어야만, 책이 온전히 그 대가(내가 원하는 삶)를 돌려준다고 말하고 싶다. 책은 단순히 종이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덩어리가 아니라, 저자의 기(氣)와 에너지가 흐르는 생물이라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책을 사는 그 행위가 Book Life (책 = 인생)이라는 커다란 전체를 시작하는 일종의 의식(儀式, Ceremony)이고, 반드시 책을 사는 것에서부터 진짜 책 읽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되물을 수 있다.

  "만화라든가 소설 같은 경우에는 한 번 읽고 다시 읽는 경우가 드문데 그래도 사서 읽어야 합니까?"

  내 대답은 여전히 '그렇다'이다. 단 한 번을 읽더라도 책은 사서 읽어야 한다. 그 대신 단 한 번이라는 조건이 붙는다면 목숨을 걸듯이 최선을 다해서 읽어야 한다. 책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순간 책 또한 당신에게 에너지를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사이토 다카시는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한다.

  "서점에 가서 주머니를 털어 책을 사라자신이 직접 제 돈으로 책을 사서 읽어야 그 안에 실린 말이 몸속에 쉽게 스며들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데 있어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도 많이 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샀는데 막상 읽다 보니 내가 잘못 골랐나 봅니다. 그러면 돈을 주고 샀으면 아깝잖아요. 다른 책을 살 수도 있었는데…."

  물론 가능한 경우다. 그렇더라도 내 대답은 여전히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이다. 만약 당신이 정말 심혈을 두고 골라서 산 책인데도 불구하고 읽다 보니 실망만 안겨 주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앞에서 책은 사람과도 같고 살아 있는 생물과도 같다고 하였다. 그날의 컨디션, 기분에 따라서 책과의 관계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분위기로 흐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날, 다른 시간대, 다른 장소에서 다시 읽어보라. 그래도 똑같은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시간과 장소, 분위기를 바꿔서 읽어보라. 만약 몇 번을 해도 그렇다면 오히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읽어보아야 한다. 책 속의 글자와 이야기는 변함없는데 그 책을 읽는 나 자신의 반응이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책을 반드시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돈만을 소비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돈뿐만 아니라 내가 들이는 시간과 열정,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다. 고생스럽게 땀과 노력이 들어있는 돈과 시간을 내서 책을 산다는 것, 이 또한 의식(儀式)처럼 작용하게 되고 결론적으로 그 책의 내용은 소중한 나의 지식과 지혜, 경험이라는 에너지로 변환하게 된다. 그렇다. 책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에너지가 숨겨져 있다. 만약 그 에너지가 눈에 보인다고 한다면 당신은 결코 쉽사리 책 대여점에서 빌려서 읽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처음부터 지금처럼 모든 책을 사서 읽은 것은 아니다. 내게도 책을 빌려 읽던 시절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대학생 시절에도 그랬다. 학교 도서관에서도 빌려 읽었고, 동네 대여점에서도 빌려 읽었다. 워낙 책 욕심이 많았던 나는 학교에서는 세 권을 꼬박꼬박 빌렸다가 다 읽고 반납하기를 빠짐없이 반복했었다. (당시 2주에 3권을 빌릴 수 있었다. 그중 한 권을 반납하면 다시 새로운 한 권을 빌릴 수 있다) 방학 때는 주로 동네 책 대여점을 이용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최근에 출간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장점에 정말 말 그대로 마음껏, 욕심껏 빌려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책과 함께한다는 기쁨도 잠시 책을 다 읽고 반납하고 나면, 한 편의 영화를 본 듯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아련한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버리는 것이었다.

  앞에서 나는 단순히 책이 주는 에너지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서점이 주는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다. 지금 대형 서점에 가보자. 독서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보라. 남녀노소를 구분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책이라는 즐거운 세상 속에서 자신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자아'를 키우고 있다.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순간 어느덧 나 자신도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고 보이지 않는 내 영혼의 에너지가 커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책을 통해 서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책을 빌리는 것은 언뜻 보면 적은 돈(대여료)으로 큰 이득(책을 읽는 기쁨)을 얻는 것 같이 생각된다. 하지만 더 길게 보자면 오히려 큰 손해가 된다. 쉽게 말해 단순히 취미로서 책 한 권을 택했다고 한다면 당신은 분명 더 큰 이득을 얻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길다. 그 인생의 어느 한순간 지금 당장 당신에게 예전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언젠가 한순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기억 저편에서 끄집어내겠는가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책은 에너지 덩어리다. 내가 최선을 다해 정열을 쏟아 책을 읽었다고 한다면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책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꾸준히 내 기억과 함께 교류하며 나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존재다. 어느 날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이, 책의 어떤 문장이, 그 문장을 읽었을 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는 것은 책이 나에게 다시 읽게 만드는 것이다. 책이 나를 부르는 것이다.     


  나는 다음 네 가지 방법으로 책을 구매한다.

  첫 번째, 일주일에 한 번 대형 서점에 간다.

  대형 서점은 그 크기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책들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자기 위로와 같은 심리학 서적이 주류를 이루고 있구나.'

  '역시 요새는 음식에 관한 책들이 많구나.'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서 한 권은 꼭 사서 온다. 그 책이 일주일간 내가 일용할 마음의 양식이 되는 셈이다.

  두 번째, 마찬가지로 거의 매일 온라인 서점을 찾는다.

  당연히 오프라인 서점보다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책을 접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의 장점은 최신 서적은 아니더라도 오래전부터 인기를 끌어왔던 베스트셀러를 중고서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바쁜 생활 중에 책을 사기에는 그만인 것이다.

  세 번째, 헌책방이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헌책방은 점점 더 발걸음을 옮기기 어렵게 변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지역별로 곳곳에 건재하고 있는 것이 또 헌책방이다. 내가 사는 인천의 경우 배다리에 가면 헌책방 거리를 볼 수 있다. 나는 한 달에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방문한다. 헌책방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방법과는 정반대다. 내가 고른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책을 둘러보던 중 책이 나를 부르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어? 이 책. 제목이 너무 낯익은 것 같은데?'

  '우와. 이 작가가 이런 책도 썼었나?'

  '드디어 이 책을 발견했네! 절판되어 도저히 구하기 힘든 책이었는데. 오늘 운이 좋은데?'

  이런 순간들 말이다. 책값이 비싸서 책을 못 읽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책을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만약 책이 내 목숨을 구해 줄 도구라고 한다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있을까? 이런 순간이야말로 "낡은 외투를 그냥 입고 새 책을 사라"고 한 오스틴 펠프스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처음 가보는 곳에서 서점을 찾는 것이다.

  직업 특성상 국내 여러 곳에 출장에 갈 일이 자주 있는 편이다. 그렇게 새로운 지역에 가게 될 경우, 나는 항상 주변에 서점은 없는지 미리 알아본다. 굳이 멀리 일부러 찾아가야 할 정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잠깐 짬을 내서 그곳 서점에 가는 것이다. 낯선 지역에서 낯선 서점에서 낯선 책을 만난다는 것. 진정한 책 읽기를 하는 사람 관점에서 이것보다 더한 기쁨은 또 없다.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책과 함께한다는 마음만 있다면, 세상 어디에 가든 새로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양에서 전해 내려오는 말 중에 삼치(三癡)라는 말이 있다. 삼치란 남에게 책을 빌려달라고 하는 바보, 남에게 책을 빌려주는 바보, 남에게 빌린 책을 돌려주는 바보를 뜻한다. 그만큼 책을 빌리거나 빌려주지 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길다. 그 길고 긴 인생을 함께해줄 수 있는 친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친구만큼이나 소중한 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친구와 책. 그들과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 책은 평생을 함께하는 친구와도 같다.     


  세상 모든 곳에 책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니 매일 책을 사고, 그 책을 읽어보라!          


-------------------------------


  작년인 2018년의 경우 제가 즐겨 애용하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는 제가 사서 읽은 책에 대해서 이렇게 알려주었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적어서 작년 내용으로 보여드립니다.)

  온라인 서점에서 약 200권이고, 직접 서점에 가서 산 책도 약 이 정도가 되니 하루에 한 권의 분량으로 사서 읽긴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서도 해보지 못한 전국 상위권을 책 읽기에서는 해냈던 것 같습니다. 40대 남성 전국 0.7%에 해당한다고 하네요.

작가의 이전글 한 권이 아니다. 두 권, 세 권을 읽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