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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스정 Aug 26. 2022

그림을 배우면서 느낀 지혜 : '처음'의 중요성

작은 일상, 그림을 통해 배운 삶의 지혜를 전달합니다.

요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친한 지인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배웠던 것인데,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는 재미에 빠진 것 같다. 그림을 그리면 집중과 몰입,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그림을 그리면서 삶에서 필요한 것을 깨달은게 있다. 바로 '처음'의 중요성이다.



1. 처음의 처음, 내가 이걸 왜 그리고 있지?

<그림 그리고 있는 타스정의 모습 ㅎㅎ>


내가 처음 시작한 그림은 초상화였다. 친한 지인에게 감동을 선물하기 위해서 선택했다. 그런데 유화로 그리는 초상화는 내 생각보다 어려웠다. 초보자가 사람의 표정, 음영, 굴곡 등을 표현하는 것이 풍경화보다 훨씬 어렵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옆에 계신 50대 아저씨가 그리는 풍경화를 보게 되었다. 멋지게 그리고 계신 그림을 보며, '아 나도 풍경화나 할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원데이 클래스로 신청한 수업이기에 더욱 초조했다. '시간 내에 못하면 어떻게하지?'라는 불안과 초조함이 엄습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초상화를 그리기로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한 지인에게 '자신이 멋지게 나온 사진을 그림으로 그려주면 더 좋아하지 않을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굳이 초상화여야 했을까?' 라는 생각에 내 대답은 'YES'였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풍경화보다, 개인의 초상화가 훨씬 의미있고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오히려 해야할 일이 선명해졌다. 시간에 쫓겨 친한 지인이 더 좋아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선생님, 혹시 오늘 다 못그리면 어쩌죠?" 라는 말에 선생님은 웃으며, "다음 시간에 또 오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 시간에도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괜찮다며, 다음에 또 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총 6시간에 걸쳐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을 보며 좋아할 친한 지인의 모습, 그림을 완성한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만약 중간에 풍경화로 변경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림을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비슷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친한 지인에게 주는 감동은 오히려 초상화보다 적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한 가지 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왜 이것을 시작했는가?"에 대한 내 생각이 확고하지 않으면, 주변의 상황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이 분명하면 해야할 것에 대해 선명해진다. 반면, 목적을 잃어버리면 결국 스스로가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실제 결과물이 그럴 것이고, 내가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성취욕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삶, 일, 직장생활 등에서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얼마나 될까? 직장생활의 목적을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그림을 그리는 목적을 "그림을 완성해야되서"라는 말과 같다. 오히려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말이 더 맞다. 더 나은 삶에 지금의 직장생활이 그것에 적합한지 끊임 없이 'Why'를 던져야한다. 만약 그 답에 "잘 모르겠다", "이게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다시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진중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2. 처음을 위한 준비, 무엇을 그릴 것인가?


그림을 그리기 전 준비할 사항은 무엇일까? '붓을 가져온다', '캔버스를 가져온다' 등 답이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맨 처음은 바로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그림에는 자화상, 초상화, 풍경화, 추상화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들 중에서 내가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나서 필요한 붓, 캔버스 등을 가져오면 된다. 어떤 분들은 다양한 종류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모르고 오신다. 그런 분들은 수업이 시작되면 무엇을 그릴지부터 찾으며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앞서 말한 목적에 따라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선택지는 많다. 그 중 내 목적에 부합하는 '무엇'을 찾고 선택하는게 중요하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왔어요!"로 무엇을 찾고 선택하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낭비를 초래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선물을 하고 싶어서', '집에 걸어두고 싶어서'라는 'why'를 찾는다면 '무엇'을 찾는 것이 보다 명확해진다. 여기서 깨달은 것은 목적에 따른 무엇이 없으면 판단을 할 수 없고 실행을 할 수 없으며, 하더라도 그릇된 판단과 실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 앞에 말한 경험에서 미술 선생님이 "시간 상 초상화보다 풍경화가 나아요"라고 말해서 초상화가 아닌 풍경화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나쁘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만족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선물을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초상화라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에 대한 명확한 표상을 그리고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초상화면 초상화, 풍경화면 풍경화. 그렇다면 어떤 초상화. 어떤 풍경화인지 확실히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초상화를 그리고 싶은데 어떤 모습의 초상화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무엇을 할지에 대한 결과물이 떠오르지 않는데 그냥 실행하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다. 적어도 그림의 결과를 떠올릴 수는 있어야 한다.


우리 일도 그렇다.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프로젝트의 목적이 뭔지 모르면 무엇을 할지 몰라 실행할 수 없다. 또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결과물을 떠올리지 못하면 무엇을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게 된다. 시간만 낭비하고 결과물이 좋지 않거나, 결과물이 아예 안나오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모습을 그리지 못하면 우왕좌왕하며 쓸데없는 곳에 시간만 쓰게 된다. 물론 예상했던 결과물과 다른 경우들이 인생에서 허다하다. 마치 콜롬버스가 인도를 가려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콜롬버스는 궁극의 모습인 '인도'를 그리고 배를 움직였다. 뜻 밖의 결과도 명확히 그리는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소리다.




3. 가장 중요한 처음, 스케치가 잘못되면 조금 다른게 아니라 그냥 다르다.



무엇을 그릴지 정하면 처음 하는 일은 스케치다. 연필로 구도를 잡고 선을 그린다. 단순한 스케치에도 엄청난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 캔버스의 크기는 어떤지, 중앙은 어디인지,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지를 시뮬레이션한다. 그 과정에서 선을 그리고 지웠다를 반복한다. 물론 스케치가 완벽할 필요는 없다.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케치가 중요한 이유는 '전체적인 구도', 즉 방향성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


"밑작업이 잘되서 괜찮아요." 미술 선생님이 내게 한 말이다.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전체적인 구도를 잘 잡으면, 원하는 결과를 그릴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그림이 왼쪽으로 치우쳐져 있거나, 강조하고자 하는 얼굴의 위치가 중앙이 아니거나, 입술의 위치가 다른 상태에서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된다. 그리고 캔버스에 색을 입히는 순간,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다른 그림을 완성시킬 것인가?"


다른 그림을 그리면 처음의 목적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그렇다면 방법은 처음부터 다시 스케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처음 그렸던 스케치가 잘못되었다는걸 부정하고 싶지 않거나,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의 결과는 당연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그림이 되어 나온다. 그리고 스스로의 결과물에 대해 불만족해한다. 뻔한 결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타스정이 기획한 '리버스 멘토링' 기획안 中 일부>


새삼 내가 해왔던 일과 삶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해왔던 많은 프로젝트의 기획안을 들여다 보았다. 기획안은 내가 원하는 그림을 실행하기 위한 스케치 작업이다. 기획안은 '목적 - 결과 - 방법 - 효과'를 설정한다. 뚜렷한 목적에 따른 결과를 상상하고, 그 방법과 효과를 시뮬레이션 하는 스케치 작업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는 몇 번을 지우고 썼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기획안이 통과되고 실행되는 순간 기획의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미 기획 내용에 많은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어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탄탄한 기획을 갖추지 못해 실행에 옮겨 실패한 프로젝트도 여럿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잘못된 스케치는 수정할 수 없고, 잘못된 결과를 낳았다.


인생은 어떨까? 20대 취업이란 스케치와 색칠을 경험했다. 30대가 된 지금, 나는 또 다른 인생의 스케치를 그리며 썼다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 색을 입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스케치는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방향을 설정하는 단계인 만큼, 전체적이고 폭넓은 시야에서 종합적인 결과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림에서 스케치는 단순히 그림을 완성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전달 받는 사람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고 전달할 것인가까지 고민하는게 스케치이다. 기획안으로 따지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게 기획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까지 고민하는 것이 기획안인 셈이다.




4. 처음이 탄탄하면, 수정과 보완은 늘 이뤄질 수 있다.



그림을 그리며 놀랐던 것은 수정·보완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이 '한번에 완벽하게'를 생각하며 그린다는 것이다. 붓을 캔버스에 갖다 델 때, '이 색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섯불리 색칠 하지 않는다. 혹은 그 색배합을 찾아낼 때까지 팔레트에 색을 만드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나 스케치가 제대로 되었다면 그것은 상관없다. 검은 색이던, 흰색이던 그 위에 다른 색으로 덧입히거나 붓으로 밀어내면 되기 때문이다.


얼굴의 표정, 주름, 음영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색배합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갈색으로 시작해서, 그 위에 검은색, 흰색 등 다양한 색을 계속 덧입힌다. 생동감을 만들기 위해 계속된 붓칠을 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서 계속 했던 말이 있다. "아, 망했다!" 그 때마다 선생님은 "괜찮아요, 밑그림이 잘잡혀서 색을 입히면 되요!" 라고 말씀해주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점차 그림은 원하던 결과를 만들어갔다. 때론 조금 다른 색을 섞어 다른 형태를 만들어내는 과감함도 보였다. 뭐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던가? 결과에 대한 믿음이 생기니 붓질이 조금 더 과감해진 것이다.



일과 삶에 빗대어 고민해보았다. 스케치 할 때 당연히 계획들을 고민하고 실행한다. 그러나 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가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끊임없는 수정과 보완의 연속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다. 확신은 처음 내가 세웠던 목적, 방향, 기획에 모두 담겨 있다. 결과를 만드는데 색칠은 하나의 과정이지 완벽할 필요도 없고, 잘못된 색칠도 없는 것이다. 결과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색칠을 해나가다보면, 점차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색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완벽한 계획도 방법도 실행도 없다. 한번에 그려지는 것이 없는 것처럼, 한번에 완성되는 것도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처음을 얼마나 탄탄하게 설정하는가에 있다. (탄탄하다는 것은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처음을 탄탄하게 만들면, 그 다음은 언제든지 수정보완해서 고쳐나갈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을 지언정, 원하는 결과를 보게 될 수 있다. 때론 놀라운 결과도 만들어낼 수 있다.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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