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부모상고에는 먼산이 안보이더니 자식이 죽으니

앞뒤가 다 안보인다 (완료)

by 윤본
스크린샷 2025-09-08 오후 1.33.28.png "When parents die, you cannot see the distant mountains, but when a child dies, you cannot see anyth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누구나 큰 슬픔에 빠집니다 하지만 아직 주변을 볼 수 있는 여유가 남아 있는 반면, 자식이 죽었을 때는 그 슬픔이 훨씬 더 깊고 절망적이어서 앞뒤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과 고통이 크다는 의미를 이 속담은 말하고 있습니다.


거의 30년이 다되어 갑니다. 1996년 1월, 군복무 시절 상병 정기휴가를 나오던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강원도의 첩첩산중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던 저는 몇 개월 동안 오매불망 이 휴가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 정기 휴가는 다른 동기들과 함께 다녀오는 휴가라, 서로 모여서 같이 놀 생각에 저도 동기들도 매우 들뜨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휴가 출발 며칠 전, PX의 공중전화로 아버지께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 저 이번에 휴가 나가는데 용돈 좀 주시면 안 되요?"

"이놈의 자식이! 군인이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 자꾸 돈을 달라고 하냐."

"동기들하고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하고 그러려는데 돈이 너무 부족해요"

"서울에서 쓸데없는 짓 말고 얼른 광주로 오기나 해 이놈아"


늘 그랬듯이 타박과 잔소리는 있었지만, 예상대로 아버지는 용돈을 부쳐 주셨습니다.


부대를 나와 동기들과 서울로 함께 갔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한 잔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원래는 하루 정도 서울 동기 집에 묵으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그날 따라 왠지 광주로 가고 싶어졌습니다. 집으로 가겠다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이상하게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 저는 그냥 광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광주 공항에 도착해 아버지께 다시 전화를 하니 어머니께서 받으시고는, 지금 다 병원에 있으니 그리로 바로 오라고 하십니다. 며칠 전 부대에서 전화했을 때 아버지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계신 걸 알고 있어서 저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병원으로 갔죠.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자 마자 저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습니다. 아버지가 일반 병실이 아닌 응급실에 계셨고, 병상 근처에도 많은 친척들이 빙 둘러 계셨습니다. 누워계신 아버지도 저를 발견하고 살짝 울컥하신 듯 보였고 어머니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저를 데리고 잠시 따로 말을 하자며 밖으로 불러내셨습니다.


"아빠가 6개월 밖에 못 사신단다. 간암 말기라고 의사선생님이 그러셨다."


사실 엄청 충격적이지도,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도 아닌 그냥 계속 어리둥절했던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눈물도 나지 않았구요. 집에 가서 씻고 옷도 좀 갈아입고 다음날 오라고 하셔서 저는 그냥 무기력하게 그렇게 집으로 갔습니다. 당시 기분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집에서 누나와 여동생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그저 그날의 날씨도, 집안의 느낌도 매우 썰렁하기만 했던 기억만 조금 남아 있습니다.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급하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6개월은 살 수 있다던 의사선생님의 말씀에도 아버지는 허망하게 바로 혼수상태가 되셨고, 제게 "엄마한테 잘하라"는 그 한 마디만 남기신 채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급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식어가는 손을 잡아드리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아버지 귀에 주기도문과 성모송을 계속해서 기도 드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급하게 장례를 치르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다시 훈련을 하고 경계근무를 서고 또 휴식을 하고 매 끼니 밥을 먹고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혼자 담벼락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많아졌을뿐, 생활이 전과 달라진 건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아버지의 죽음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과 혼란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우울과 짜증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부담 이런 걸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는 돌아가실 때의 당신의 마음을 조금 알 수도 있는 것 같았지만, 그때는 오로지 내 기분만이 전부였고, 남은 가족들이나 심지어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할머니와 할아버지조차도 별로 안중에도 없던 매우 철없던 시절이었죠.


제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또 직장을 다니면서, 언제나 광주에 갈 때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뵈었습니다. 큰절을 올리고 손을 잡아드리고 손수 차려주시는 밥을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할머니는 제 손을 잡으실 때면 늘 아버지 말씀을 하셨고 또 언제나 눈물을 흘리며 우셨습니다. 자식이 죽은 지 10년이 지나도 또 20년이 지나도, 늙은 어머니 가슴속의 먼저 간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첫 직장을 구했다며 인사드리러 갔을 때에도, 결혼을 하겠다며 손주며느리와 함께 인사를 갔을 때에도, 시간이 더 흘러 손자가 증손자를 낳아 당신 품에 안겨드리러 갔을 때에도 항상 그렇게 할머니는 우셨습니다.


몇 해 전 백 수를 누리시고 할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일찍 떠나버린 아버지에게 짜증이 났고 미래에 대한 부담으로만 가득찼던 철없던 아들과는 달리, 그를 배 아파 낳은 어머니는 당신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황망하게 먼저 간 자식이 눈에 밟혀 끝까지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른 집들처럼 저도 아내와 세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 손가락에 가시만 박혀도, 무릎에 생채기만 봐도 내가 아픈 듯 마음이 아립니다. 부모의 온갖 신경은 아이들에게 가기 마련이지만 이 아이들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부모에게는 무심하게 그렇게 자라겠지요.


우연히 알게 된 이 속담은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속담은 아닙니다. 그 내용 또한 결코 밝은 내용이 아니죠. 그러나 할머니 덕분에 늦게 나마 깨우친 내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더불어, 내 아이들도 언젠가는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계속 이어나갈 내리 사랑의 깊이를 이를 통해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기를 바래 봅니다.




This essay explores the profound meaning behind a traditional Korean proverb: "When parents die, you cannot see the distant mountains, but when a child dies, you cannot see anything in front or behind." This ancient wisdom speaks to the universal truth that while losing one's parents brings deep sorrow, losing a child brings a parent incomprehensible, all-consuming grief.


The narrative begins in January 1996 when the author, then a young soldier on military leave, receives devastating news about his father's terminal liver cancer. What follows is an intimate portrayal of sudden loss—his father's unexpected death just hours after the diagnosis, leaving behind only the words "be good to your mother."


The story's emotional core lies in the author's gradual understanding of his grandmother's decades-long anguish over losing her son. Through vivid recollections of visits where his grandmother would weep while speaking of her deceased son, the essay reveals how parental love transcends death itself.


Years later, as the author becomes a father of three children, he experiences a profound awakening. The smallest injuries to his own children cause him overwhelming concern, making him finally comprehend the depths of parental love. This realization brings new meaning to his grandmother's endless tears and helps him understand why the Korean proverb places a child's death as the most devastating loss a parent can endure.


The essay masterfully weaves together personal narrative with cultural wisdom, showing how ancient sayings carry timeless truths about human nature. It's a meditation on love, loss, and the cyclical nature of understanding that comes only with lived experience—how we truly comprehend our parents' love only when we become parents our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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