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눈먼 자식이 효자 노릇한다.

(완료)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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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ind child becomes the dutiful son

이 속담은 말 그대로의 뜻보다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는 상황을 비유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무시당했던 사업 아이디어가 예상치 못하게 회사의 주력 상품이 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인맥이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을 주는 경우처럼, 하찮게 여겨졌던 일이 나중에 귀중한 자산이 되는 경우를 일컫을 때 종종 비유하곤 하죠.


2022년 여름,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던 저는 갑자기 인사부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APAC 사장님과 매니저가 함께 참석한 미팅에서, 저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소식을 들을수 있었죠.


"미안하지만, 당신의 Employment Pass(취업비자)를 갱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으나,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자세한 설명도 듣기 전에 저는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게 무슨 비즈니스 매너에 어긋난 일입니까? 당신들이 오퍼를 해서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곳에 와서 이제 막 정착하는 중인데, 갑자기 비자 갱신을 못 해준다니요? 지금 저를 해고하겠다는 겁니까? 제가 해고당해야 할 이유가 뭐죠?"


APAC 사장님은 미팅이 끝난 후 별도로 얘기하자며 진정시키려 했고, 해고가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고 저를 달랬습니다. 미팅 후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니, 회사가 싱가포르 노동청으로부터 페널티를 받아 외국인 직원들의 비자 갱신이 제한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저의 문제가 아닌 회사의 책임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였습니다. 회사는 여전히 제가 필요하며, 함께 대안을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위로하는 말일지라도, 상황은 결코 제게 유리하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제시한 대안은 호주나 홍콩 사무소로 이전하는 것과, 동시에 개인 취업비자를 신청하여 가능한 빨리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하나도 100% 보장된 옵션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먼저 고려했던 옵션은 호주 사무소로의 이전이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은 기대되었지만, 이제 막 적응을 시작한 아이들을 데리고 또다시 새로운 곳에서 서툰 생활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이 선택은 아이들에게 그리 좋지 않을 것 같다며 탐탁치 않아 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안인 홍콩 사무소로의 이주를 추진했습니다. 비자는 손쉽게 나왔지만 아이들은 홍콩에서의 학교 생활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이곳보다 훨씬 더 중국스러운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홍콩 워킹 비자를 받고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생활 해야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황으로 정리할수밖에는 없었죠. 반면 다른 옵션이었던 개인 취업비자는 발급이 안될 수도 있고, 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크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홍콩 비자 처리를 위해 입국한 후 다음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오기도 하는 등 비정상적인 회사 행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 갔습니다. 저는 점차 회사에 대한 애정이 식어 갔고, 결국 2023년부터 저는 홍콩 오피스 소속 외국인 직원 신분으로 싱가포르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급여도 홍콩 달러로 지급받고, 휴가나 출장도 홍콩 오피스에 소속되어 처리하는 등 불편한 게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개인 취업비자(PEP)가 승인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저는 다시 싱가포르 오피스로의 복귀를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제 기대처럼 복귀 절차를 서두르지 않아 보였고, 끈질기게 요청하고 기다린 끝에 4개월 후 저는 다시 싱가포르 오피스에서 합법적인 비자를 가지고 근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편해졌지만, 회사의 미숙한 일처리에 대한 불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취득한 개인 취업비자 역시 여전히 마뜩치 않았죠. 그러던 중, 11월 어느 날, 본사 CEO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메일을 받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글로벌 조직을 구조조정하기로 했으며, 당신의 포지션은 새로운 조직으로 통합되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결정은 당신의 퍼포먼스나 개인적인 문제와는 무관하며, 나중에 다시 입사할 때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습니다. 당신의 공식적인 근무 종료일은 12월 말입니다."


소정의 위로금이 포함된 패키지와 함께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매우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지만,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회사에 대한 불신이 쌓여 있었고, 무엇보다 당시의 비자가 개인 취업비자여서 마음의 여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특정 회사의 취업비자를 가진 외국인 근로자가 회사와의 계약이 종료되면 한 달 안에 싱가포르를 떠나야 합니다. 법적으로 그렇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한 달 내에 새로운 직장을 찾으면 비자가 연장되지만, 현실적으로 한 달 내에 갑작스럽게 해고된 외국인 근로자가 새로운 직장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변에 갑자기 싱가포르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는 가족들도 많고, 아버지만 급히 한국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이 볼수 있죠.


그러나 개인 취업비자(PEP)를 보유한 외국인 근로자는 최대 6개월까지 합법적으로 싱가포르에 거주하며 직업을 구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저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게 다음 직장을 알아볼 수 있었죠 . 두 달 정도 구직활동 후에 한 회사에서 오퍼를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싱가포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의 행정에 매우 짜증이 났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굳이 개인 취업비자를 사용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 비자가 제게 금쪽 같은 생명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이 비자를 신청해 놓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서울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고 지금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우울하게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 의미 있는 연결고리가 되는 듯 합니다. 처음에는 전혀 의미없게 보이거나 성가시게만 느껴졌던 개인 취업비자가, 결국 가족의 안정과 제 경력을 지켜준 든든한 기반이 된 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당장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것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부정적으로만 볼것만도 아닙니다. 결국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단비와 같은 존재는 종종 그렇게 다가 오기도 하니까요.


The Korean proverb "눈먼 자식이 효자 노릇한다" (The blind child becomes the dutiful son) describes situations where something initially deemed insignificant or burdensome later proves invaluable.


This essay recounts a personal experience in Singapore where the author faced unexpected visa complications while working for a multinational company. When his employment pass couldn't be renewed due to company penalties from Singapore's labor authorities, he was forced to navigate complex relocation options and eventually obtain a Personal Employment Pass (PEP) as a backup solution.


Initially frustrated by this bureaucratic inconvenience, the author later discovered its life-saving value when he was suddenly laid off during corporate restructuring. Unlike regular employment visa holders who must leave Singapore within one month of termination, the PEP allowed him six months to find new employment, ultimately preserving his family's stability and his career trajectory in Singap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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