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게 기둥에 입춘

(완료)

by 윤본
스크린샷 2025-09-21 오후 8.36.03.png

Hanging New Year's Calligraphy on a Shabby Store Post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가겟집 기둥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 써 붙인다는 뜻으로, 제격에 맞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할 수 있겠지만 '입춘첩'이라는 것을 알면 쉽게 이해가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을 맞이할 때, 그 해 풍년과 가족의 무탈을 기원하며 문 앞 기둥에 '입춘대길', '건양다경'과 같은 좋은 글귀를 써서 걸어 두곤 했습니다. 이를 입춘첩이라고 불렀죠. 입춘첩은 주로 좀 사는 사람들이나 장사가 매우 잘되는 가게에 걸리곤 했습니다. 비루한 가겟집 기둥에 화려한 입춘첩이 걸린 모습을 상상해 보면, 분수에 맞지 않는 상황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격에 맞지 않는 일을 에둘러 꼬집을 때 쓰이는 속담입니다.


중학교 때의 저를 기억해 봅니다. 당시 중학교를 졸업할 때면 전국의 모든 중학생은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보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일종의 고등학교 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당시 공부를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최상위권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제 기억에 가장 잘했던 성적이 반 3등 정도에 전교에서는 20등 내외였던 것 같습니다. 한 학년이 5-600명 정도 되었으니 못한 성적은 아니었죠.


연합고사가 막바지에 이르던 때 몇 번의 모의고사를 보았는데 비슷하게 2-30위권 성적을 받았어서 실제 시험에서도 이 정도 받겠구나 자연스레 생각하고 있었죠. 시험 당일, 특별한 일도 없었고 컨디션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시험 문제도 적당히 어려운 문제가 여러 개 있었고 몇 개 찍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치렀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문제의 사건은 시험이 끝난 후 정답을 맞혀 본 후에 발생했습니다. 웬걸, 어렵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의 정답이 죄다 내가 생각한 답들이었고 심지어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해 찍었던 문제마저 거의 다 정답을 맞춘 것이었습니다. 200점 만점의 197점을 맞았으니 평소 모의고사였다면 거의 전교 1등 수준이었던 거죠. 어안이 벙벙하고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정도로 기분이 묘했습니다.


나중에 공식 성적표의 점수는 예상한 대로 197점이었고 무려 전교 3등의 성적이었습니다. 친구들도 이게 무슨 일이냐며 다들 축하해 주었고, 선생님들도 저를 조금 다른 눈으로 보시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스스로 마치 원래부터 잘했던 녀석인 양 으시대곤 했었죠. 부모님 역시 아들에 대한 기대로 어깨에 힘 좀 들어갔던 시기로 기억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제게 겨울방학은, 오랜만에 할머니 댁에 가서 늦잠도 자고 그동안 못 본 사촌들하고 만나서 하루종일 놀거나 가족들과 여행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또 동네 친구들과 만나 오락실 가고 시시덕거리며 놀았어야 할 천금 같은 시간이었죠. 하지만 뒤늦게 '수재' 아들을 둔 부모님은 한 유명 입시학원에 덜컥 등록을 시키고, 지금 생각해도 머리가 아파오는 성문 종합영어니 수학의 정석이니 하는 것들을 미리 선행하게 했습니다.


학원 선생님도 중학교 3학년 아이에게 서울대가 어떻고 연고대가 어떻고 하는 머리 아픈 이야기들을 늘어놓으셨고, 소 뒷걸음질 치다 어쩌다 쥐를 잡은 제게 이런 공부는 어렵기도 했고 당연하게도 흥미도 의욕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 교장선생님은 입학 성적 우수학생들을 교장실로 불렀습니다. 좋은 성적 덕분에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눈길을 다른 친구들보다 더 받을 수 있었고, 내 어깨에 학교의 명예가 달려있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죠. 어쩌다 잘 찍은 연합고사 성적 가지고 저는 이미 학교를 빛낼 인재가 되어 있었고, 이 덕에 아버지 역시 복에 없던 학교 육성회 임원 자리를 뿌듯한 마음으로 덜컥 수락하셨습니다.


집안 형편이 썩 좋은 편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우수한 아들을 학교에 공부시키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라는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는 수락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뿌듯함은 당연하게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입학 후 첫 시험을 치른 저는 반에서 3등, 전교에서 30등 정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달 뒤 치른 중간 고사에서는 전교 50여 등으로 성적이 더 곤두박질쳤습니다. 사실 성적이 떨어졌다기보다는 제가 가진 원래의 실력으로 돌아온 건데, 교장선생님은 더는 제 이름을 모르시는 듯했고 아버지도 특별한 말씀은 없으셨지만 적지 않은 육성회비 내기가 아까우신 듯 보였습니다. 괜히 찍은 게 다 맞아서 이게 웬 망신인지 짜증도 났었죠.


그렇게 저는 고등학교에서 고만고만한 3년을 보냈습니다. 수능을 치르고 나서 그럭저럭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 제 나이도 어느덧 오십이 넘었습니다.


10대 시절의 그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통해 저는 겉모습과 실제 능력 사이의 차이,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잘못된 과대평가가 스스로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고등학교 연합 고사에서의 예상 밖 고득점은 저에겐 덧없기만 한 입춘첩이었던 셈입니다. 주변의 기대와 관심은 제 실제 능력과 맞지 않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고. 결과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맥 빠지게 하고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었죠.


살아 가다 보면 이처럼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거나, 일시적인 성과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하지만 사람의 진짜 모습과 능력은 시간을 두고 꾸준히 지켜봐야만 알 수 있죠. 저처럼 화려한 입춘첩에 현혹되지 말고,진짜 모습을 신중하게 살펴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Hanging New Year's Calligraphy on a Shabby Store Post" is a Korean proverb that describes something inappropriate or mismatched to one's status. Traditionally, Korean families would hang auspicious calligraphy called "ipchuncheop" on their door posts to welcome spring and pray for good fortune. These decorative scrolls were typically displayed by prosperous households and successful businesses. The saying ironically depicts the incongruity of hanging elaborate New Year's calligraphy on a dilapidated store post.


In this personal essay, the author reflects on an unexpected academic achievement during his middle school years—scoring exceptionally high on the national high school entrance exam despite being an average student. This sudden success led to unrealistic expectations from family and teachers, placing him in advanced classes and creating pressure that didn't match his actual abilities. The temporary achievement became his own "inappropriate spring calligraphy," leading to eventual disappointment when his performance returned to its natural level.


keyword
작가의 이전글11. 눈먼 자식이 효자 노릇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