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by 윤본
스크린샷 2025-09-28 오후 3.18.55.png Even a Dog at a Village School Recites Poetry After Three Years

서당에서 아이들이 매일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사는 개는 결국엔 시도 한수 읊을수 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환경이나 도전에 직면했을 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하고 능숙해지는 우리 인생을 잘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캠핑은 아내나 저나 처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시작하게 되었었죠. 동갑내기 회사 동기로부터 가족끼리 캠핑을 같이 가자는 권유를 받은 것이었죠. 친구 가족은 종종 캠핑을다니곤 해서 제가 준비할 것은 따로 없고 아이들만 데리고 오라며, 같이 고기도 굽고 재밌게 놀자고 했던 고마운 친구였죠.


하지만 저희는 아이가 셋이나 되는 대가족이었고, 게다가 당시 막내는 겨우 세네 살 밖에 안되었어서 아직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때였죠. 그때는 다섯 식구가 모두 함께 어딘가로 움직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적잖이 부담이 된것도 사실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덜컥 가기로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평소에 캠핑에 대해 그다지 좋은 느낌을 갖고 있지 않았던 저나 아내는 가기전부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난민촌처럼 빽빽히 늘어선 텐트들, 그리고 북적이는 사람들, 번거로워 보이는 음식 준비, 불편한 화장실과 샤워 시설까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우리 집이 있는데 굳이 매주 짐싸고 풀고 그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죠.


어느덧 약속한 주말이 다가왔고 아침부터 아이들을 챙겨 약속한 캠핑장으로 갔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수많은 텐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캠핑장은 텐트를 치고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신기한 척 흥분 되는 척 했지만 속으로는 큰 기대 없이 친구가 텐트 치는 것을 돕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고맙게도 우리 가족을 위해 텐트를 하나 더 준비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자기 가족이 작은 텐트에서 지내고, 우리 가족에게 크고 좋은 텐트를 마련해 주었죠. 민망했지만 친구의 배려로 우리 가족은 근사한 텐트에서 편안하게 머물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네와 함께 모닥불도 피워 보고, 고기도 구워 먹고, 다음날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도 재미있게 하고 그렇게 두 가족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좋은 텐트에서 지낸게 마음이 걸렸던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을 꺼냅니다.


"오빠, 우리 텐트 하나 사야겠다. 다음에 다시 초대받으면 이렇게는 미안해서 못가겠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인터넷으로 적당한 텐트를 하나 주문했고, 드디어 우리 가족의 캠핑 라이프는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우리 가족의 첫 캠핑날이 왔습니다. 모든게 수월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텐트를 설치 하는데만 네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보통 이런 쪽에 매우 능숙한 아내에게도 첫 텐트 설치는 만만치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텐트의 첫 모습은 심하게 삐뚤빼뚤했지만 부부는 나름 뿌듯해 했습니다. 우리가 씨름하는 동안 다행히 아이들은 신나게 뛰어놀아 주었고, 다른 캠핑 장비도 없어 집에서 가져온 냄비와 부루스타로 음식을 해 먹었습니다. 밤에는 집에서 덮던 요와 이불을 덥고 잠을 청했죠. 그날 새벽 비가 잠깐 왔는데, 모두 잠든 고요한 밤,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느꼈던 그 묘한 청량감이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우연히 시작한 캠핑은 다행히 저희 가족과 잘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씻는 게 불편하다던 아내도 씩씩하게 수건과 비누, 샴푸를 들고 샤워장에 다니는 것에 어느덧 익숙해졌습니다. 지금도 더운데 굳이 밖에서 또 불을 왜 피우냐던 생각도 자연스레 불멍을 즐기며 삼겹살과 소시지를 구워 먹고, 타들어가는 재를 보며 조용히 술 한잔을 나누는 쪽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타프, 테이블 등등 장비도 하나 둘씩 장만하고, 운 좋게 지인에게 난로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추운 겨울에도 등유를 챙겨가며 전국 캠핑장을 다녔습니다. 주로 방방장이나 수영장처럼 아이들이 즐길수 있는 시설이 있는 캠핑장으로 다녔기 때문에, 아이들도 즐겁게 함께 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몇 년간 꾸준히 캠핑을 즐기곤 했습니다.


강원도의 한 캠핑장을 예약하고, 지방에 계신 어머니도 초대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가야 해 아내가 아이들과 먼저 캠핑장으로 출발을 해야 했었죠. 원래는 저녁에 도착해 아내와 함께 텐트를 칠 생각이었습니다. 상당히 큰 거실형 텐트라 둘이 쳐도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아니 아내가 혼자서 그 큰 텐트를 완벽히 피칭을 해놓은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이제 캠핑 전문가가 다 됐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캠핑을 싫어하던 여인이, 세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혼자 다 해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우리 아내입니다.


둘째가 중학교 3학년 때 OBS(Outward Bound Singapore)라는 학교 행사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며칠간 야영 생활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매일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편하게 학교를 다니던 아이가 땅을 파고 텐트에서 잠자며 음식도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니, 부부는 적잖이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내가 캠핑 짬밥이 몇 년인데 걱정해? 괜찮아, 재밌을 것 같아."


하하 그러네요. 함께 캠핑 다닌 세월이 얼마인데 제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봅니다. 바램대로 아이는 건강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야영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한국이든 싱가포르든 이제 가족이 다 같이 다시 캠핑갈 일은 없겠지만, 텐트 치는 데만 네시간이 넘게 걸렸던 가족에게, 이건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부부에게 어느덧 우리도 모르게 캠핑 짬밥이 넉넉해졌고, 너무 익숙한 그리고 지금은 매우 그리운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This beloved Korean saying captures how repeated exposure naturally breeds expertise. Just as a dog living near a traditional school would eventually learn to "recite poetry" from constantly hearing students, we too develop skills through persistence and time.


This personal essay follows a reluctant family's transformation from camping skeptics to enthusiasts. What began with borrowed equipment and a four-hour tent struggle evolved into confident outdoor adventures. The wife who once dreaded uncomfortable facilities became capable of solo tent setup, while children gained wilderness confidence. Their journey perfectly embodies the proverb's timeless wisdom about gradual ma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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