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the Mean Person an Extra Rice Cake
인생을 돌이켜 보면 싫어하거나 미워했던 사람이 그렇게 많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걸 보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름 잘 맺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거나 그런것도 많지 않았던 것 같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속담을 선택한 이유는 제 인생에도 잊히지 않는 미운 사람들이 몇몇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다시피 이 속담의 의미는 싫거나 미운 사람일수록 더 잘 대해주고 그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가깝고 아주 편한 관계에서도 가볍게 츤데레식으로 챙겨주며, 옛다 이녀석아, 미운놈 떡하나 더준다고 해서 주는거야 라며 대놓고 농담을 하는경우들도 많죠. 글자 그대로 보자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뭘 챙겨주나 싶을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개선하려고 하는 의미로 생각해보면 이해도 가는 말입니다. 흔히들 직장에서 맞지 않는 동료나 상사들을 오히려 더 친절하게 챙김으로서 관계를 풀어나가는 상황이나 유독 트러블이 있는 자녀에게 더 신경을 쓰는 부모들의 마음을 설명할때도 종종 사용이 됩니다.
사실 싫었던 사람을 글에 남기는건 부담스럽기도 하고, 혹여 그들이 우연히 볼게라도 된다면 조금은 미안한 감도 있지만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공간이니 전적으로 나의 관점에서만 풀어보려고 합니다.
제 인생에서 미웠던 사람을 꼽아 보면 바로 두 사람이 떠오릅니다. 바로 B와 S입니다. 둘 다에게 제가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어렴풋하게 제가 본인들을 좋아하지 않음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니 강산이 한번은 변하고도 남을 오랜 세월이 지난 인연입니다. B를 처음 만난건 10여년간 근무했던 컨설팅 부서를 떠나 새로운 부서인 하드웨어 영업부서로 발령받으면서 부터였습니다. 새로이 합류하게 된 팀은 총 5명이 있는 팀이었고, B는 대리직급으로 그중 막내였죠. 당시 저는 차장 직급이었으니 사실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안경쓴 첫인상이 어리고 순수해보여서 오히려 내가 잘 대해주어야겠다고 마음 먹기도 했었죠. 제가 새로 맡게된 업무는 그 팀의 주 업무가 아닌 타 조직과 함께 하는 업무이다 보니 본 업무에 있어서는 서로 부딪칠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 부서장은 B의 업무중 일부를 저에게 배정을 하였고, 저 역시 팀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서 반색하며 업무를 받았었죠. 외국계 회사이고, 부서장을 제외하고는 수평 조직이다보니 차장이 대리의 업무를 하는것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문제의 시작은 업무의 인수인계과정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별한 업무도 아니었지만 10년간 다른 부서 업무를 보던 제게 새로운 업무는 상당히 생소한 일이었고, 그러다보니 저는 초짜 신입사원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었죠. 그래서 그런지 B는 인수인계를 하며 제게 한숨과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고 그럴때마다 저 역시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부서장에게 얘길해서 이 업무를 맡지 않겠다고 할까, 아니면 이녀석을 데리고 나가서 욕이라도 한바탕 퍼부어 줄까 온갖 생각이 들기도 했죠. 다른 시니어들에게는 살갑게 대하거나 장난도 치는 등 사람 착해 보이는 B는 유독 제게는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거나, 뭐하나 물어보려고 하면 무시하는 듯한 태도도 많이 보였습니다. 참다 못해 B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날오후 1층 카페로 B를 불러냈습닏. 갑작스런 상황에 B는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습니다.
"B대리님, 잠시 얘기좀 합시다. 우리 좀 이런게 좀 필요한 것 같애"
"..아니 왜요? 무슨일인데요?"
"B대리님, 내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요?"
"아니, 뭐...그런건 아니고요..왜그러시는데요?"
"나도 새로운 팀 와서 잘해보고 싶어요. 좀 도와주면 안될까?. 나는 이업무가 처음이잖아. 잘 모르는게 당연한거에요 그런데 B대리가 나한테 그럴때마다 서운하고 솔직히 화가 많이 납니다"
"아니, 뭐 그런건 아니었는데"
"잘좀 부탁합시다. 내가 할수 있는건 다 할께요. 필요한게 있으면 말해줘요"
"아니 뭐 네" 그리고 어쩌고 저쩌고 잘 들리지 않는 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사내들이 직접 만나 소주한잔 하며 오해를 풀고 이런건 아니었지만 나름 진심을 전했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만나서 얘기할때도 눈을 피하거나 말을 돌리며 당황해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이 많은 차장이 부탁을 한건데 조금은 달라질거라 기대를 했었죠.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B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갔고, 새로웠던 업무는 어느새 적응이 되었습니다. 다 같이 모이는 회의 외에는 B와 일로 엮이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업무가 적응이 되면서 B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이상하게도 점점 커져가더군요. 이런걸로 사람을 스트레스를 주었다니, 어느샌가 제 마음에서 B는 매우 싫은 사람으로 자리 잡아버렸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개인 페이스북의 일촌을 정리할 일이 있었습니다. B의 이름을 끊을때는 조금은 후련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부서의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SNS 에서 안부를 묻는 이도 있고, 또 다른 이는 나중에 이직을 고민할 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회사를 떠날 때 근사한 타이도 선물하며 축하해 주기도 했구요. 유독 B만이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제 마음엔 미운놈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속에 자리 잡은 또 다른 미운 사람은 S입니다.
그는 바로 전 직장의 사장님이었죠. 저는 수년전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기게 되었고, 저를 따라 가족 모두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다니전 직장의 아시아HQ인 셈이니 꽤 큰 조직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싱가포리안인 그는 저와는 위로 10살 넘게 차이가 나니 환갑이 넘은 나이이고 이미 한국으로 따지면 이미 정년이 지난셈이죠. 본인이 은퇴를 하거나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는한 별도의 정년 개념이 없는 싱가포르에선 그는 여전히 정력적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같은 직장에서 함께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입사 한후 1년쯤 지난뒤 여러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새롭게 입사했었죠. 당시 제 보스도 함께 입사하였고 그는 제 보스의 보스이자 싱가포르 오피스 전체를 책임지는 사장으로서 꽤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싱가포르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이 히트치고난 이후에는 넷플릭스의 한국 컨텐츠에 대해서 서로 웃고 떠들기도 하며 나름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죠. 비즈니스 또한 한국 사업을 책임지고 있던 제게 이런저런 비즈니스 현황들을 묻고 조언하며 함께 논의하기도 했었습니다.
나이는 나보다 많았지만 한국과 내게 보여주는 그의 관심은 매우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고 진심을 다해서 그와 커뮤니케이션을 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에 출장을 함께 다녀 온적이 몇번 있습니다. 당시 발에 깁스를 하여 몸이 불편했던 그를 위해 매일 아침 그가 묶고 있는 호텔로 가 동선을 챙기기도 했고, 식사를 포함하여 다른 개인적으로 궁금해 하는 것들 또한 가능하면 그를 위해 챙겨주고 도와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한 회사의 대표이니 그렇게 대해야 하는것이 응당 맞을수도 있지만 저는 마음으로 고마운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서 대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시절, 어느날 본사의 정리해고 바람이 싱가포르에 불어닥칩니다. 한국과 달리 이곳은 정리해고가 매우 잦은 편이고 또 급작스럽습니다. 담담히 그려려니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오히려 정리해고 위로금을 기대하고 반색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러나 제 상황은 달랐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워킹비자로 싱가포르에 있는 제게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다시한번 원치 않는 변화가 있을 수 있어서죠.
사람들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회사에 출근을 해 휴게실에 모여 지난 밤 미국본사의 CEO의 긴급 공지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있었습니다. 오늘 오전에 정리 해고 대상자는 이메일을 받을거라는 무시무시한 공지였죠.
다들 걱정스러운 눈으로 웅성대고 있었고 그가운데는 S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지팡이를 짚고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죠.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와 몇번 눈이 마주쳤고 애써 눈빛을 피하는 듯한 그가 느껴지면서 뭔지모를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불안감은 현실로 다가 왔습니다. 저를 포함해 몇몇 동료가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고, 연달아 노트북이 잠기고 출입카드도 먹통이 되었습니다. 주변 동료들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 했지만 저는 괜찮지 않았습니다. 다른 직장을 알아볼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았고 가족들과 함께 당장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 걱정해야 했었죠.
회사에서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 이후 제게는 한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기간동안 다른 동료들은 안부를 묻고 위로를 하기 위해 연락이 오기도 했고 새로운 직장을 소개해준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S는 연락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동안 미심쩍었던 상황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해고 당일에 내 눈을 피하는 그의 모습도, 몇주전 한국 출장 때 고객이나 파트너를 만나는 미팅에서 굳이 내 소개를 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요. 단순히 실수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지만 미팅 때마다 반복 되던 그의 그런 모습은 매우 찝찝했었거든요.
지인을 통해 들어보면 아직도 그는 대상자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를 빼고 사람들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회사의 대표인 S가 대상 리스트를 본사와 협의했다는 사실을요.
비즈니스는 상황이 항상 변할수 있으니 회사의 결정은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S에 대해서는 매우 큰 배신감이 들었습니다. 그가 내게 보여주었던 관심과 애정이 한낱 직원 관리에 지나지 않았었고, 내게는 너무나도 중요했던 비자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다는 것은 그에 대해 매우 큰 실망과 배신을 느끼게 했죠.
지금도 크리스마스나 연말이 되면 Happy New Year 하면서 그에게서 안부 메세지가 옵니다. 저도 똑같이 회신을 보내긴 하지만 속으로는 그때 생각이 나서 화가 치밀곤 합니다.
제 인생에 수많은 사람을 만났을 테지요. B와 S 말고도 제가 서운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또 있었겠죠. 하지만 그들과 어떤식으로든 진전된 관계를 맺고 좋은 기억으로 정리를 할수 있었기에 다른 미운놈이 떠오르지 않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B와 S는 나 스스로가 부족하여 결국 관계를 개선시키지 못해 제게 여태 미운놈으로 남아 있는것일수도 있죠.좀 더 크고 맛있는 떡을 그들과 나눴더라면 좀 달라졌을까요? :) 그러나 여전히 이들을 마주하기 싫고 이들의 행복을 빌어줄 마음도 안드는 걸 보면 그들이 제게 남긴 생채기가 조금은 깊은것 같습니다.
이들을 향한 미움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정당한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상처받은 마음을 쉽게 치유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속담은 매우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부끄럽지만 나이가 50이 되어도 미운사람은 여전히 미운 것처럼요. 무엇을 주고 받던지 사람간의 관계는 단방향이 아닌 양방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