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하다.

Like a Crab Hiding Eyes from the Wind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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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음식을 재빨리 먹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흔히들 사용하는 말입니다. 간단히 '게 눈 감추듯 먹는다'라고도 많이들 얘기하죠. 가까운 갯벌에 가보면 뻘 가운데 구멍이 송송 나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작은 게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죠. 자세히 살펴보면 두 눈을 쫑긋 밖으로 내놓고 종종거리며 다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기척이라도 들릴라 치면 어느새 눈을 쏙 집어넣고 구멍으로 손살같이 들어가 버립니다. 이렇듯 게는 주변 경계심이 매우 심해 조금의 변화라도 있을 것 같으면 눈을 집어넣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곤 합니다.


마파람은 순우리말로 남쪽에서 부는 바람을 뜻합니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마파람이 불면 비가 올 징조라고 일기를 예측하곤 하셨죠. 실제로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남풍이 불면 저기압이 접근하여 그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비가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이렇듯 바람만 불어도 비가 올 것 같아 쑥 나온 눈을 잽싸게 집어넣는 모습에서 유래한 이 말은 짧은 시간에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모습을 빗대어 많이 사용합니다.


이 속담을 생각했을 때 제일 처음으로 떠오른 모습은 바로 제 고등학교 기숙사 시절입니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 과식을 하고 나면 속이 불편하거나 다음날 꼭 탈이 나곤 하지만, 저에게도 쇠를 씹어 먹을 만큼 강철 위장을 가진 시절이 있었죠. 그 나이 또래면 대부분 그렇듯이 밥 먹고 일어나면 바로 허기가 지던 제 십대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정확한 기숙사 인원은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었죠. 모집 인원이 많아 특출나게 성적이 뛰어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6시면 사감 선생님의 지휘 아래 기숙사 앞에 모두 집합해 운동장을 여러 바퀴 도는 구보로 하루를 시작을 했고 기숙사에 딸린 식당에서는 학생들에게 맛있는 세 끼가 식사가 제공되었죠. 학생들의 급식 및 간식을 위해 숙식을 하시던 이모님들도 계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말에 집에 다녀오는 것 외에는 흡사 군 생활과 다를 게 없는 생애 첫 단체 생활이었죠. 저희 방은 8명이 함께 생활하던 방이었는데 방 크기에 따라 적게는 6명에서 많게는 10명까지도 한 방에서 ㅊ친구들과 지냈습니다. 벽쪽으로는 이층 침대가 구석으로 줄지어 있었고 방 중앙에는 독서실 칸막이 책상이 놓여 있어 공부하고 잠자는 것 외에는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을 떠나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게도 처음이었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생활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수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좀 달랐습니다. 처음으로 떼어 놓는 자식이다 보니 걱정이 많으셨겠죠. 게다가 돌아서면 배고프다며 간식을 달고 살던 아이들이었으니 아이들의 먹는 것이 무엇보다 부모님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을 것입니다.


신경써서 만들어져 있는 학교 식단과 또 식당 이모님이 해주시는 급식들도 매번 싹싹 비울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먹던 환경과는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고민끝네 부모님들은 서로 모여 한 가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바로 성장기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당번을 정한 것입니다. 일주일에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에 걸쳐 부모님들이 돌아가며 방에 간식을 넣어주기로 했죠. 예상대로 주로 치킨과 피자가 많았고, 햄버거나 빵을 사오시는 부모님도 계셨습니다. 간혹 집에서 정성스레 음식을 해오시는 부모님도 계셨지만, 우리들의 애정하던 간식은 단연 치킨, 피자,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였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처음엔 이런저런 다른 간식을 사오셨지만, 나중에는 치킨만 사 달라고 했습니다. 그게 제일 인기가 좋았거든요.


아직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루는 저희 아버지가 간식을 사오시던 날이었습니다. 치킨을 사오신다고 하셔서 모두들 기대하고 있는데, 치킨을 들고 방에 들어서시자마자 "고맙습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둘씩 짝지어 치킨 포장을 뜯었습니다. 우리 방 인원이 여덟명이어서 보통 둘이서 한마리를 먹을수 있도록 네마리를 사오셨습니다. 우리들에겐 누구 아버지가 오셨는지, 어떤 브랜드의 치킨인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그저 우당탕탕, 쩝쩝거리며, 때로는 양념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며 한조각이라도 더 먹기에 바빴습니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와중에 아버지가 가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입에 양념을 잔뜩 묻히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새끼 많이 먹으라며 눈으로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지나고 보니 여덟명 모두가 그렇게 음식에 집착하던 녀석들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저야 원래 식탐이 있던 녀석이었지만, 다른 친구들 중에는 평소에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학교 식당에서도 급식을 자주 남기거나 아침을 거르기도 했던 친구들이, 부모님들이 간식을 사오시는 날이면 흡사 전쟁이라도 난 듯 경쟁적으로 먹어댔습니다. 어쩌면 자신을 응원하는 부모님들께 잘 먹는 모습이라도 보이려는 속 깊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스스로도 몰랐던 식욕이 경쟁 속에서 자연스레 드러난 것일 수도 있겠네요:)


제 누나와 달리 저와 제 여동생은 어릴 적부터 식탐이 좀 많은 편이었습니다. 요즘은 많은 집에서 개인 밥그릇과 국그릇을 사용합니다. 저희 집도 비슷합니다. 보통 아내가 찌개 같은 것을 끓이면 가족들에게 각자 나눠 주기 때문에 위생 문제도 없고 급하게 먹을 이유도 사실 없죠. 하지만 제가 어렸을 적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하실 때면 커다란 냄비에 한가득 담아 내 오셨습니다.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모습을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나 사실 저와 제 여동생은 어머니의 생각과는 좀 다르게 행동해 많이 혼나기도 했었습니다. 항상 얌체처럼 자기 먹을 것만 먼저 쏙쏙 빼 먹고, 제 것도 모자라 남의 것까지 탐을 내던 그런 욕심탓에 어머니한테 숱하게 혼났었죠. 어머니께서 닭볶음탕을 해서 내오실 때면 접시가 식탁에 오기가 무섭게 두녀석이 닭다리를 채가는게 일쑤였고, 김치찌개에 통조림 참치라도 들어간 날이면 젓가락으로 살코기 덩어리만 찾다가 어머니께 한소리 듣기도 했었죠. 그러나 저희와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음식에 관심이 없고 입이 짧았던 누나에게는 뭐 하나라도 더 먹이려 노력하셨습니다. 맛있는 음식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 저희 남매가 어머니 눈에는 영 밉살스러워 보이셨을 겁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저와 여동생은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무조건 먼저 해치우고 보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반면 음식에 별 관심이 없던 누나는 자기 몫을 한쪽에 조용히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먹곤 했죠. 먹성 좋은 두 먹깨비 사이에서 여리여리한 큰딸 챙기느라 어머니는 참 고생하셨을 겁니다


제 아이들은 지금 한창 성장기입니다. 큰아이는 21살이 되었고, 나머지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입니다. 그때의 저처럼 돌아서면 배가 고플 나이죠. 얼마 전 아내가 마트를 다녀오며 우리 집 엥겔지수가 한참 높아졌다고, 생활비가 점점 많이 든다고 푸념한적이 있습니다. "애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냐"며 제가 가볍게 넘기려 했더니, 아내는 정색하며 정말 장난이 아니라고 하네요. 이런일이 있고난 후 한번씩 장을 보고 나면 유심히 냉장고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사온 2L 우유통은 하루 만에 절반이 비었고, 사과며 포도며 사온 과일도 눈 깜짝할 새 사라졌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둔 빵들도 하루 만에 모두 없어지고 비닐봉지만 남아있었죠. 눈만 뜨면 아이들이 먹을 것을 찾는다는 아내 말이 실감 났습니다. 그제서야 아이들 방에서 보던 과일이며 빵, 과자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죠. 뭘 사오든 간식들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아이들은 또 엄마한테 먹을 것 없냐며 칭얼대곤 하죠. 그래도 오물오물 먹는 모습은 언제봐도 예쁘기만 합니다. 특히 햄버거를 제일 좋아하는 막내는 키오스크 주문부터가 남다릅니다. 제 눈이 녀석 손가락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주문 화면을 누릅니다. 손가락으로 터치를 툭툭 몇 번 건드리면 어느새 결제 화면이 나오고 어서 카드로 결제하라며 쳐다봅니다. 주문할 때와는 다르게 막상 먹을 때는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듯 보입니다. 입을 꼭 다물고 오물오물 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게 우리 막내 같습니다


이 속담은 보통 매우 허기진 상태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해치우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또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어 조금이라도 빨리 먹어 치우려고 할 때에도 많이 쓰이는 말이죠. 혈기왕성하던 제 십대 시절, 그리고 지금 푸릇한 제 아이들의 십대 시절이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돌아서면 허기지던 그 시절이 이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제 몸을 생각하면 부럽기도 또 그립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는 여전히 가끔 광주에 갈때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최대한 맛있게 그리고 허겁지겁 먹으려 노력합니다. 가끔은 못 이겨 소화제를 챙겨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제가 제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것처럼 어머니도 맛있게, 남김없이 먹는 자식을 보면 흐뭇해 하심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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