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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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바다에 나가 보면 갯벌에 구멍이 송송 나 있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어김없이 작은 게들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죠. 그러나 사람들의 인기척이라도 들릴라 치면 어느새 그 작은 눈을 쏙 집어넣으며 구멍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립니다.


마파람은 순우리말로 남쪽에서 부는 바람을 뜻하는데, 예부터 비가 올 징조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렇듯 바람만 불어도 쑥 내밀었던 눈을 잽싸게 집어넣으며 비를 피하러 사라지는 게의 모습에서 유래한 이 말은, 보통 짧은 시간에 음식을 많이 먹는 모습을 빗대어 많이 사용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아침이면 함께 모여 구보로 하루를 시작했고, 기숙사 식당에서는 학생들에게 삼시 세 끼 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아이들 식사를 위해 숙식을 하시던 이모님들도 계셨죠. 주말에 집에 다녀오는 것 외에는 흡사 군대와 다를 게 없는, 생애 첫 단체 생활인 셈이었습니다.


저희 방은 8명이 함께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층 침대가 벽으로 줄지어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독서실 칸막이 책상이 놓여 있는, 공부하고 잠자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매우 단촐한 방이었죠. 대부분의 아이들은 집을 떠나 생활하는 것이 모두 처음이었지만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좀 달랐죠. 대부분이 처음으로 아이를 떼어 놓다 보니 걱정이 많으셨겠죠. 신경 써서 짜인 학교 식단은 매우 훌륭했지만, 그래도 부모님들은 서로 당번을 정해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 주시곤 했습니다. 간혹 정성스레 직접 음식을 해오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최고 인기는 단연 치킨, 피자,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였습니다. 저도 아버지께 무조건 치킨만 사 달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루는 저희 아버지가 간식을 사오시던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치킨을 들고 방에 들어서시자마자, 여드름이 울긋불긋한 남학생들은 둘셋씩 짝지어 치킨 포장을 뜯기 바빴습니다. 누구 아버지가 오셨는지, 이게 양념인지 후라이드인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우당탕탕, 쩝쩝, 때로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한 조각이라도 더 먹으려 했을 뿐이었죠.


친구들과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먼저 가신다며 천천히 먹으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재미있는 건, 평소엔 특별히 많이 먹지 않던 녀석들도 부모님이 간식을 사오시는 날만 되면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경쟁적으로 먹어대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걱정하는 부모님께 잘 먹는 모습을 보이려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저와 여동생은 식탐이 좀 많은 편이었습니다. 요즘은 한 솥에 찌개를 끓여도 집에서는 별도로 개인 그릇을 사용하는 게 보편화되었지만, 제 어린 시절만 해도 커다란 냄비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에 욕심이 많던 저와 여동생은 식사 자리에서 부모님께 혼나는 날이 참 많았습니다. 저녁상에 닭볶음탕이라도 나오면 접시가 식탁에 오기가 무섭게 닭다리를 채 가기 일쑤였고, 김치찌개에 통조림 참치라도 들어간 날이면 젓가락으로 살코기 덩어리만 찾다가 어머니께 야단을 듣기도 했었죠. 그런데 그런 저희와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입이 짧았던 누나에게는 어머니는 뭐 하나라도 더 먹이려 노력하셨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저와 여동생은 특별히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무조건 먼저 내 밥그릇에 올려놓아야 안심이 되었던, 아주 얌체같은 놈들이었던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두 먹깨비들 사이에서 잘 안 먹는 맏딸 챙기느라 어머니도 참 고생하셨을 겁니다.


우리집 아이들도 지금 한창 성장기입니다. 큰아이는 스물한 살이 되었고, 나머지는 고등학생과 중학생이죠.

얼마 전 아내가 우리 집 엥겔지수가 한참 높아졌다고, 생활비가 점점 많이 든다고 푸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애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러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지만,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제야 저는 유심히 냉장고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사 온 2리터 우유통은 하루 만에 절반이 비었고, 사과며 포도며 눈 깜짝할 새 사라졌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둔 빵들도 하루 만에 모두 없어지고 비닐봉지만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이 눈만 뜨면 먹을 것을 찾는다는 아내 말이 실감 났습니다. 그제야 아이들 방에서 보이던 과일, 빵, 과자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뭘 사 오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아이들은 또 엄마한테 먹을 것 없냐며 칭얼대곤 합니다. 그래도 오물오물 먹는 모습은 언제 봐도 예쁩니다.


특히 햄버거를 좋아하는 막내는 주문부터가 남다릅니다. 제 눈이 녀석의 손가락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키오스크 화면을 누르죠. 화면을 툭툭 몇 번 건드리면 어느새 결제 화면이 나오고, 결제 안하고 뭐하냐며 아빠 눈을 쳐다봅니다. 그런데 또 막상 먹기 시작하면,어릴 적 저와는 달리 매우 천천히 먹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오물오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게 우리 막내입니다.


이 속담은 보통 매우 허기진 상태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우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혈기왕성하던 제 십대 시절, 그리고 지금 제 아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녀석들과는 달리 이제 점점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게 아쉽기도 하고 또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광주에 갈 때면, 어머니의 음식을 맛있게 그리고 가능한 허겁지겁 먹으려 노력합니다. 결국 힘들어 소화제를 챙겨 먹을 때도 있지만, 어머니가 흐뭇해 하심을 그 누구보다 제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죠.



"Maparame ge nun gamchudut"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describes crabs on a tidal flat that instantly retract their eyes at the first sign of a southern wind — a breeze long associated in Korea with incoming rain. The saying is used to describe someone who devours food with startling speed, as if disappearing before the storm. In this essay, the author traces that ravenous hunger across three generations: his own boarding school days, when a father arriving with fried chicken sparked a feeding frenzy among teenage boys; the childhood dinner table fights with his sister over chicken legs and tuna; and now watching his own growing children empty the refrigerator overnight, the youngest ordering a hamburger combo faster than the eye can fo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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