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 Backwards, Break Your Nose
고등학교 시절, 지금 생각해도 매우 웃픈—다른 사람이 보기엔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제게는 아주 슬펐던—한 사건이 떠오릅니다.
당시 여드름 투성이 남학생들에게는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작전이 있었습니다. 다른 반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하는데, 일명 '성인 비디오 테이프 돌려보기 작전'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야한 동영상을 쉽게 볼 수 있기도 하고, 너무 개방되어서 다른 사회적 문제도 많이 발생하지만, 당시에는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동네 슈퍼 가판대에 있는 《선데이서울》 같은 잡지나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어쩌다 운 좋게 빌려 보는 성인영화 비디오가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당시 우리 반에는 부모님이 비디오 가게를 하시던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녀석이 부모님 몰래 야한 비디오를 한두개씩 가지고 와서 반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곤 했었죠.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제 차례가 오기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등교하고 반에 들어서니, 먼저 빌려갔던 다른 녀석이 문제의 비디오 테이프를 제게 건넵니다.
무척이나 흥분한 저는 '이걸 어떻게 숨겨서 집에 가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을 거듭하던 중, 머릿속에 완벽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오늘 아침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 가방속에 숨겨 가기로 한 것입니다.
너무나도 치욕스러운 기억이라 3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늘색 프로스펙스 도시락 가방이었습니다. 밥통을 담는 아래 칸과 반찬통을 담는 위 칸이 나뉜 상당히 실용적인 가방이었죠. 저는 친구에게 테이프를 받자마자 아래칸을 비워 그 테이프를 고이고이 숨겨 놓았습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도시락 밥통 자리에 성인 영화라니.
문제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숨겼는지 저조차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여느 날처럼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해치우고, 저는 친구들과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오후엔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지극히 일상적인 하루를 보냈죠.
밤 10시가 넘어 피곤에 절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는, 오직 빨리 간식 먹고 씻고 자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이 불쌍한 녀석의 머릿속에는 이른 아침 꽁꽁 숨겨 놓은 비디오 테이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무성의하게 "학교 다녀왔습니다"를 남기고, 도시락 가방을 싱크대에 던져 놓았습니다. 분명 평소보다 묵직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곤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죠.
깨끗이 씻고 기분이 한껏 좋아진 저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준비해 주신 간식을 먹었습니다. 늘 그렇듯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몇 분 후 닥칠 일을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도시락 가방을 꺼내 설거지를 시작하셨습니다. 저멀리 싱크대의 물소리가 들리고, 도시락 가방 지퍼 여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제서야 이 멍청한 녀석의 머리에 아침에 숨긴 비디오 테이프가 번쩍 떠올랐습니다. 다급하게 부엌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사단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이게 도대체 뭐냐"며 말을 잃고 어이없어하셨습니다. 친구에게 빌려온 홍콩 영화라고 둘러댔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비디오 테이프 제목이 다름 아닌 《강시애마》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노골적인 붉은 글씨로 '애마'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 시절 《애마부인》 시리즈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성인영화였으니,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그렇고 그런 성인 비디오였습니다.
"썩을 놈", "정신 나간 놈", "미친 놈" 어머니에게 욕을 한바가지 먹는것도 모자라, 급기야 아버지한테 말해 혼쭐을 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겠을 정도로 아마 같은 남자여서 더 쪽팔리고 창피했던 것 같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집에 오셨고, 저는 제 방에 문을 닫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아버지께 죄다 일러바치는 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이상한 비디오 테이프나 빌려오고 그런다. 요즘 성적이 왜 이 모양인가 했더니, 저런 정신 나간 짓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아주 혼구녕을 내야 한다.'
잔뜩 긴장해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드디어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비디오 테이프를 집어 던지시거나 회초리를 맞을 각오까지 하고 있었지만, 예상 외로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저 평소보다 조금 길게 잔소리를 하셨고, 큰 사건 없이 그날의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그래도 아들을 조금은 이해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사건은 제 명예에 회복이 어려운 스크래치가 났고, 누나와 여동생 보기에도 상당히 쪽팔렸던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문제는 압수당한 테이프를 어떻게 변상하느냐였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이 녀석이라고 별다른 대안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녀석이 2만 원만 달라고 합니다. 같은 것을 새로 구하려는지 자세한 사정은 묻기도 싫었습니다. 하루빨리 이 일을 정리하고 싶어, 제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탈탈 털어 2만 원을 쥐여 주고 그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살면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오늘 머피의 법칙이야?"라며 운을 탓하며 투덜대기도 합니다. 그런데 글쎄요,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게, 어쩌면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꽁꽁 숨겨놓았지만 결국 어머니에게 성인영화를 걸려 망신살 제대로 뻗친 이 녀석이 단지 지독히도 운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으니까요.
"Even if you fall backward, your nose still gets broken" is a Korean proverb about inescapable misfortune — the idea that for some people, bad luck finds a way no matter what. In this essay, the author recalls a mortifying high school incident: smuggling an adult videotape to school hidden inside his lunchbox, only to forget about it entirely and leave it for his mother to discover while doing the dishes. What began as a teenager's foolish scheme ended in a family confrontation, a scolding from both parents, and a twenty-thousand-won payment to make things right. It is a story of self-inflicted disaster that even a backward fall couldn't have arranged more perfect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