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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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같은 라인에 막내 아들 친구 주현이네가 살았습니다. 꼬맹이 시절부터 어린이집을 함께 다녔으니 둘도 없는 절친이었죠.


작은 누나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이었으니 이 꼬마들이 한 다섯 살쯤 되었겠습니다. 그때 아들은 집 근처 유치원 추첨에 떨어져 하루 종일 엄마 옆에 붙어 다니던 시기였죠. 누나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엄마는 아침마다 학교에 데려다줘야 했고, 녀석도 어쩔 수 없이 매일 아침 엄마 따라 집을 나서야 했던 것이 그즈음 녀석의 아침 일상이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누나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주현이가 성찬이를 부릅니다.


"성찬아~"

"응, 주현아 안녕~"

"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나 학교 갔다 오는데?"

"와, 너 정말 대단하다! 학교 가는 거 정말 어렵다면서?"

"아냐, 학교 가는 거 별거 아냐. 쉬워."

"정말? 우리 엄마가 학교 가는 거 정말 힘들다고 했는데?"

"아냐, 초등학교에 작은 누나 반에 가면 문이 있는데, 그거 세게 밀면 학교 들어갈 수 있어."

"정말? 와, 진짜 대단하다!"


엄마들은 배꼽을 쥐고 웃을 수밖에 없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두 꼬마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신나게 이어 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멈춰서야 손을 흔들며 헤어졌죠.


주현이에게 학교에 가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지금껏 다녔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는 뭔가 더 어려운 공부를 하게 될 곳이고, 만날 친구들도 키도 크고 씩씩한 친구들이 더 많은 곳일 것입니다. 어울리는 동네 형들도 모두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스스로도 더 이상 반찬 투정이나 동생한테 짜증도 내지 않아야 하는, 진짜 형아가 되는 곳이기에 조금은 부담스럽고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찬이에게 학교는 아주 다른 곳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더 자고 싶은데 억지로 엄마 손에 이끌려 누나 학교에 가야만 했습니다. 자기가 주인공도 아니고, 엄마한테 재잘거리는 누나 말을 옆에서 듣고 있어야 했겠죠. 성찬이에게 학교는 주현이가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매일 누나 교실 문을 열어준다는 뿌듯함은 있었겠지만, 여전히 매일 아침 엄마에게 이끌려 학교에 가는 것은 다섯 살 아이에게 무척 귀찮은 일이었을 겁니다.


성찬이는 또래와 달리 초등학교를 한 해 일찍 입학했습니다. 저 어릴 때만 해도 같은 반에 한 해 일찍 들어온 친구들이 제법 많았었지만, 요즘 부모들은 그렇게 보내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여러 사연을 거쳐 지금은 제 나이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그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성찬이는 한 해 일찍 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 유치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누나들은 모두 그 유치원을 다녔죠. 집 바로 옆에 있어 아이들이 등원하는 게 너무도 편했습니다. 비용이 다른 곳 대비 약간 높았지만 유치원까지 거리가 채 1분도 걸리지 않으니, 부부는 만족하고 두 누나들을 보냈었죠. 하지만 아파트에 있는 유일한 유치원이다 보니 경쟁률이 높아 매년 추첨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 누나들이 다녔으니 녀석도 당첨이 될 거라 믿었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덜컥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변 유치원들까지 지원 시기를 놓치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성찬이는 반강제로 엄마와 이곳저곳 다니며 세상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봉사하는 마을 공동체도 종종 따라 다니고, 가끔은 구청이나 시청 등 여러 관공서까지 따라다니는 등 그나이 또래들과는 많이 다른 독특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을 보내지 못해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성찬이는 한글도 빨리 깨우치고 수학이나 셈도 제법 빨리 익혀 저와 아내의 걱정을 덜어주었죠.


그러던 중 학교를 한 해 일찍 보내는 건 어떨까 아내와 진지하게 상의하게 되었습니다. 녀석이 똘똘해 보이기도 했고, 유치원에 큰 흥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아서 부부는 결국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유치원 비용도 만만치 않아 비용을 좀 아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키도 제일 작은데 혹시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 사실 다들 형들인데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녀석은 그럭저럭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다행히도 우려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기사가 부부 눈에 띄었습니다. 또래보다 일찍 학교를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어서 더 눈에 들어왔죠. 성찬이처럼 집단에서 경쟁을 일찍 시작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기 때문에 결국에는 뒤처질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거기서 오는 실망감, 우울감 등이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킨다는 기사였죠.


잘못 결정한건 아닌지 부부는 매우 착잡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뒤 가족은 우연히 싱가포르로 이주하게 되었고, 결국 부부의 선택은 거꾸로 매우 잘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막 이곳에 왔을 때 성찬이는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아 한 학년을 낮춰 입학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녀석은 지금 제 나이대로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다섯 살 주현이에게 학교는 동경과 부담이 공존하는 기대의 세계였지만, 같은 나이의 성찬이에게는 그저 그런 피곤한 일상일 뿐이었습니다. 남보다 일찍 시작한 아이의 학교생활 역시 섣불리 결정한 것에 대한 후회로 이어질 뻔 했지만, 또 예상치 못한 반전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What you hang on your ear becomes an earring; what you hang on your nose becomes a nose ring." This Korean proverb captures a universal truth: the same thing can mean entirely different things depending on who is looking at it.

In this essay, a chance hallway encounter between two five-year-old boys — one dreading school, one already familiar with it — reveals how differently we each perceive the same world. The story unfolds further when a parenting decision, made with uncertainty and later regretted, is turned on its head by an unexpected move to Singap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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