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Kitchen, the Sister is Right; In the Room, the Brother-in-Law is Right
비슷하게 안방에선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선 며느리 말이 옳다라는 말도 많이 쓰입니다. 같은 문제라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될 수 있다는 속담입니다.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보고 "벌써 물이 절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하는 사람과, "아직 물이 절반이나 남았잖아"라고 매우 상반되게 생각하는 비유는 너무나도 유명하죠.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경험합니다. 그 안에서 나름의 판단을 하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주관으로 옳고 그름까지 판단하기도 하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또 다른 의견을 듣게 되면 어떨때는 신기하기도 하지만, 깜짝 놀랄때도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울에 살던 아파트 같은 라인 12층에 막내 아들 녀석 어린이집 친구 주현이네가 살았습니다. 세 네살 꼬맹이 시절부터 어린이집을 함께 다녔으니 천하의 둘도 없는 절친이었죠. 주현이는 형이나 누나가 없는 맏이였고, 아들은 드센 누나들이 둘이나 있는 막내였습니다.
작은 누나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이었으니 이 꼬꼬마들이 5살쯤 되었겠습니다. 당시에 성찬이는 동네 유치원 추첨에 떨어져서 새로운 유치원에 갈 때까지 당연히도 엄마 옆에 붙어다니던 시기였습니다. 작은 누나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니 엄마가 아침마다 학교에 데려다 줘야 했고, 어쩔수 없이 매일 아침 엄마 따라 집을 나서는 게 그 즈음의 일상이었습니다.
하루는 엄마와 함께 작은 누나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엄마와 함께 어딜 다녀오는지 저쪽에서 주현이가 싱긋 웃으며 성찬이를 부릅니다.
"성찬아~"
"응 주현아 안녕~"
"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나 학교 갔다 오는데?"
"와 너 정말 대단하다! 학교 가는 거 정말 어렵다면서?"
"아냐 학교 가는 거 쉬워"
"정말? 우리 엄마가 학교 가는 거 정말 힘들다고 했는데?"
"아냐, XX 초등학교, 1학년 작은 누나반 가면, 문이 있어. 그거 세게 밀면 학교 들어갈 수 있어~"
"와 너 정말 대단하다!"
조잘조잘 얘기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던 엄마들은 배꼽을 쥐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두 꼬마들은 한 명은 학교쯤이야 대수롭지 않다며 의기양양하게 말을 하고 있고, 또 한 명은 대단하다며 부러움의 눈빛을 보내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멈춰서야 손을 흔들며 무심히 헤어졌죠. 물론 엄마들은 그때까지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다섯 살 주현이에게 학교에 가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지금껏 다녔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보다는 뭔가 더 어려운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만날 친구들도 더 키도 크고 씩씩한 친구들이 많은 곳일 것입니다. 학교는 빨리 시간이 지나야만 갈수 있는 곳일테니, 어쩌면 아이에게는 가고 싶은 동경의 곳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야구하고 어울리는 동네 형아들은 모두 학교라는 곳에 가고 있으니까요. 스스로도 더 이상 반찬 투정이나 동생한테 짜증도 내지 않아야 하는, 진정한 형아가 되는 곳일수 있기에 부담스럽고 어려운 곳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섯 살 성찬이에게 학교는 아주 다른 곳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엄마 손에 이끌려 작은 누나의 학교에 가야만 했습니다. 자기가 주인공도 아니었고, 그저 재잘거리는 작은 누나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어야 했겠죠. 어쩌면 성찬이에게 학교는 그렇게 신선한 곳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녀석 성격을 알기에, 매번 작은 누나의 교실 문을 본인이 열어준다는 뿌듯함은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침마다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것은 다섯살 아이에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죠. 주현이와 달리 성찬이에게 학교 가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귀찮기만 한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성찬이는 또래와 달리 초등학교를 1년 일찍 입학했습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같은 반에 한 해 일찍 들어온 친구들이 제법 많았었지만, 요즘 부모들은 그렇게 보내는 일이 매우 드뭅니다. 성찬이가 입학하던 때도 그랬습니다. 기억으로는 같은 반 뿐 아니라 학년 전체에서도 일찍 입학한 친구가 성찬이 한 명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 여러 사연을 거치며 지금은 제 학년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그때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한 해 일찍 시작을 하게 되었죠.
아파트 단지에 유치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 누나들은 모두 그 유치원을 다녔죠. 살던 동 바로 옆에 유치원이 있어 아이들이 유치원 등교하는 게 너무도 편했습니다. 1분도 걸리지 않으니 엄마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았고, 유치원 비용이 다른 곳 대비 좀 비쌌지만 크게 만족하고 두 누나들을 보냈습니다. 대단지 아파트에 유일한 유치원이다 보니 매년 입학 경쟁률이 매우 높아 언제나 추첨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죠.
두 누나들이 다녔으니 성찬이도 추첨에 당첨이 될 거라 굳게 믿었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덜컥 추첨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변의 유치원들을 알아보았지만 어쩌다 보니 지원 시기를 놓치게 되어 하는 수 없이 성찬이는 그 해는 유치원을 다니지 않고 엄마랑 이곳 저곳 다니며 세상 공부를 하게 됩니다.
엄마가 봉사하시는 마을 공동체도 자주 다니고, 구청도 여러 번 방문해 구청장님과도 친해지고 친구들이 다니는 유치원 생활과는 사뭇 다른 세상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죠. 그러던 와중에 녀석이 한글도 좀 빨리 깨우친 듯 보이기도 하고 수학이나 셈 등에도 능해 보여서 저와 아내는 '요놈 봐라' 하며 기특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 그러던 중 굳이 유치원을 오래 보내지 말고 한 해만 보내고 학교에 보내는 게 어떨까 아내와 진지하게 상의를 하게 되었고, 보기에 똘똘하고 잘 따라갈 듯해 보이기도 했고, 아이 역시 유치원에는 큰 흥미가 있어보이지 않기도 해서 부부는 아이를 또래보다 일찍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내심 유치원 비용도 만만치 않아 그 비용을 좀 아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솔직히 있었죠.
반에서 키도 제일 작아 보이던데 괴롭힘이나 무시당하는 건 아닐까, 자기보다 다들 한 살 많은 형 누나들인데 친구처럼 어울리지도 못하고 겉돌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긴 했지만, 녀석은 그럭저럭 잘 적응해 나갔습니다. 다행이도 우려했던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래보다 일찍 학교를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분석 기사였는데, 어느 대학의 박사가 여러해 동안 연구한 내용이었습니다. 또래 보다 먼저 사회를 겪으면서 함께 경쟁하는 아이들에 비해 신체적/정신적 발달이 상대적으로 늦은 아이들이 결국 어쩔수 없이 일어나는 경쟁에서도 많이 밀리게 되고, 스스로 느끼는 실망감, 패배감, 우울감 등은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여러 가지 말썽을 일으킨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제 때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고 즐기고 경쟁하는 것이 결국 아이에게 가장 최상의 교육 환경이라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죠.
솔직히 틀린 말이 전혀 없어 보여서 우리 부부는 매우 착찹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몇년뒤 우연히 싱가포르로 이주해 오면서 결국 한 해 일찍 들어갔던 선택은 매우 잘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왔기에, 싱가포르 학교에 4학년으로 입학을 했어야 했지만 당연하게도 영어가 전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3학년으로 낮춰서 입학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지금 아들 녀석은 제 나이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똑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도 각자의 관점과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게 됩니다. 다섯 살 주현이에게 학교는 동경과 부담이 공존하는 기대의 세계였지만, 같은 나이의 성찬이에게는 그저 누나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나를 피곤케 하는 그저 그런 일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의 당찼던 의도대로 남보다 일찍 시작한 아이의 학교생활은 섣불리 결정한 것에 대한 걱정과 후회로 이어졌지만 결국 예상치 못한 반전을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삶은 이처럼 우리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한때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결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때로는 우연한 상황 변화가 우리를 돕기도 합니다. 성찬이의 초등학교 인생처럼, 우리의 모든 판단과 선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와 안목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반쯤 찬 물컵을 보는 두 가지 관점처럼, 우리가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에는 여러 해석이 가능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삶에서도 지혜롭게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상황에 맞는 답이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