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신주단지 모시듯

Cherishing Objects Like Sacred Vessels

by 윤본

어떤 물건을 제 목숨이라도 되는양 애지 중지 하는 아끼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제게도 물론 그런 물건들이 있죠. 옛날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조상신을 모시는 분들이 꽤 많았는데, 바가지나 단지에 쌀을 담아 가족의 무탈을 바라던 집들이 실제로 꽤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성이 부족하거나 소홀히 대하면 절대 안된다고 하여 집안 어르신 모시듯 소중하게 모시곤 했었죠. 지금은 그처럼 가정에서 신주단지를 모시는 집은 보기 쉽지 않지만 여전히 간간히 보이는 무당집에는 아직도 그들이 모시는 신을 위한 신주단지를 실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진짜 신주단지는 아니지만 이들처럼 제게도 저만의 소중한 신주단지들이 몇개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써보려고 해요.


이젠 제게 부적같은 느낌이 되버린 항상 제 지갑 속에 지니고 있는 지폐 두 장입니다. 하나는 좀 오래된 오천원 짜리 지폐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빳빳한 오만원짜리 지폐입니다.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을 이 지폐 한쌍은 제가 회사에서 근무를 하거나, 외출을 하거나 개인 시간을 보낼 때도 지갑속에서 늘 저와 항상 같이 합니다. 심지어는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에서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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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매해 설날이 되면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습니다. 저역시 어릴적부터 그래왔었죠. 우리 집안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집안 어르신들은 설 전날 저녁에 모여서 복받으라며 복돈을 미리 주셨습니다. 다음날 세뱃돈을 또 주시진 않으셨으니 세뱃돈 성격의 복돈인 셈이죠. 설 전날 할머니댁에 모여서 거나하게 술들도 하시고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불러 보아 복돈을 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집안 아이들에게는 설날 보다는 그 전날이 더 행복한 날이었었죠.


“이놈들아, 펑펑 쓰지말고 한 해동안 지갑에 잘 갖고 있어라. 그래야 복받는다” 라고 어른들은 말씀 하시지만, 아이들은 귓등으로도 안듣습니다. 받기가 무섭게 다음날 쓰기 바뻤죠. 사고싶던 장난감도 사고 새 나이키 지갑도 사고 형들이랑 영화도 보고.


나이가 들어 직장을 잡고 이제 복돈이 예전 만큼 절실하진 않는 때가 오면서 저도 언제부턴가 받은 복돈을 지갑에 갖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빳빳한 신권을 잘 업어 지갑 구석에 넣어 두면 그게 뭐라고 그리 든든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한해가 지나 새로 복돈을 받으면, 마치 신주단지에 묵은 쌀을 햅쌀로 바꾸듯이 새돈으로 바꿔 넣곤 했었죠


아버지는 1996년 새해가 시작되자 마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안계셨지만 매해 설날이면 할머니 댁에 모였고 으례히 그랬던 것처럼 어른들께 복돈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애비꺼라 하시며 오천원이든 만원원이든 따로 챙겨 주셨습니다. 그땐 그렇게 깊게 생각하진 않았었지만 돌이켜보면 모두가 다 왁자지껄 떠들고 웃던 그 좋은 날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미어졌을까 마음이 아파옵니다. 지난 코로나 때 100세를 넘기시고 돌아가셨으니 꽤 오랜 세월 할머니는 애비 복돈을 제게 주셨습니다.


어머니도 매년 제게 복돈을 주십니다. 5만원짜리 빳빳한 신권이 바로 어머니가 주시는 복돈이죠. 싱가포르에 머물면서 매해 찾아 뵙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아마 제가 가지고 있는 복돈은 2년전쯤 받았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해 전 뵈었으니 아마 제게 있는 오천원 권은 한 6-7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폐에는 ‘아버지’라로 제가 작게 흘겨 넣은 표시가 있습니다. 아마 실수로 홀랑 써버리지 않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주시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복이 담긴 이 유품과 함께 매년 새 지폐로 바뀌는 어머니의 복돈도 제겐 모두 함께 소중한 신주단지입니다. 언젠가는 이지폐도 다시 바뀌지 않고 같은 돈이 지갑속에 있을 날이 오겠지만 그래도 건강하신 어머니를 보면 늘 주시는 사랑과 복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디지털 결제가 보편화되어 지폐를 쓸 일이 줄었지만, 이 두 장의 지폐는 단순한 화폐 이상의 의미로 제 지갑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상적인 물건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는 또 있었습니다. 바로 제 업무에 사용하던 낡은 모니터였죠.


싱가포르로 이주를 결정하면서 우리 부부는 짐을 최소화하기로 했습니다. 컨테이너 이사 대신 다섯 식구가 대형 이민 가방 몇 개로만 떠나기로 했죠. 새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현지에서 새로 구입하자는 나름 실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제가 유독 고집하며 가져가려 했던 물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업무용 모니터였습니다.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의 고급 제품도 아닌, 이름 없는 중소기업 제품이었고, 심지어 제가 중고로 구매한 물건이었지만 말이죠.


당시는 코로나로 전 세계가 비상 상황이었기에 저 역시 재택근무를 하거나 혼자 사무실의 격리된 공간에서 일했습니다. 싱가포르로 발령이 난 후에는 현지 매니저와 정기적으로 온라인 미팅을 해야 했는데,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는 공유된 자료를 제대로 보기 힘들고 상대방의 입 모양도 잘 보이지 않아 대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이주해야 했기에 업무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컸고, 현지 호텔에서 격리하는 동안에도 업무를 완벽히 처리하고 싶었습니다. 출국 당일, 저는 커다란 이민 가방과 백팩을 메고, 한쪽 손에는 낡은 모니터를 힘겹게 들고 있었습니다. 모니터 박스는 손잡이가 떨어져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인 채로 기내에 가져갔던 기억이 납니다.


공항직원들은 모니터 크기를 재며 수차례 확인했고, 아내는 꼭 이걸 이렇게 가져가야 하냐며 지나가는 말로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낯선 영어 환경과 새로 맡은 업무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던 저는 단 한순간도 업무 환경이 비효율적이 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실제로 싱가포르에 도착해 격리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니터를 연결하고 설치하여 업무 미팅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지에서 아마존 같은 곳에 주문하면 쉽게 해결될 일을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직접 가져갔는지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몇개월 후 집도 구하고 그럭 저럭 새로운 곳에 정착한 이후에는 새로운 모니터도 하나 사고 힘들게 가져간 모니터는 이곳의 중고장터에서 또 다른 분께 판매를 하였습니다.


내 마음 속 신주단지가 특별할게 있을까요? 지폐 한두장이 될수도 있고, 이처럼 낡은 모니터가 될수도 있겠죠. 그게 무엇이 되었건 내게 안심을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라면 그에게는 그게 더 소중한 신주단지 일것입니다. 내게 불안함을 없애 주었던 낡은 모니터는 어딘가에서 또 누구에게 넉넉한 화면으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고 아버지의 복이 담기고, 어머니의 기원이 남긴 두장의 지폐는 여전히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와 함께 하며 나를 지켜 줄 테니까요.



This essay, titled "Cherishing Objects Like Sacred Vessels," explores how ordinary possessions can become sacred in our lives. The author draws a parallel between traditional Korean "shinjudanji" (ancestor worship vessels) and their own cherished items that provide comfort and stability.


The narrative focuses on two possessions: banknotes kept in the writer's wallet and an old computer monitor. The banknotes hold deep familial significance—a 5,000 won note representing the writer's deceased father (given by grandmother) and a 50,000 won note from their mother. These bills are carried everywhere, even to Singapore, serving as protective talismans.


The author recalls New Year traditions where elders would give "blessing money" meant to be kept for good fortune. Following the father's death in 1996, the grandmother would set aside special bills saying "this is from your father," creating a poignant connection to the departed.

The second object—a worn monitor—represents security amid transition. When relocating to Singapore during the pandemic, despite logistical challenges, the author insisted on transporting this bulky device, which provided professional continuity during a stressful period.


The essay concludes that our personal "sacred vessels" may differ but serve similar purposes—providing reassurance, hope, and courage. These objects transcend their material value to become vessels of memory and emotional security in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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