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머슴살이도 대감집에서 하라

As a servant, choose a noble family

by 윤본

이말은 우리의 전통 속담은 아니죠. 언젠가 한 취업준비생이 국내의 한 대기업 입사지원서에 인용한 것이 인터넷에 널리 퍼지면서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관용구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굴지의 대기업이나 유니콘 기업들은 이미 많은 취업준비생들의 지상 목표가 된 지 오래이고, 대학에 갓 입학하는 신입생들조차도 이를 염두에 두고 스펙 쌓기에 한창입니다.


아마도 반상이 뚜렷히 존재하던 수백 년 전 세상에서 신분 계급상 같은 층인 머슴들조차도 그 주인의 권세에 따라 누리는 혜택은 천지 차이였나 봅니다. 진실로 직장인을 당시의 머슴에 비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만큼 요즘 현대인들에게 직장이란 전과 다르게 자랑스러운 삶의 목표가 되어가고 있고, 급여 외에도 회사가 제공하는 여러 가지 다른 혜택들로 자신들의 프라이드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 경우의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큰 박탈감도 느끼기도 하죠.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저는 한 대형 외국계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연봉 수준도 대기업 못지 않았지만 당시의 외국계 기업은 누구에게나 선망의 회사였습니다. 보통 외국계 기업의 경우 필요에 따라 경력직만 선발하곤 했어서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직원들이 그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한국 지사 직원 수가 3,000명 가까이 되는 미국계 IT회사에서 신입사원 공채를 실시하였고, 당시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그렇게 서른명 가까이 되는 입사 동기들과 함께 사회생활의 첫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다른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었기에 입사 후 회사가 주는 여러 가지 혜택들로 한동안 입이 귀에 걸린 채 회사를 다녔습니다. 당연한 것들조차도 제게는 모두 큰 혜택으로 느껴졌으니까요. 최신형 노트북을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 데스크톱을 주로 사용 하고 노트북은 써본 적이 없어서, 당연한 지급임에도 당시 잘빠진 새 노트북을 받는 것에 얼마나 크게 설렜는지 모릅니다.


회사에 최종 합격을 하니 어머니께서 축하한다며 최신 휴대폰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입사하자마자 회사에서 날렵하게 생긴 새 휴대폰을 직원용으로 쓰라며 지급받았습니다. 선물받았던 휴대폰은 어머니가 쓰실 수 있게 다시 변경해드리고, 저는 회사에서 지급했던, 액정 밑에 TTL이 박혀있던 그 날렵한 휴대폰을 목에 걸고 자랑스럽게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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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회사가 단체보험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시는 그것도 전혀 몰랐습니다. 입사 후 10여 년이 흐른 뒤에는 단체보험의 혜택이 많이 줄어들었긴 했지만, 입사 당시의 보험혜택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본인이나 가족의 의료비의 50%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혜택이 떠오릅니다. 가지고 있는 개인 보험으로 대부분 병원비는 처리가 되었기에 아프기라도 하면 오히려 회사에서 더 지급이 되는 그런 좋은 혜택이었죠. 어머니가 갑작스레 수술을 하셨을 때도 요긴하게 도움을 받았고, 간간히 몸이 아파 통원 치료를 하거나 입원을 했을 때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던 대표적인 회사 복지였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직원에게 제공되던 주차장 지원과 또 주유전용 신용카드였습니다. 고객을 만나는 직원들 대상, 예를 들면 영업직군들에게만 해당되는 신용카드였을 텐데, 저는 회사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했어서 제게도, 동기들에게도 모두 이 주유 카드가 지급되었습니다.

이 주유카드는 본래 고객사 방문 등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다닐 고객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주로 출퇴근을 하거나 고객사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나선 프로젝트 출퇴근 용도로 사용하곤 했죠. 사실 쓸 수 있는 금액은 20만 원 남짓이어서 매우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이나 여자친구라도 옆에 타거나 하면 그게 뭐라고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습니다. 기껏해야 출근한 지 2-3달밖에 되지 않는 초짜 직장인이 회사에서 지급되는 카드라며 슬그머니 자랑하곤 했었죠. 갓 학생 티를 못 벗은 그때가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대책없는 허세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회사 앞 주유소에서 회사카드로 기름을 넣고, 여의도 한복판의 금싸라기 땅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출근하는 제 모습은, 부족한 업무 능력과는 별개로, 새로온 대감집 머슴 자부심이 어깨에 높게 솟아 있던 그런 시절이었죠.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실시할 때도 회사의 프로그램은 남달랐습니다. 2n+3. 아직도 기억하는 다시는 보지 못할 희망퇴직 위로금 공식입니다. n이 근속년수를 뜻하니, 10년을 일한 직원들은 거의 2년 연봉을 지급받게 되는 것이었죠. 이러한 훌륭한(?) 프로그램들로 많은 동기들이 중간에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희망퇴직 프로그램과는 인연이 없어 별다른 혜택을 못보고 다음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지만, 시기를 잘 탄 직원들은 2년치를 받았네, 3년치를 받았네하며 그만둘 때까지 회사로부터 적지 않은 혜택을 받았습니다.


아내가 다니던 회사는 저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집에 이 출판사 전집이 없는 집이 없었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대형 출판사였습니다. 결혼 전에 다니던 회사였으니 속속들이 그 회사의 복지는 알지 못하지만, 마지막에 그만두고 나올 때의 아내의 속상했던 모습은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경영진의 비리로 인해 회사가 법정관리가 들어갔고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6개월 넘게 급여를 지급받지 못하자 아내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남아 있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미지급된 급여는 시간이 흘러 지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당시 착한 아내가 이직해야 하는 상황에 미안해 하고 속상해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첫 동기들을 만날때면 우리는 첫 직장을 웃으면서 기억하고 또 그리워합니다. 같이 일한 동료 선후배들도 좋은 분들이 많았지만, 이런저런 적지 않은 혜택과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부심이 그런 기억을 만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와는 달리 아내는 조금은 씁쓸한 기억으로 그때를 기억하곤 하죠.


돌이켜보면 금전적으로 보상받은 것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피해본 금액도 결국은 돌려받았으니 마음고생 한 걸 빼면 아내도 손해본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직원에게 잊을 수 없는 프라이드를 갖게 했던 회사의 기가막힌 전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시 밤이 늦어도 신이나서 일하고 주말도 반납해가며 프로젝트에 투입되어도 회사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은 항상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현대인에게 직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얻는 경험과 대우는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또한 타인에게 보여지는 사회적 지위의 척도가 되어가고 있음도 부정할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주유카드가 떠오릅니다. 20만원짜리 허세였지만 그때의 으쓱함 만큼은 진짜 자랑스러웠으니까요


This essay explores the modern Korean expression "머슴살이도 대감집에서 하라" (even if you work as a servant, work for a noble family), which became popular after appearing in a job application that went viral online. The phrase reflects how prestigious companies have become the ultimate aspiration for job seekers in contemporary Korea.


The author shares their experience starting at a large foreign IT company, recounting the generous benefits that created unexpected pride and identity - from company laptops and phones to medical insurance and a corporate fuel card. Through vivid details like showing off the "company card" to friends and parking in premium Seoul locations, the author captures how workplace perks became sources of personal validation beyond their modest monetary value.


The narrative contrasts this experience with the author's wife's ordeal at a major publishing house that fell into legal management, leaving employees unpaid for months. The essay concludes with reflection on how modern workplaces serve as foundations for social identity and status, suggesting that companies strategically foster employee loyalty through benefits and prestige that make even demanding work feel worthwhile - illustrating why the metaphor of choosing the right "noble family" resonates so deeply with contemporary wo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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