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times Ignorance is Bliss
다섯 가족이 처음 싱가포르라는 매우 낯선 곳에 오게 되었을 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데다가 다들 나서지 않는 소심한 성격들 인지라 자신 있게 밖을 돌아다니지도 못했습니다. 당시 아내와 나는 가족이 살게 될 집을 구하러 여러 곳을 보러 다녔는데, 많은 상의 끝에 결국 지금 살고 있는 콘도를 렌트하게 되었죠. 콘도미니엄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한국의 아파트와 동일한 개념으로, 싱가포르 곳곳의 주거지역에는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콘도 단지들이 도로 옆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까워야 하고, MRT라 불리는 지하철역도 가까웠으면 했으며, 주로 장을 봐야 하는 마트들이 집에서 가까웠으면 하는 게 우리의 주된 조건들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곳에서는 자동차를 구매하기가 거의 불가능해 어디든 쉽게 걸어다닐 수 있는 곳이 우리 가족에겐 무엇보다 중요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계약한 이 집은 사실 좀 애매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러 가기에도 상당히 걸어야 했고, 마트라도 가려면 조금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가야 했었죠. 그리고 메인도로에서 좀 벗어나 있어 다니는 버스도 두 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오래된 콘도였지만 집 내부가 새롭게 리노베이션이 되어 매우 깔끔했고, 평수도 찾기 어려운 대형 평수여서 다섯 가족이 보다 쾌적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이 집으로 우리는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장을 보러 가는 길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번 단지를 빠져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가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많았고, 장을 보고 돌아 올 때도 무거운 짐을 들고 다시 버스를 한참 동안 기다린 적도 많았습니다. 이곳의 날씨 특성상 어쩌다 갑자기 비라도 쏟아지면 참 짜증나고 불편한 일이 자주 벌어지곤 했었죠.
장을 볼때 아내는 한 번에 많이 사는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먹을 만큼만 자주 조금씩 사는 그런 스타일이죠. 그래서 거의 매일 마트에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근처 쇼핑몰에서 식사라도 하려면 역시 버스 타고 나가야 하는 것이 사실 참 많이 번거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할까요? 어느새 가족들은 그런 불편함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습니다. 마트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자주 사던 걸 횟수를 줄여 한 번에 많이 구매하는 형태로 바뀌어 갔습니다. 또한 온라인에서 주문을 시작하기도 했었죠. 걱정했던 아이들도 학교 가기위해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러 10여 분 걷는 것에 점점 익숙해져 갔습니다.
"여보, 우리 정말 집 잘 구한 것 같지 않아? 처음에는 좀 지하철역에서 멀어서 별로일 것 같았는데, 살아보니 뭐 괜찮네?"
"그니까, 게다가 이 집은 다 리노베이션 되어 있어서 너무 깨끗하잖아. 그리고 우리는 가구도 하나도 안 사도 되고, 수납도 너무 잘되어 있고. 우리한텐 이집이 정말 딱이야"
틈만 나면 서로 집 잘 구했다며 아내와 저는 행복해했습니다. 조금 불편했던 부분들은 있었지만 행복해 하는 부부 대화속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죠.
그렇게 한 1년쯤 지났을까요? 둘째 녀석이 학교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살고 있는 콘도 단지 바로 옆에 있는 중학교에 배정을 받게 된 것이죠. 집에서 엄청 가까우니 학교를 걸어다녀야 할 것 같은데, 구글에 학교 가는 길을 열심히 검색을 해봐도 집에서 걸어 나와 한참을 빙 돌아 학교에 찾아 가게끔 길을 알려주는 겁니다. 직선거리로 100미터도 안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지만 아이가 등교를 하려면 2km 가까이 걸어야 하는 매우 먼 거리였던 것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 아내와 함께 콘도 단지 곳곳을 탐색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뭐 특별한 게 있겠냐는 눈치였지만 저는 뭔가가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몇 분이 채 되지도 않아 한쪽 울타리에서 한 쪽문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곳을 통해 나가면 생각한 대로 1-2분만에도 학교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이죠.
아내와 좀더 살펴 보다 보니 이런 쪽문이 단지 곳곳에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쪽문을 통하면 우리가 항상 버스 타고 불편함을 참으며 다녔던 마트에, 산책하듯 조금만 걸어가면 금새 도착할수 있었던 거죠. 쪽문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지난 1년이 얼마나 바보같던지요. 왕복 버스비로 날린 돈도 돈이지만 길에서 보낸 시간들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하아, 우리가 정말 이 길을 모르고 어떻게 1년을 버스를 타고 다녔을까?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그러게 여보, 몰랐으니까 그러고 살았지, 알았으면 그렇게 했을까? 절대 안 했겠지?"
재택을 하거나 주말에 집에 있을 때는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아내와 산책겸 나가 끼니도 때우고 또 그날 먹을 찬거리를 쇼핑하고 들어오곤 하는 게 요즘의 일상입니다. 오가는 길을 걸으며 아내는 왜 찾아볼 생각을 우리가 안 했을까 하고 웃으면서 귀여운 자책을 하기도 하죠.
언젠가 회사를 퇴사하면서 받았던 주식을 처분한적이 있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좋은 가격에 팔았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정리한 이후에도 회사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었죠. 처음에는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더 올라갈수록 괜히 팔았나 하는 자책감에서 잘못 팔았다라는 후회까지 여러 않좋은 감정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내는 우리는 이익 보고 팔았으니까 괜히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이제 주식창은 쳐다보지 말자고 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되나요. 그러나 시간이 제법 흘러 또 슬슬 잊혀져 가니 그런 스트레스도 같이 사라져 가긴 하더라구요.
앞으로 남아있는 인생에도 어쩌면 내가 아직 모르는 다른 쪽문들이, 또 지름길들이 여기저기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르고 그저 평범하게 하루를 살아 가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런 행운들을 모르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다가도 내일 아침에 다시 주식앱을 보면서 다시 쓸데없는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을 거구요. 하지만 무엇이 되었건 내게 주어진 것에 적응하고 그려러니 사는 것이 어떨 때는 인생의 행복으로 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쪽문이자 지름길인 것 같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요 아는 게 병". 때로는 모르고 사는 것이 더 평온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문득 깨닫습니다.
This personal essay explores the Korean proverb "모르는게 약이요 아는게 병" (ignorance is medicine, knowledge is disease), which suggests that sometimes not knowing everything can lead to greater peace and happiness than being fully informed.
The story centers on a Korean family of five who relocated to Singapore and spent over a year taking buses to reach basic amenities like grocery stores and shopping malls. Despite the daily inconvenience and extra costs, they adapted to this routine and even convinced themselves they had chosen their condominium wisely. Their perspective changed dramatically when they needed to find a walking route to their child's new school and discovered multiple side gates throughout their complex—shortcuts that could have saved them countless hours and money.
This discovery of hidden pathways serves as a powerful metaphor for life's unseen opportunities and alternative routes to happiness. The author reflects on how their family's initial ignorance, while costly in practical terms, allowed them to appreciate their home and develop resilience without the burden of regret. The essay weaves together this central experience with broader reflections on investment decisions, suggesting that knowledge of missed opportunities can sometimes cause more suffering than the missed opportunities themselves.
Through intimate family conversations and honest self-reflection, the author concludes that contentment with what we have—even when better options exist unknown to us—may sometimes be the most reliable path to happiness. The Korean wisdom embedded in this proverb reveals a universal truth about human nature: that our peace of mind often depends not on maximizing every opportunity, but on finding satisfaction within our current circumsta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