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인정머리

by 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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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이 곤란할 때 선뜻 도와주지 않고 따뜻한 말 한 마디 없이 냉정하게 거절할 때, 사람들은 보통 '그 사람 참 인정머리 없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인정'이란 말 그대로 사람 간에 느끼는 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흔히 이 단어는 좋지 않은 의미와 함께 주로 사용되지만, 되려 주변을 돌아보면 따뜻한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제게도 상처를 주며 인정머리 없이 냉정했던 사람들이 분명 몇몇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가 마음속에 오래 두려고 하지 않았던 탓인지 그들이 누구였는지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와 따뜻한 정과 기억을 나눈 사람들은 아주 짧은 인연이었거나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어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제겐 바로 이모부가 그런 분들 중 한 분이셨습니다.


밀레니엄을 몇 개월 앞둔 1999년 어느 가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큰 결심으로 제 인생 첫 해외여행이자 부유한 아이들만 할 수 있었던 미국 어학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다만 당시 집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남들과는 다른 특이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개설되는 랭귀지 스쿨을 등록해 공부하게 되고, 수업이 끝나면 대학 기숙사에서 다른 나라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하지만 그렇게 다녀오기에는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웠던 저는 시카고 교외에 있는 이모 집에서 머물며 하루에 왕복 두 시간씩 기차를 타고 다운타운에 있는 한 영어학원으로 매일같이 수업을 다니는, 남들과는 좀 다른 어학연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일상이 그러다 보니 수업이 없는 날이나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집에서 무료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친절한 선배가 되어주고 또 아버지 같은 어른이 되어주신 분이 바로 이모부셨습니다.

이모와 이모부는 미국에서 만나 결혼하셔서 그곳에서만 줄곧 수십 년을 사신 분들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과 달리 당시는 한국을 오가기도 지금처럼 수월하지 않았고, 심지어 전화통화마저 매우 비싸 일 년에 몇 분 할까 말까 할 정도였습니다. 당연히 저는 스무 살이 넘어 미국에 처음 와서야 이모부를 처음 뵐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다는 처음 보는 처조카가 애교 있는 여학생도 아니고 여드름투성이의 어수룩한 남학생이었으니, 이 두 남자는 서로가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졌을까요?


이모 집에 도착한 다음 날, 이모부는 저를 차에 태우고 곳곳을 다니며 여러 가지를 사기 시작 하셨습니다. 갑자기 '너 담배는 하냐'고 물어보시길래, 쭈뼛쭈뼛하며 그렇다고 하자 냉큼 '그럼 담배 사러 가자'며 차를 돌리셨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Doral'이라는 미국 담배 두 보루를 사 오시더니 '비싼 건 아닌데, 두고 피워라' 하시는데, 무슨 영문인지 몰라 많이 당황하기도 했었죠. 또 '술은 좀 마시냐'며 갑자기 마트로 가셔서는 수십 개들이 캔맥주 여러 박스를 들고 오시기도 했습니다. '차고 옆 냉장고에 넣어둘 테니까 먹고 싶을 때 하나씩 마셔라. 그런데 네 이모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거 싫어하니까 안 걸리게 적당히 마셔'라는 말과 함께요.


'오와, 이런 게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홈오피스를 운영하시며 작은 사업을 하셨던 이모부는 업무 때문에 시청이나 우체국, 세무 관련 기관에 가실 일이 많았습니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이면 이모부는 저를 데리고 업무를 다니곤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건 미국에선 이렇게 처리해'라며 알려주시기도 하셨고, 사실 제가 굳이 알 필요가 있나 싶은 비즈니스 관련 내용들도 참으로 열심히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시카고 시내에 볼일이 있어 함께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린 뒤 이모부께서는 잠깐 담배 한 대 태우고 가자고 하셨고, 지하철 역 앞에서 우리는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이동할 시간이 되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이모부께서 피우던 담배 꽁초를 아무렇지도 않게 역 앞 도로 바닥에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놀라는 기색을 보이자 조금 머쓱하셨는지 살짝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하, 오해하지는 말아라. 쓰레기통이 근처에 없기도 한데, 또 이렇게 쓰레기를 버려야 이걸 치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 사람들은 그걸로 또 돈을 버는 거야. 내가 그 사람 일자리를 없앨 수는 없지 않니? 그런데 이게 미국이란다. 이런 것도 다 미국을 위한 거지. 하하하"


민망하셨는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으시긴 했지만, 언제나 언변이 좋으셨던 분인지라 저 역시도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영어 배우겠다고 갔던 미국에서의 6개월은 영어 자체보다는 진짜 미국을 느끼고 그들의 진짜 생활을 알게 된, 학교에서만 공부했다면 절대 몰랐을 다른 것들을 그분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모부는 학교 선생님 같은 분은 아니셨습니다. 늘 함께 경험하면서 그 안에서 느낄 수 있게 도와주셨던 이를테면 선배 같은 분이셨죠. 술, 담배를 즐기라고 하실 정도로 매우 쿨한 분이셨고, 간혹 만나는 미국인들과 언쟁이 있을 때에도 제게 상황설명을 해주며 뒤돌아선 함께 그들 흉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럴 땐 이래야 한다' '저럴 땐 저래야 한다'며 꼰대처럼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강요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저도 어느덧 가족을 이루고 살다 보니 내 울타리 안에 다른 이가 들어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아주 잘 압니다. 처음 보는 그 낯선 처조카가 참 불편하셨을 수도 있는데, 친구처럼, 그리고 동생처럼 이물없이 대해주신 걸 보면 우리 이모부는 저와는 달리 가슴속에 따뜻한 인정이 있던 것은 확실합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제게는 너무도 강렬히 그리고 따뜻하게 남아있는 그분의 정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습니다. 몇 년 뒤 병원 치료를 받으시다 예상치 못한 의료사고로 황망히 떠나신 우리 이모부. 그분의 늘 유쾌하고 호기로웠던 아메리칸 스타일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인정머리" (Injeongmeori) is a distinctly Korean concept that captures the essence of human warmth, empathy, and genuine care between people. While commonly used in its negative form—"인정머리 없다" (lacking in human warmth)—to describe someone cold or unfeeling, this deeply personal essay explores its positive manifestation through an unexpected cross-cultural relationship.


Set in 1999 Chicago, the story follows a young Korean student's unconventional study abroad experience. Unlike typical language students attending university programs and living in dormitories, financial constraints force him to stay with his aunt's family while commuting two hours daily to a downtown English school. This arrangement leads to a profound relationship with his uncle-in-law, whom he meets for the first time as a twenty-year-old.


Through vivid, often humorous episodes—from his uncle's surprising welcome gifts of cigarettes and beer to their shared business errands around the city—the narrative reveals how genuine human kindness transcends cultural boundaries and family obligations. The uncle's "American style" approach to mentorship includes patient explanations of everyday American life and unconventional wisdom, including a memorable justification for littering that somehow makes perfect sense.


More than a mentor or teacher, the uncle becomes a friend and older brother figure who never imposes rigid expectations but instead guides through shared experience. His embodiment of 인정머리—treating the awkward, acne-faced nephew with unconditional warmth despite the inconvenience—demonstrates how true human connection works.


The essay poignantly concludes with the uncle's unexpected death from a medical accident, leaving behind memories that illuminate a universal truth: acts of genuine warmth and acceptance, however small, leave lasting impressions that shape how we treat others. Through this touching tribute, the author reflects on what 인정머리 truly means and how it inspired him to cultivate the same quality in his own relationships.


This memoir serves as both a loving tribute and a meditation on the Korean cultural value of treating others with heartfelt consid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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