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

by 윤본
스크린샷 2025-10-26 오후 2.53.41.png A Man Cries Three Times in His Life

남자라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해야 하며, 심지어 슬픈 감정이 들더라도 통제를 잘 해야 비로소 남자로서 그 자격이 있다는 말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관용구입니다. 보통 세상에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마지막으로 나라가 망했을 때가 그 세 번이라고 합니다. 남자로 태어나 가장으로서 삶을 이루는 동안은 닥치는 온갖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꾹 참고 이겨내어 꿋꿋이 가정을 건사해야 한다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말이기도 하죠. 백 번 옳은 뜻이라 할수 있지만 그 표현이 매우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의 남자의 눈물들은 어떤 이야기와 의미가 있었을까요.


먼저 어린 아이의 눈물입니다. 위로는 두 누나가 있는 삼남매의 막내인 한 사내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는 부부의 첫 번째 아들이었기에 그만큼 관심과 사랑도 유독 독차지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세 살, 여섯 살 터울의 누나들 보통내기는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카리스마 있게 동생들을 휘어잡으며 군기를 확실하게 확립한 첫째 누나와, 타고난 친화력으로 어딜 가도 예쁨과 사랑을 독차지한 둘째 누나 사이에서 아이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그렇게 자랍니다.


누나들은 막내 동생을 끼워주지 않으며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는 일도 많았습니다. 종종 같이 어울리기도 했지만 성별이 다르다 보니 겉도는 일이 많았고, 귀엽고 어리다는 이유로 종종 가족의 장난 타겟이 되기도 했었죠.


여느때처럼 누나들과 다툼이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떼어 놓고 아빠는 아들을 데리고 따로 방에 들어갔습니다. 누나한테 그러면 되냐며 언제나처럼 잔소리를 잠시 하고 달래주려 하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합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겁니다. 닭똥 같은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꺽꺽대는 울음에 제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평소에 혼나거나 할때 보이던 눈물과는 사뭇 다른, 억울함과 비통함에 가득한 그런 눈물이었습니다. 그저 가만히 들어주는 것 말고는 아빠는 아이에게 아무 소리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열 살 남짓 짧은 인생이지만 다른 가족들이 모르는 서운함이 그간 쌓여서 터진 거라 생각하니 아빠는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다름아닌 제 막내 아들입니다.


늙어가는 한 중년의 눈물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스스로 감수성이 매우 풍부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무턱대고 엉엉 울고 그런 편은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유독 눈물이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는 어김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져 곧이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을 보며 혼자 훌쩍거리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다른이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은 아닙니다.


반면 아내는 슬픈 영화를 봐도 절대 우는 법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남자는 여성 호르몬이 많아지고 반대로 여자는 남성 호르몬이 많아진다고 하던데, 우리 부부를 보면 그말이 매우 정확한 듯싶습니다.


컨텐츠가 보여주는 다양한 인생의 장면에 스스로를 대입해 상상을 하곤 합니다. 불치병에 걸려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사내로 변해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그러나 제게 눈물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매우 중요합니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알 수 없는 희열이 몸 안팎으로 느껴집니다. 개운해진 기분이 들며 역설적으로 매우 상쾌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슬픈 영화를 골라 보며 억지로 눈물을 짜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물입니다.


1995년 4월, 경칩과 춘분이 지나 봄이 훌쩍 왔지만 군대 훈련병들에게 강원도 화천의 산골 추위는 여전히 매서웠습니다. 춘천으로 입대를 해 강원도로 훈련소 배치를 받은 저는 6주간 매우 고된 신병교육을 받았습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단체 내무반 생활에, 입에 맞지 않는 군대 짬밥, 그리고 무엇보다 최전선의 잊을 수 없던 그 추위는 너무도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저 스스로도 적응하지 못할 것 같던 이 생활도 어느덧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6주간의 고된 신병 훈련을 수료하면 하루의 외박이 주어집니다. 전국 각지에서 훈련병들의 가족들이 면회를 오고 하루 저녁을 같이 보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퇴소일을 며칠 앞두고는 특별히 미지근한 물이라도 샤워도 하게 해주는 등 가족들을 위해 때 빼고 광 낼 수 있도록 갖가지 호사가 주어집니다.


그렇게 드디어 퇴소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행사의 피날레는 바로 가족들과의 상봉시간입니다. "부모님께 경례"라는 구호에 맞춰 훈련병들이 경례를 하고 있으면 가족들이 다가와 만나게 되는 그런 장면이었습니다. 머리 끝에 손이 올라간 채로 제 눈은 재빠르게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멀리서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족을 만났지만 정작 서로 어색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매우 짧은 찰나였지만 저는 아버지의 눈에서 무언가 반짝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 반짝거림이 아버지의 눈물이라 확신이 들었을 때 저 역시 눈주위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고 눈물을 참느라 한참을 훌쩍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언제나 무뚝뚝하기만 하셨던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이제는 영원히 알수는 없지만 세월이 흘러 저 역시 사내아이를 낳아 키우다 보니 조금은 그 심정을 알 것도 같습니다.


억울함에 가득차 꺽꺽 대던 어린아이의 눈물도, 호르몬 변화를 맞는 중년의 몸부림 속 눈물도, 무엇보다 집 떠나 고생한 모습이 역력히 보이는, 까실해 보이는 아들 모습에 울컥했던 한 아버지의 눈시울도, 내 인생 속 잊을수 없는 진짜 남자들의 눈물 이야기입니다.


This Korean proverb embodies traditional expectations of masculine stoicism—men should cry only at birth, upon their parents' death, and when their nation falls. Yet the author reveals that men's tears exist far beyond these patriarchal boundaries.


Through three deeply personal narratives—witnessing his ten-year-old son's accumulated resentment erupt in tears, finding his own catharsis through movies in middle age, and remembering his late father's glistening eyes at his military graduation—he shows that real masculine tears flow in life's quieter, more intimate moments, challenging the proverb's rigid definitions of when men are "allowed" to c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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