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여전히 온몸이 뻐근하고 찌뿌둥합니다. 며칠째 앓은 감기 몸살이 요즘 들어선 쉬이 떨어져 나가질 않습니다. 굳이 병원에 다녀오지 않아도 한두 시간 푹 자고 일어나면 말끔해지던 때가 언제인가 싶네요.
갑자기 몰아친 추위로 최근 며칠 동안 몹쓸 몸이 꽤 고생을 하였습니다. 저녁이면 반가운 사람들과 만나 오랜만에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었죠. 게다가 갑작스런 추위로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해 오랜만에 내려간 광주에서 어머니께도 한동안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네 나이도 이제 쉰이 넘었는디, 정신 차리고 옷 좀 똑바로 입고 댕겨라잉, 맨날 젊을 때 같은 줄 아냐?"
아니나 다를까, 밤새도록 계속된 설사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오한에 잠 못 자고 끙끙대던 저는 결국 다음 날 아침 병원 신세를 지고야 말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만난 의사는 제게 주의할 점을 세심하게 말해 줍니다.
"이거 장염이네요. 이젠 술도 좀 줄이시고 음식들도 주의하셔야 해요. 한동안 날것 드시면 안 되고요. 커피나 유제품도 한동안 드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으니 두꺼운 파카 같은 걸로 체온도 더 따뜻하게 유지하셔야 해요."
장염이면, 우리 아이들이 달고 살던 흔하디 흔한 그런 병인데, 죽 같은 것 먹고 약 좀 챙겨 먹으면 하루 이틀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팔팔하게 다시 돌아오던 그런 병인데, 저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의사는 마치 제가 꼬부랑 노인이라도 되듯이 기계적으로 주의 사항을 말해 줍니다. 문득 어린 시절 집안 어른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자그마치 삼사십 년은 족히 넘은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즈음,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친척들은 큰집에 모여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함께 명절을 지내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6남매의 둘째였고, 어머니는 7남매의 맏이였으니 친가를 가든지 외가를 가든지 항상 수십 명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치던 그런 시절이었죠.
그때 유독 기억나는 모습은 다름 아닌 당시 어른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 개인 사업을 하셨던 어른들은 어린 제가 느끼기에 꽤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얼굴이 반질반질하고 탱탱해서 누가 봐도 부잣집이구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전형적인 얼굴들이었죠.
고급차를 타고, 조카들에게도 아낌없이 용돈도 주시고, 저녁이면 다 같이 모여 앉아 좋은 음식과 고급 양주를 드시며 시끌벅적 밤새 놀기도 했습니다. 취기가 올라 발갛던 그 얼굴들에는 흔한 주름 하나 볼 수 없었고 기분에 취해 올라간 입꼬리는 명절 내내 내려올 줄 몰랐습니다. 어린 저는 그런 모습들이 참 부럽고 멋져 보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도 성인이 되고 왕래가 자연스레 줄어들 무렵, 우연히 할머니 댁에서 오랜만에 집안 어른들을 뵙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늙고 쇠약해져 버린 모습들이 저를 무척 놀라게 했었죠. 저를 보고 반갑게 말씀을 하시고, 여전히 호기롭게 말씀하시는 모습은 그때 그 사람들이 맞았지만, 어느새 주름으로 가득 차 버린 모습들은 제게는 꽤 어색했고, 까랑까랑했던 목소리 역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죠. 오랜만에 뵈어서일 거라고 세월의 모습을 애써 서로 모른 척 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그 세월 속에서 제 어머니는 이와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어머니는 몇 해 뒤 여든을 앞두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저는 어머니가 그렇게 늙어가신다는 것이 크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늘 몸 관리를 열심히 하시고 주변과도 큰 갈등 없이 지내시는 분이어서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저에게는 술 끊어라, 다이어트 해라, 밥 많이 먹어라 등 온갖 잔소리가 끊이지 않으시죠. 그래서인지 이런 어머니가 나이가 드신 것이 저는 솔직히 잘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적지 않은 생물학적 나이는 저를 종종 가슴 철렁하게도 합니다. 몇 해 전 우연히 어머니 팔을 보다 검버섯들이 거뭇거뭇 올라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아니 이것이 뭐요? 검버섯이여? 뭔 이런 것이 벌써 팔뚝에 생긴다요?"
"야 좀 봐라, 내 나이가 일흔이 훨씬 넘었다. 느그 엄마는 뭔 맨날 청춘인 줄 아냐?"
한소리 하시며 지나가는 듯 대꾸를 하셨지만 그때 목소리 속 미세한 떨림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늙음을, 어머니는 머쓱해 하시기도, 약간은 짜증 내시기도 하시며 그렇게 인정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말 그대로 여장부셨습니다. 잘못한 자식들에게는 인정 사정없이 매를 드는 호랑이 같은 어머니셨고, 아버지와 부부싸움을 할 때도 절대 밀리지 않고 할 말 다 하는 그런 분이셨죠. 가끔은 아버지가 조금 불쌍해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동네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자기 목소리를 내시던 분이었고, 싫은 건 싫고 좋은 건 좋은, 언제나 명확하고 정확했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랬던 어머니가, 여전히 내게는 무서운 우리 어머니가, 못내 당신의 나이 듦을 인정하는 모습은 참 슬픕니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이 훌쩍 흘러 이제 나도 예전 어머니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빨리 늙고 싶지 않아 밤마다 좋다는 크림을 얼굴에 찍어 바르기도 하고, 어려 보이게 차려 입으려 옷차림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그랬듯이, 또 내 어머니가 그랬듯이 언젠가는 나 역시 나이 듦을 못내 인정하는 때가 오게 될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 앞에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으며, 젊음이나 권력·능력도 결국 무력해진다는 뜻의 속담입니다. 오래전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찾아 온 천지를 헤매고 다녔지만 결국 지금은 역사책 페이지 속 하나의 이름일 뿐입니다.
"Time spares no one" (세월 앞에 장사 없다) is a Korean proverb meaning no one, regardless of youth, power, or ability, can escape the passage of time. In this essay, the writer confronts this truth at age fifty while battling gastroenteritis, treated like an elderly patient by a young doctor. The diagnosis triggers memories of once-vibrant family elders whose laughter-filled holiday gatherings eventually gave way to frail, aged faces. Most poignant is witnessing his fierce mother—still nagging him endlessly—reluctantly acknowledge her aging when age spots appear on her arm. Despite his nightly face creams and careful grooming, he knows his turn is inevi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