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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Dec 31. 2019

<월간 주방장> 12월호 ver.2

2019년의 마지막 酒방장 이야기 

12월 31일은 올해의 가장 마지막 날이면서도 내년의 첫 시작을 하루 앞두고 있기에, 끝과 시작의 중간에 서있는 오묘한 날입니다. 올해 운수대통했던 사람에게는 저물어가는 한 해가 아쉬울 테고, 맘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았던 사람은 어서 내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겠죠. 2019년을 하루 남겨둔 지금, 시원 섭섭함과 후련함이 들기도 하지만, 2020년을 하루 앞두니 기분 좋은 떨림과 의욕이 생겨납니다. 하루만 남은 '올해'는 제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주방장의 2019년은 한 마디로 '공간의 탄생'이었습니다.


'주방장 양조장'이라는 오롯이 저만의 공간이 생겼고, 직접 제 손으로 술을 빚을 수 있는 양조장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이 한국술과 음식,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기 시작했어요. 주방장의 술에 대한 고집과 애정으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 생기니, 그동안 알던 소중한 인연들이 방문해주셨습니다. (특히 브런치 구독자 분도 만날 수 있었는데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동안은 브런치나 인스타그램에서 한국술에 대한 글과 사진으로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주방장 양조장>이라는 제 공간에서 직접 빚고 선정한 술과 안주 요리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공간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올해를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송년회로 기념하기도 할 것이고, 내년이 되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는 연말 모임으로, 일 년 동안 수고했다는 회사의 종무식으로도, 혹은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핸드폰 사진첩을 들여보며 차분하고 조용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겠죠. 주방장은 올해의 마지막을 <주방장 양조장> 이 공간에서 '한국술'로 기념하고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올해는 '붉은 술의 매력'을 알게 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빨간 술들에게 마음을 뺏겼습니다. 술 자체의 빛깔이 붉기도 했지만, 라벨이 빨간 술이기도, 그리고 맛이 불그스레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한국술 5종을 다시 한 잔씩 마시고 음미해봤습니다. 자, 2019년을 한 잔으로 마지막을 기념해봅니다. 



꽃잠

이 막걸리는 첫 잔을 마시는 사람들 반응이 재미있는 탁주입니다. 일반 막걸리 맛이겠거늘, 하고 한 잔 들이켰다가 톡 쏘는 산미와 탄산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기 때문이죠. 그래서 꽃잠 양조장 사장님께서는 세 잔을 연거푸 마셔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실제로 긴 카톡과 함께 꽃잠 즐기는 방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직접 빚으신 술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었죠.) 빨간 라벨에 적혀있듯이 이 술은 순수 쌀맛과 그윽한 누룩향이 신랑각시의 '첫날'같은 꽃잠스러운 탁주입니다. 꽃잠을 올해의 술로 선정한 이유는 단양주의 매력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탁주이기 때문입니다. 산미, 감미, 그리고 고미까지 모든 맛이 이 한 병에 담길 수 있다는 사실만로도 올해의 재발견이 아니지 싶습니다. 

지금 제일 맛있게 숙성된 꽃잠 막걸리를 마셔봤습니다. 한 잔으로는 부족합니다.



복단지

복분자가 들어간 술들은 시중에서도 종종 볼 수 있죠. 그리고 중요한 자리나 회식 때, 한 병씩 야심 차게 주문하고 한 잔씩 마실 때마다 허해진 기력을 복분자가 채워주길 부탁해봅니다. 그런데 이 복분자 술은 조금 다릅니다. '복단지'는 복분자 고유의 붉은빛이 더욱 진해보이지만, 과하지 않고 절제된 단맛에 적절한 산미 그리고 향긋한 복분자의 향을 갖춘 복분자 약주입니다. 술아원에서 신줏단지 모시듯 준비한 술이기에 마시면 이름처럼 왠지 모르게 건강과 기력을 복단지째 가져다줄 것만 같은 술입니다. 복분자의 산미를 잘 살려 정말 한 모금 '약'같은 이 약주는 한 번 시작하면 한 단지를 금세 비우고 마는 붉은 마성의 술입니다. 

시음하려고 한 병을 열었다가,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다 비우고 말았다면...



오희

스파클링 막걸리라고도 불리는 장미 빛깔의 술 오희는 맑고 가벼워서 리큐르나 칵테일 아닌가 싶지만, 엄연히 주세법상 탁주로 분류된 술입니다. 오픈하면서부터 들리는 치이이익- 탄산 소리는 한 해를 마감하며 적막했던 마음마저 시원하게 만들어줍니다. 오미자에는 다섯 가지의 맛이 난다고 하는데 그중 첫 번째 맛인 은은한 단맛이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탄산이 강하기 때문에 짧게 끊어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오미자의 신선한 향이 산미와 더불어 느껴집니다. 그리고 끝에 약간의 매운맛을 느낀다면 정말 예민한 미각을 가지신 분일 거예요. 문경의 특산물 오미자가 들어간 오희는 올해 여러 스파클링 탁주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중에서 제 마음을 가장 톡톡 두드렸다고 할까요. 붉은 탄산감을 기분 좋게 담아낸 술 오희였습니다. 




블루베리 약주

블루베리의 맛을 떠올리면 대부분 달달한 베리맛을 상상하지만 실제 블루베리를 먹어보면 밍밍한 단맛에 특유의 풀 냄새 같은 향이 납니다. 보통 블루베리를 설탕에 절여서 더 달콤하게 즐기기 때문에 본연의 단맛을 잊곤 하죠. 그런데 붉은 빛깔이 나서 여느 와인 못지않게 맑고 투명한데, 여기에 블루베리 본연의 단맛까지 나는 술이 있다면 어떨까요? 바로 주방장표 블루베리 약주가 그랬습니다. 신선한 블루베리의 맛과 향이 쌀에서 나는 단맛과 함께 조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저온 숙성을 통해 맛도 약간은 붉은 보랏 빛깔처럼 보다 아름답고 고와졌습니다. 제 손으로 빚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더 감탄했던 이 약주는 빚은 술 중 가장 뿌듯함을 안겨주었던 술이기도 합니다. 




추성주

술을 따르기 전부터 병의 유려함과 노을 지는 황금빛 수묵화 같은 차분한 디자인 때문에 눈으로 먼저 마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성주는 코르크를 여는 순간 느껴지는 짙은 약재의 향에 한 번 놀라고, 혀끝에서 느껴지는 따스하면서도 복합적인 맛에 또 한 번 놀라는 상당히 매력적인 술입니다.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처음과 달리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노르스름 하지만, 약간의 붉은색이 돌아 추성주 맛과 향을 이 빛깔이 표현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알코올 도수 25%에 비해 강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향 때문인 것 같아요. 외국인 친구가 추성주는 마치 '한방 위스키'같다고 표현한 것처럼 한국적인 풍미를 한 병에 잘 담아낸 술입니다. 




작년 9월부터 올해 12월까지 총 78종의 술과 음식을 <월간 주방장>을 통해 나눴습니다. 사실 더 많은 술을 마셨고, 아직 써야 할 술은 한참 남았지만 천천히 그리고 차곡차곡 쌓아갈 예정입니다. 직접 마시지는 못하지만, 글과 사진만 봐도 한 모금 마셔본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게 더 생생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더불어 2020년부터는 <주방장 양조장>이라는 오프라인 공간과 <월간 주방장> 온라인 공간을 함께 엮어 한국술과 어울리는 음식 그리고 공간 이야기까지 담은 변화된 컨텐츠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주방장 양조장의 첫 술이 나오게 되면, 달라진 <월간 주방장>에서 가장 먼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년엔 더 맛있고 재밌고 멋진 술들을 많이 마실 수 있도록, 우리 건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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