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방장 양조장 Aug 31. 2020

[월간 주방장 2020] 8월호

한국산 네추럴 술, 약주!

유행이나 트렌드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주류 업계 인기 아이템에는 항상 안테나를 예민하게 세워놓고 찾아서 마셔봅니다. 최근까지 계속 주방장의 유행 안테나에 잡힌 주인공은 바로 '네추럴 와인'입니다. (포도 생산부터 와인 제조 공정까지 인공적이고 화학적인 요소를 배제한 채 만들어진 네추럴 와인은 시장에 등장한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근 들어서 본격적으로 대중의 관심까지 사로잡으며 신흥 주류 강자로 떠오르고 있어요.) 가까운 동네에 네추럴 와인바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두 차례 방문해 또 다른 와인 세계를 맛보았습니다. 오픈 키친에 감각적인 음악과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와인바였는데, 독특한 네추럴 와인 리스트와 멋진 안주들을 함께 즐겼습니다. 기존 와인바의 잔잔한 고상함 보다는 확실히 모든 요소에서 젊음이 느껴졌는데, 레드-화이트-오렌지로 이어지는 네추럴 와인을 마실수록 머릿속엔 느낌표보다 물음표와 영감들이 떠올랐습니다. 네추럴 와인은 차별성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최근의 소비 니즈를 충족하며, 컨벤셔널 와인(Conventional Wine, 기존 방식대로 만들어진 와인)보다 맛에 있어서 훨씬 뛰어나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이 와인을 아우르는 문화 자체를 마시는 것 같았어요. 마치 공정무역 커피가 그랬던 것처럼요.



머릿속에 맴돌던 또 다른 생각은 ‘네추럴 와인은 마시면 마실수록 약주 같다'라는 사실입니다. 약주를 마시며 받았던 느낌이 최근 유행하는 이 네추럴 와인들과 결을 같이 한다는 거예요. 물론 와인과 약주가 양조되는 방식이나 주종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두 술이 공유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네추럴 와인과 약주의 연결고리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비교, 분석해볼게요!) 새로운 영감과 깨달음을 선사했던 네추럴 와인 경험을 기회삼아, 이번 8월 월간 주방장에서는 와인만큼이나 향긋하고 깔끔한 한국의 약주들을 소개합니다. 이색적이고 독특한 경험을 선사할 약주를 마셔보고 그 느낌을 생생히 전해볼게요.




1. 능이주

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능이버섯을 다려 먹으면 좋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능이버섯은 백숙이나 수육 같은 고기 음식들과 궁합이 좋아 자주 곁들여지는 버섯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 향긋함과 쫄깃함이 매력적인 능이버섯이 들어간 약주가 있습니다. 충남 논산 내국양조에서 양조되는 이 약주는 13도라는 도수 치고 꽤나 신선하고 이색적인 능이의 향이 입안에 퍼집니다. 피니쉬로 위스키에서나 느껴졌던 우드 아로마가 입안에 기분 좋게 퍼지며, 자기 위해 마시는 술인 '나이트 캡'으로 편안하게 홀짝홀짝 마시기 딱 좋을 약주입니다. 은은한 버섯향과 적당한 알코올이 숙면으로 잘 이끌어 줄 것 같거든요. 평창올림픽 만찬주로 선정된 이후 더 주목받은 능이주는 최근 깔끔한 라벨과 부담 없는 양인 375ml로 출시되어 선물하기에 최적입니다. 물론 나에게 주는 선물로도 최고지요.




2. 송이주

술에서 감칠맛이 느껴진다면, 그 술은 정말 정성을 다해 좋은 재료로 빚은 술이 분명합니다. 능이주의 단짝인 송이주에서는 흔히 여섯 가지 맛 중에 하나인 '감칠맛'이 느껴집니다. 능이가 향긋함으로 약주의 진면모를 선보였다면, 송이주는 감칠맛과 신선함으로 약주의 새로운 매력을 선사합니다. 강렬하진 않지만, 은은하게 느껴지는 송이 특유의 풋풋한 향이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들게 만듭니다. 버섯 중에 으뜸으로 꼽는 송이버섯이 함유된 송이주를 마시면, 비 온 날 다음 습기 촉촉이 머금은 비자림을 거니는 것만 같습니다. 신선한 자연의 정취를 오롯이 담은 약주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추럴 와인에서 느껴지던 콤콤하면서 가벼운 느낌을 송이주에서 비슷하게 느낄 수 있고, 연한 술이다 보니 간간한 음식과 함께 곁들이면 매력이 더 돋보입니다. 최근 들어 월간 주방장에서 술 장원(이달의 베스트 술)을 선정하지 않지만, 8월 편에서 장원 술을 꼽는다면 바로 그 술은 송이주입니다!



3. 솔송주

능이주와 송이주에서 버섯 약주의 재미를 맛보았다면, 솔송주에서는 소나무의 정수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습니다. 솔잎과 송순이 함유되어 있어 그 어느 약주보다 깔끔한 목 넘김과 청량한 끝 맛을 자랑합니다. 솔송주는 같은 13도의 약주보다 강한 알코올 취나 진득한 입촉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대신 가볍고 깔끔하기에 무척 차갑게 마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시원하게 냉장 보관했다가, 샤워를 마치고 에어컨 쐬면서 홀짝홀짝 마시고 싶은 술이랄까요.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인 미타임(me-time)에 짜릿할 정도로 시원한 솔송주 한 병과 함께라면, 피톤치드 가득한 소나무 숲에 빠진듯한 기분이 들 거예요.




4. 녹파주

솔송주와 병 모양도, 라벨도 똑같아서 이름을 자세히 봐야 하는 녹파주. 녹파주라는 강렬한 이름 덕에 눈길을 더 끕니다. '푸른 파도에 비친 파도처럼 맑다'라는 의미의 이 술은 소나무 숲에 들어오긴 했는데, 솔숲 옆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짠기 머금은 바닷바람이 느껴지는 술이에요. 술 이름이 시적인 것처럼 시음 평가도 괜히 문학적으로 하게 되네요! 녹파주는 솔송주보다는 조금 높은 15도로, 처음 느껴지는 누룩향에 이어 올라오는 날카로운 알코올취가 매력적이며, 끝 맛은 무더운 여름에 불어오는 칼바람처럼 드라이합니다. 경남 함양의 솔송주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두 술은 보통 약주에서 자주 느껴지던 단맛은 과감하게 덜어내서, 드라이하고 깔끔한 술을 찾으시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5. 니모메

니모메!? 이름만 들으면 도대체 무슨 술인가 싶지만 귤이 들어간 제주도산 약주입니다. 제주 방언으로 '너의 마음에'라는 뜻의 귤 약주, 니모메는 다정한 이름처럼 달콤하게 다가와 끝 맛을 아스라이 남기는 술입니다. 첫 모금에는 쌀과 누룩의 풍미가 먼저 입안에 퍼져서 과연 귤피가 들어간 약주가 맞나 싶지만, 마시고 나면 입안에 맴도는 시트러스함으로 존재감을 설명합니다. 모두가 달콤해 보이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처럼 외양만 보면 상큼하고 앙증맞은 맛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 드라이한 면모를 지녔고, 제주샘주의 오메기술과 더불어 꾸준히 인기가 가장 많은 약주입니다. 실온에서 마시기보다는 차갑게 칠링 해서 음용하는 걸 추천드리며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곁들이기에 가장 제격입니다. 오렌지 네추럴 와인에서 느껴지던 발효된 시트러스함을 니모메에서도 느껴볼 수 있으니 두 술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겠어요!




‘약’주라는 이름 때문인지 약주는 약재나 약초를 넣어서 굉장히 쓰고 강할 것만 같지만, 막상 향긋하고 풍미가 좋은 술들을 마시고 나면 그 편견을 확 거둘 수 있을 거예요. 이번 월간 주방장에서는 네추럴 와인과 약주의 연결고리를 찾으며 한국산 네추럴 와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약주’를 탐구해봤는데요. 물론 과실주와 약주이기에 향이나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충분히 우리나라의 약주에서도 맛과 향, 색깔까지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다는 건 확실해요. 와인 라인업이나 해외 컬렉션의 다양함을 좇는 것도 좋지만, 쌀이 기본이 되는 우리 한국술의 매력을 차곡차곡 함께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덥고, 습하고, 불안함이 엄습하고 있는 시기이지만 모두 일상에서 제 자리에서 나름의 재미를 찾아가며 잘 버텨가길 바랍니다. 제게 한 잔의 좋은 술이 이 시기에 큰 위안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월간 주방장 2020] 7월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