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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Jan 01. 2021

[월간 주방장 2020] 12월호

2020년의 마지막 월간 주방장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가는 2020년입니다. 모두에게 쉽지 않았던 한 해였고, 주방장에게도 어려웠던 1년이었습니다. 울퉁불퉁하고 숨찬 오르막길이 있으면 비교적으로 쉬운 내리막길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유독 계속 오르막길만 힘들게 올라가는 것 같았어요. 계속 날이 갈수록 오르는 확진자 수처럼 부담감과 혹시라는 불안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 해였습니다. 


그래도 오르막길도 조금씩 조금씩 함께 오르니 힘들지 않았어요. 올해 감사하게도 만난 인연들 덕분에, 고마운 마음들 덕분에 외로움과 힘듦을 달래볼 수 있었습니다. 주방장 양조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모여진 사람들과 그 사람들로 인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들 정말 정말 너무 소중하게 남았어요. 


2020년에도 매달 새로운 한국술을 최소 5개씩 많으면 7종씩 소개를 했네요. 거의 70종이 넘는 한국술을 더 발굴하고 시음하면서 쌓아왔다니 꾸준함에 잠시 뿌듯함을 느껴봅니다. 웬만한 술들을 거의 다뤄봤지만, 아직도 접해보지 못한 술이 더 많으니 20201년 월간 주방장도 기대가 되고요. 올해의 마지막 월간 주방장도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달에 새로 마셔본 한국술을 소개해볼게요! 





1. 대통대잎술

주주총회 주주님께 선물받은 대잎 대통술! 술 선물은 언제나 좋아요.

한국술 중에서 그 어떤 술보다 정체성이 가장 뚜렷한 술! 대통대잎술이 아닐까 싶어요. 이름에서부터 패키징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대나무고, 대통 안에 담겨 있는 대나무 술이니 가장 직관적인 한국술입니다. 술을 마시는 방법도 색달라요. 뾰족한 도구로 대나무 상단을 뚫어야 하는데 그냥 병뚜껑을 돌리거나 위로 당겨 올리면 되는 술들에 비해서는 품이 많이 들어가는 편입니다. 쌀을 기본으로 한 15도의 살균 약주이며 대잎과 구기자, 진피, 갈근, 오미자, 솔잎 등이 첨가되어 있어 은은한 대잎 향과 건강 향을 지니고 있어요. 약주지만 청량한 풀향이 감돌아서 푸릇푸릇한 느낌도 좋고요. 대통병 자체에서도 은은한 대나무 향이 느껴지는데, 이 술을 아껴두겠다고 오래 냉장보관하시면 술이 다 날아가서 ‘용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간과하시면 안 됩니다. 다른 술들은 오래 보관하며 ‘숙성의 재미’를 맛볼 수 있지만 대통술은 그러려다가는 빈 대나무 껍질만 남게 될지도 몰라요!


대나무와 술은 인연이 깊어요. 대나무 자체를 원료로 한 술로는 ‘죽력고’가 있습니다. 조선 3대 명주라고도 불리는 죽력고는 정읍에 위치한 태인 양조장에서 송명섭 씨가 빚고 계셔요. 죽력고는 대나무의 푸른 대를 구우면 끈끈한 진액이 나오고 그렇게 흘러나오는 ‘죽력’을 섞어 증류하여 만든 술입니다. 대나무를 가열하고 증류한다는 점에서 정성과 노력 그리고 시간이 들어가 고급술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대나무 잎이 들어간 술로는 대통술과 같은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 ‘추성주’가 있어요. 추성주는 약재를 이용해 빚은 술을 증류한 후에 이 소주에 10가지 이상의 약재를 넣고 다시 ‘대나무 여과’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만 대나무 술이 있는 건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대통대잎술처럼 댓잎을 넣고 여과하여 만든 ‘죽엽청주’가 있다고 하는데 죽엽과 청주의 조합도 궁금해집니다. 


대나무 말고도 나무를 이용한 술들은 예상외로 많아요. 약재가 되는 나무(헛개, 황칠, 싸리, 회화, 측백나무 등)로 빚은 술들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며 술로 많이 빚 어마 시기 시작했는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면 ‘술’ 자체를 마시면 안 되는 건데 굳이 약재 성분을 술에 녹여 마신다고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약재가 들어간 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텐데 의심이 들며 갸우뚱해지곤 합니다. 





2. 모주

한옥마을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모주'

국밥엔 소주, 삼겹살에도 소주, 치킨 피자엔 맥주! 마치 수학 공식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페어링 법칙이 있는데  ‘전주 콩나물국밥+모주’ 조합도 그렇습니다. 잘게 자른 오징어와 콩나물이 듬뿍 담겨 바글바글 끓는 콩나물국밥을 한 뚝배기 비우고, 이 모주로 챡 속을 달래주면 ‘아 내가 전주에 있구나’라고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아 지금 이 글을 적는 이 시점에도 전주에 콩나물국밥과 모주를 마시러 떠나고 싶어 지네요. 


모주가 술이 아니라고 가끔 말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바로 도수가 1.5%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알코올이 1%라도 들어간 음료는 ‘주류’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이 모주도 살균탁주라는 식품유형에 해당됩니다. 기본적으로 그리고 주류법상으로도 술은 맞지만 제품에 따라서 알코올 1% 미만의 모주는 ‘발효음료’로 판매되기도 한다는 사실! 모주라는 이름에는 다양한 기원이 있지만, 1) 어머니 모자를 사용해 어머니의 술이라는 뜻이며 술을 좋아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약초를 넣고 맛도 달게 만들어서 도수를 낮춘 술이라는 설. 2) 광해군 때 귀양한 인목대비의 어머니가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양조해 팔아 ‘대비 모주’라고도 하였는데 여기서 대비가 탈락되고 모주라고 불리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예전 어머니도, 지금의 어머니도 술 많이 마시는 자식 걱정은 같은 마음인가 봐요.


항상 전주 식당에서 한 잔으로 마셔보기만 했지 이렇게 병에 담긴 모주를 상품으로 마셔보긴 처음입니다. 생각보다 전주 한옥마을 근처 편의점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었어요. 침전물이 잘 섞이지 않아 꽤 오랫동안 흔들고 뚜껑을 열자 달콤~한 생강과 계피향이 올라옵니다. 꾸덕한 질감과 물 많이 탄 믹스커피 같은 색깔의 술이 꿀렁꿀렁 잔에 차오르는데 맛은 향과 거의 비슷합니다. 어른의 수정과 느낌이랄까요. 달콤한 수정과 느낌인데 약간 텁텁하고 생강향 때문인지 느껴지는 알코올도 살짝 있고요. 끝에는 은은하게 올라오는 대추 향 풍미가 재미있는데 단맛과 산미가 어우러져 있어서 생각보다 물리지 않습니다. 처음에 한 잔만 마시고서는 왜 잔술로 파는지 알 것 같다가도 다음 잔이 계속 궁금해지는 모주였습니다.





3. 댄싱사이더 - 치키피치

*댄싱사이더-치키피치는 댄싱사이더 측으로부터 제공 받은 제품입니다.

사과와 복숭아의 조합이라는 소식만 듣고도 너무나 궁금했던 술인데, 정말 감사하게도 댄싱사이더 측에서 선물해주셔서 치키피치를 만났습니다. 발랄한 핑크빛 라벨에 원숭이가 사과를 탐내는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가 이 사이더의 매력을 담고 있어요. 복숭아와 애플 사이더의 조합이라! 복숭아 술은 예전에 고도리 복숭아 와인을 마셔봐서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차원의 복숭아 풍미였어요. 


물렁하고 쥬시한 물 복숭아보다는 딱딱한 복숭아(백도)의 은은한 향기를 더 느낄 수 있습니다. 물복(물 복숭아)은 물-컹 하면서 입안에 복숭아 향이 챠르르 퍼진다면, 딱복(딱딱한 복숭아)은 딱-하고 향을 톡 터지고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을 느낄 수 있잖아요. 치키피치는 딱복 중에서도 딱딱한 백도 복숭아와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코코팜 복숭아 향과 감기약의 시럽 향이 느껴졌다면 끝에는 향긋한 복숭아 풍미가 남습니다. 사과와 복숭아의 조합을 굉장히 기대했는데 사과의 시원한 향과 복숭아의 향긋함이 재밌는 콜라보를 만들어내서 그 기대를 한껏 충족시켜준 치키피치였습니다. 





4. 와쥬블루 Oiseau Bleu

*와쥬블루는 댄싱사이더 측으로부터 제공 받은 제품입니다.

복숭아와 사과 조합의 묘미를 맛봤다면 이번엔 블루베리와 사과의 만남을 맛봅니다. 와쥬블루는 오미자 사과 사이더인 ‘요세로제’의 후속 버전입니다. 댄싱사이더 4종 보다는 큰 보틀에 담겨 있어 와인 같은 느낌이 훨씬 강한 이 사이더는 이름에서부터 궁금함을 자아냅니다. 빛깔은 요세로제보다는 약간 더 검붉은 빛을 띠고 있고, 오픈하면 베리류의 상큼함과 달달함이 같이 섞여서 올라옵니다. 술의 정체를 알리지 않고 로제 와인이라고 얘기하면 다들 깜빡 속을 수도 있을 술이에요. 사이더는 불투명한 잔보다는 확실히 투명하고 얇은 유리잔에 마시는 게 더 맛있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한 잔 마셔봅니다!


파랑새가 입 안에서 맴도는 맛이랄까요? 사실 블루베리는 농사가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새’ 때문이라고 합니다. 열매가 달고 맛있으니 그만큼 새들이 탐내기 때문인데 새들이 이 와쥬블루도 탐낼 수 있겠어요! 은은한 블루베리 풍미가 달콤 새콤한 사과와 잘 어우러집니다. 의외로 복숭아보다 기대하지 않았던 블루베리 애플 사이더가 훨씬 더 맛있게 느껴졌어요. 블루베리라는 과일이 강한 개성을 지니고 있기보다는 은은하기 때문에 사과 자체의 특징을 해치지도 않았고, 두 과일이 만들어내는 마리아주가 좋더라고요. 와쥬블루에서는 신선한 과일, 특히 갓 딴 신선한 베리들만을 담은 듯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어요. 





5. 주방장의 유자 이양주  

주방장이 빚은 유자 이양주를 소개합니다! 예전 월간에서는 제가 빚은 술도 이따금씩 소개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새로운 신상 술들이 워낙 많다 보니 직접 빚은 술 소개가 적었던 것 같아요. 유자 이양주는 말 그대로 이양주 기법으로 빚으면서 유자를 첨가하여 특유의 향과 상큼함을 살린 탁주입니다. 도수는 13도로 예상했던 것보다 상큼한 산미와 유자 특유의 쌉싸름한 맛이 잘 어우러져 나왔어요. 유자는 과육보다는 껍질에 향이 가득하기 때문에 그만큼 껍질 손질에도 정성이 많이 들어갔는데, 제가 생각하던 것보다 유자향이 훨씬 쌀과 잘 조합을 이뤄서 기분 좋은 술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상큼하다고 해서 알코올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알코올 도수라고 하더라도 당도가 높았을 때는 알코올마저 달콤하게 느껴지지만, 유자 이양주처럼 산미와 쌉싸름한 맛이 블렌딩 되었을 때는 모든 맛이 살아있어서 그런지 도수가 더 느껴지는 것 같아요. 



쌀 물 누룩 그리고 유자만으로 빚은 술이며, 유자를 설탕에 절여서 청을 만든 것이 아닌 생 유자를 넣었기 때문에 이 시기 아니면 빚을 수 없는 술이기도 합니다. 생 유자만을 사용해 빚는 술이기에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술인 유자 이양주! 저는 한 해동안 감사했던 분들과 함께 나누어 마셨습니다. 이게 바로 술을 직접 빚는 재미 아닐까요? 







지금 여기까지 꼼꼼하게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2020년에도 <월간 주방장>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달 새로운 술을 소개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기다려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신다는 생각에 수행하는 마음으로, 리츄얼처럼 올 한 해도 12번의 월간 주방장을 발행할 수 있었어요.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난 2020년이었지만, 급변하는 시대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남았더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독자분들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주방장 양조장이라는 공간도 그렇고요. 그래서인지 모두 내년에는 걱정과 불안함을 조금은 덜고, 건강하게 서로의 얼굴을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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