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사했습니다

10년차 직장인의 새로운 도전

by 제이유

아침 6시 알람이 울린다.

전날 밤 회사 선배들과 사당역 참치집에서 달렸음에도 정신이 또렷하고, 컨디션도 꽤 괜찮다.

신발을 신고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맡으며 오늘의 시작을 오롯이 느껴본다.


4.29일,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내 삶에 있어서 이벤트가 있는 날이다.

만 10년을 보낸 회사에서 퇴사를 하는 날. 공채로 들어온 국내 통신 대기업으로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릴 수 있게 탄탄한 기반이 되어준 고마운 회사다.


아침 러닝을 하며 마음을 다잡아본다. 열흘도 안되어 삶에 큰 변동성이 생겨버렸다.

지난 주 월요일 회사에 퇴직 의사를 밝혔고, 수요일에는 송별회를, 이번주에 걸쳐 동료들에게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지난 10년 간을 돌아보면... 성취의 순간도 좌절한 기억도 있었다.

운이 좋게 특진을 두 번이나 하기도 했고. 회사의 핵심인재가 되어 자부심을 느끼며 일을 할 때도 있었다.

"나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으쓱할 때도 있었고.."

반대로 프로젝트가 없어지거나 사람관계가 어려워 육아휴직을 생각할 때도 있었다.


이직을 결심한 계기는 더 이상 현재의 조직에서 임팩트 있게 성장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서다.

몸 담았던 신사업 조직이 조직 개편으로 축소되고, 매번 정권이 바뀌면 영향을 받는 지배구조로 인해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이제는 나 스스로가 떠날 시기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아니 스스로 "이건 성장의 과정이야"라고 억지 가스라이팅하던 인내심이 바닥난 상황이지 않을까.


입사 때부터 리더십의 변동성은 계속해서 존재했고, 오히려 대리/과장 시절에는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성과를 내고 조직에서 인정도 받았으니까...

그때만 하더라도, 난 이 조직에서 정년 퇴직을 하거나.. 임원이 되어 50대에는 퇴사를 하겠다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동기들이 이직을 고민한다고 할 때도 눈 한 번 꿈쩍하지 않고.. 일에만 집중했다.

사실 이직을 할 여유시간이 그땐 없었다. 적어도 입사 후 9년동안 한 눈 팔지 않고 업무에 몰입해왔다.


사실 이직 서류 접수할 때까지만 해도 무조건 이직을 해야겠단 생각은 없었다. 그저 10년 된 나의 가치를 한 번 시장에서 검증받았으면 좋겠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경력기술서를 정리하고 면접을 준비하다보니 내가 걸어온 길이 한판으로 정리됐다.

그리고 이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말한다. 10년 간 일하며 만든 인맥과 암묵지의 지식, 내부 평판. 이 모든 걸 버리고 가기엔 너무 아깝다고. 지금 회사에 머문다면 임원으로 갈 수 있는게 분명할텐데 왜 포기하냐고.

워라벨을 지키며 업무를 하고 승진도 할 수 있는데 왜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냐고..

하지만 이 말엔 엄청난 논리 비약이 숨어있다.


첫 번째, 소위 통신대기업에서 임원을 아무나 시켜주지 않는다. 직원 레벨일 때는 워라벨을 지킬 수 있겠지만,임원을 각오하면 온전히 챙기기가 쉽지 않다. 물론 타회사보다는 경쟁이 덜 할수도 있지만,

그 속에는 일, 관계, 정치 등 정형적/비정형적인 요소들이 숨어있고.

무엇보다 운이 따라줘야 이룰 수 있는 결과다.


두 번째는 안정성이다. 정년이 보장된다는 말로 주변에선 유혹한다. 하지만 난 애초에 정년까지 회사를 다닐 마음이 없었다. 어차피 임원 목표로 50대에는 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세 번째 건강이다. 이직한 회사는 금융권이기에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 관리가 어렵다고 얘기한다. 내겐 경쟁의 스트레스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오는 답답함과 등가교환 가능하다. 중요한건 수면과 회복탄력성이다. 음주, 폭음을 줄이고 밤 늦게까지 유튜브를 보지만 않아도 수면의 질은 개선 가능하다. 매일 아침 러닝을 통해 적당량의 세로토닌이 꾸준히 분출되기만 해도 하루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내적 힘이 생긴다.


이젠 주사위가 던져졌다. 무를 수도 없다.

내 이름 석자로 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온전한 브랜드를 만들어나가기를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24년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