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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주아 Jun 22. 2016

골든패스 클래식 열차 여행

 몽트뢰에서 루체른을 향해 달리다




GOLDENPASS CLASSIC

프랑스 안시(Annecy)를 떠나 스위스 루체른(Luzern)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스위스 패스를 챙겨 가방에서 꺼내기 쉽게 다시 정돈했다. 제네바에서 열차로 1시간을 달려 몽트뢰(Montreux)에 도착했고, 이제 1시 44분에 출발하는 골든패스 클래식 열차를 기다렸다 타면 된다.  

 

몽트뢰 호수를 대충 둘러보고 일찍 플랫폼에 도착했는데 클래식 열차가 이미 기다리고 있다.



참으로 클래식하다. 앤틱 장난감 같은 외관을 보며 홀로 신나는 비명을 지른다. 물론 속으로.


시간여행이라도 하게 될 것 같은 기분을 안고 열차에 오른다.


객차의 문에 있는 동그란 창으로 들여다보니 더욱 신비롭다. 오늘은 승객이 드문 날인가 보다.


원목으로 장식된 둥근 천장과 탁자 그리고 창틀까지 감성이 물씬 풍기는 열차 내부.  출발 시각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하게 감탄의 말을 외치는 그녀는 미국에서 온 듯했다. 아마도 서부일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저기 동그란 창에 가보라며 깜짝 놀랄 거라며, 자기는 알고 있지만 너를 위해 참을 테니 너의 눈으로 직접 보라는 표정으로 찡긋거리며 내게 권했다. 그녀의 성의가 고마워 나는 한번 더 가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는 마침내 그녀와 감격을 나누었다.


열차는 정시에 출발했다. 나무 창틀에 턱을 괴고 창밖을 응시한다. 어린 시절 달력에서 보던 미지의 세계, 스위스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에 렌즈를 갖다 대고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찰나의 풍경을 담아보려 애를 썼다.


날은 흐리지만 칙칙폭폭 적당한 속력으로 달려가는 기차 안에서 보는 스위스는 아름다웠다. 지루함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듯했지만 여백이 많고 청초한 언덕들이 아직은 마음에 든다.


안개가 가득한 스위스의 어느 호수. 똑같은 풍경 같아도 잠을 잘 수가 없다. 바로 이다음에 어떤 그림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말이다.


별로 복잡하게 생각할 거리를 주지 않는 풍경들. 머릿 속은 점점 비워져 가고 멍하게 초록빛 세상을 응시하며 나는 휴식을 느낀다. 언제나 그렇듯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하는 것만이 가장 궁금한 질문으로 남는다.


골든패스 클래식 열차는 몽트뢰에서 츠바이지멘(Zweisimmen)까지만 운행한다. 1시간 48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이 끝나간다. 오늘은 하루 종일 거의 이동만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 그 자체의 목적은 이루어지고 있기에.




GOLDENPASS PANORAMIC

츠바이지멘에서 시간이 맞는 골든패스 파노라믹 열차를 발견했다. 스피츠(Spiez)까지 40분간 이동이다. 거기서부터는 일반열차로 베른(Bern)을 거쳐 루체른에 도착할 예정이다. 여러 번 갈아타긴 하지만 환승시간은 10분 미만이라 일정이 늘어지지도 않았고, 안내가 잘 되어 있어 시간도 충분했다.

대기 중인 골든패스 파노라믹 열차

오후 3시 38분. 햇살은 벌써 오렌지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의 여행은 32박 33일의 일정 중 딱 절반이 지나간다. 특별히 붙임성이 좋고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과 말할 기회는 많이 갖지 못했다. 하루 중 말하는 것을 다 합쳐도 몇 분 되지 않을 것 같다. 외로움을 잘 타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외로움이 문득문득 낯선 모습으로 내 옆자리에 다가와 있는 걸 느낀다. 하지만 그래도 내게 여행은 너무나 달콤하다.


열차가 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하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보는 맑은 빛인지! 갑자기 기분이 살랑살랑 좋아진다.


넓고 푸른 들판 위로 선이 부드러운 좁은 길이 길게 뻗어있고, 붉은빛의 집들은 모두 비슷비슷한 형태로 지어져 옹기종기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풍족하고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는 이 마을의 어느 아이는 이곳이 답답하다며 떠나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고 내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 본다.


초록 들판, 붉은 나무, 파란 하늘, 하얀 눈... 이렇게 다채로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나는 그저 아... 좋다... 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그렇게 그 찰나를 지나친다.



선명하지 않아도 좋은 사진이 있다. 오후의 나른했던 유리창 너머로 수많은 나무들 중 나의 프레임 속으로 들어왔던 작은 나무 한 그루. 내겐 이 나무 한 그루, 한 조각의 햇살과 구름 모두 소중하다. 난 나만의 영화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열차를 달려왔어도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못했다. 그리고 햇살이 비춘 뒤 부터는 더더욱 얼굴을 창가에 바짝 대고 얼마 남지 않은 이 여정을 즐기려 했다. 시간은 점점 가고 있었고, 열차는 결국 역에 도착할 테니까. 


지나가고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이국의 산과 나무들.


지나치던 어느 역에서 본 풍경. 이 나무들은 다 어디에 쓰려는 걸까?


아! 정말 시원하다. 열차에서 내려 당장이라도 걸어보고 싶은 길이다. 저 집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해가 지면 소들은 모두 외양간으로 들어가겠지. 밤이면 별이 참 많이 보일 것 같아.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호기심들이 날개를 펼친다.

그리고, 아아... 이제 정말 곧 있으면 도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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