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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ahn Yoon Mar 20. 2023

엔텔롭캐년의 비극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빛이 있어야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아름다운 빛이 있는 곳에

더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빛이 없다면

사진이라는 예술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앤털롭 캐년은

오묘하고 환상적인 빛의 예술이 있는,


전 세계의 사진작가들이 

죽기 전에 가고 싶어하는 버킷 리스트 가운데 하나이다.


Antelope Canyon에서 벌어지는 

빛의 향연은 너무도 아름다워 할말을 잃게 만든다.


지금은

앤털롭 캐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1997년에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1997년은 

엘니뇨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때는

1997년 8월 12일, 

오후 3시 30분 경이었다.


앤털롭 캐년의 Lower에서

동남쪽으로 15마일 가량 떨어진

LeChee Rock 부근에서 거대한 구름이 생성되었다.


이 비구름은

사전에 아무런 예고나 전조도 없이

갑자기 생성되어 짧은 시간 동안 주변에 많은 비를 뿌렸다.



하지만 8월 12일, 

앤털롭 캐년의 Lower에는

아주 잠시동안 살짝 흩뿌렸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관광객들은 평상시처럼 Lower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바호 원주민의 땅인

LeChee Rock 주변에 내린 비는


홍수가 되어

앤털롭 캐년의 Upper를 통해 

빠른 속도로 Lower로 돌진해 왔다.

물론 이 상황을 Lower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Upper 주변을 지날 때

물의 높이는 약 11ft(약 3.3m)였다.


대부분의 길이 

평지로 이루어진 Upper와는 달리

Lower는 경사지고 매우 좁은 길로 이루어져 있다.


홍수가 있던 그 시각,

Trek America를 통해 관광을 온


프랑스, 영국, 스웨덴, 

그리고 미국에서 온 11명은

앤털롭 캐년의 Lower를 구경하고 있었다.


당시 28세였던,

Poncho Quintana가 

이 팀을 가이드하고 있었는데

가이드 포함 모두 12명이 Lower 안에 있었다.


잠시 뒤에 일어날

비극적인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들은 앤털롭 캐년의 아름다음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좁은 협곡을 통과해 들어오는

사자의 울부짖는 것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Upper를 지날 때

물의 높이는 11 feet에 불과했지만


좁은데다

내리막 길인

Lower를 지날 때에는

30ft(약 9m)의 높이로 불어나 있었다. 


잠시 뒤, 그들은 

갈색 초컬릿 색의 거대한 홍수가

쓰나미처럼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공포에 질린 그들이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성난 파도같은 홍수는 그들을 삼켜 버렸고,


그 홍수는

그들 모두를 사정없이 

캐년의 벽에 내동댕이 친 다음

파웰 호수(Lake Powell)로 토해 내었다. 


이 사건이

그들에게 비극이었던 이유는

그들은 이미 앤털롭 캐년의 구경을 마치고 가다가


그들 가운데 6명이 

다시금 Eagle of the Eye 까지 가서

그들의 남아있던 필름으로 촬영하기를 원했다는데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남아있던 필름을 사용하기 위해

다시 캐년 안으로 들어가던 중 이 비극을 만난 것이다.


Eagle of the Eye ...


지금은

캐년 아래쪽에서 

위로 한 번 올라오면

더 이상 왔던 길로 돌아갈 수 없지만


2014년까지만 해도

Lower에도 셀프 포토 투어가 있어서

엔털롭 캐년 안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때였다.  


앤털롭 캐년에서

11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건 소식을 들은 신문과 방송사의 헬기가 도착했다.


이 홍수로 인해

프랑스에서 온 Paul과 

Anita Lohr 부부도 목숨을 잃었다.  


부모의 비극을 알지 못한 채

호텔에 남아있던 10살과 12살된 딸이 

영문을 몰라 울먹이는 안타까운 장면이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었고,


또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희생자의 절반이 넘는 7명이 

프랑스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프랑스의 모든 매스컴에서 이 사건은 대서 특필되었다.


게다가

영국과 스웨덴에서도

희생자가 각각 1명씩 발생하자

이 사건은 전 유럽의 최대 뉴스가 되었다.


사고 경위와

사체를 찾는 과정과

사체 수습과정에서 앤털롭 캐년은 

한동안 전 유럽의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2명의 희생자가 있었기에

미국의 전국구 신문과 메인 방송 뿐만 아니라

소규모의 매스컴들도 날마다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금까지 전 유럽과 

미국의 모든 방송과 신문이


월드컵이나 올림픽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제외하곤

이처럼 떠들썩하게 취재한 적은 드물었다. 


사건 이틀 뒤엔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신문, 방송사의 헬기들로 인하여


주변 일대는 

대혼잡이 발생하여

항공을 통제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더불어 앤털롭 캐년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곳인지

전 유럽과 미국 전역에 순식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사건 이후에

앤털롭 캐년을 찾는 방문자는 급증하였고,

지금도 이곳을 방문하는 상당수는 유럽 사람들이다.


희생자 가족의 한 사람은

앤털롭 캐년을 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곳을 싫어한다고.”


이곳이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희생자들은 이곳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었을테지만.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가이드 Quintana는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올해로 26년째가 된다.

그동안 앤털롭 캐년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 번 포스팅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앤털롭 캐년은

이제 세계적인 명승지가 되어

한해에 수십 만명이 찾는 page의 명소가 되었다.


Lower 입구에는

그날에 희생당한 사람의 

국적과 명단이 기록된 기념비가 서 있고,


오늘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날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앤털롭 캐년의 아름다움에 충격을 받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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