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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May 31. 2021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자유로운 영혼이 공무원이 됐을 때 생기는 일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꾸준히 좀 4차원(?)적인 면모를 인정받고 살아왔다. MBTI 성격검사를 해봤을 때 ENFP형으로 이 유형은 아주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간단하게 테두리 안에 갇혀 있는 걸 싫어하며 자유분방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이들은 매우 활동적이면서 상상력과 열정으로 무언가를 해도 혁신적인 결과를 나타낸다. 하지만 한 군데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성향도 강하다. 본인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해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덤비는 성향이 있다.  정해진 규칙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MBTI 검사 결과가 실제로 내 성격과 100프로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나는 98프로 정도  맞는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시냇가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하고 싶어 버려진 책상을 주워 시냇가 옆에 나만의 공부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중학교 때 갑자기 연극을 제작해보고 싶어서 연극반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실제로 무대 배경 등등 재료를 사서 제작도 했다. 심지어 나는 작고 가볍다는 이유로 들것에 실린 시체 연기도 했다.


중 3 때는 대부분 친구들이 중학교 옆 고등학교로 갔지만 나는 기숙사에 살고 싶어서 갑자기 연고도 없는 지역의, 고속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고등학교에 시험을 치러갔다. 이후 나의 자유로운 영혼은 늘 예측불허의 결과를 내놓았다. 대학교 입학식에서 학교 소개 책을 보는 데 총장 직속 기관으로 학보사(대학 신문사)가 있는 게 신기해서 학보사에 들어가서 기자가 됐다. 뭔가 높은 총장님 직속기관이라니 그곳이 궁금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총장님과 사이가 안 좋았었다.


그렇게 4년간 기자 활동을 하고 졸업 후 월급쟁이 기자가 됐었다. 물론 기자를 그만둔 것도 짧은 순간의 판단이었다.


당시 남자 친구던 지금의 남편은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선택할 수 있느냐'며 항상 놀라워하며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결혼 후엔  '대책 없는 사람 + 신중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가 급변했다.   ㅎㅎ


나는 계획하지 않았었다. 그 순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왔다. 대학시절에 만난 남편이 일찍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난 저 답답한 공무원을 왜 하고 싶어 하는지 의아해했다. 난 계속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이일 저일을 하며 열심히 밥벌이를 했다.


결혼으로 다시 내가 살던 곳에서 고속버스로 5시간 떨어지는 곳으로 이사해야 했지만 상관없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사는 게 멋진 일 같았다. 모든 게 즉흥적이었고 순간적이었지만 후퇴하는 느낌 없이 살아왔다. 물론 앞선 나의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공무원 공부도 즉흥적이었고 합격도 뜬금없이 이뤄진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 공무원을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되는 걸까.


결과적으로 생보단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계획은 안 한다. 그냥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일 뿐이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맞고 있다 보면 청룡열차 탄 기분도 든다. 하루가 밀도감 있게 빡빡하다. 신기하다. 어쩜 이렇게도 구멍이 없이 하루하루가 꽉 차였는지.


루살이처럼 하루가 내 생의 전부처럼 도전하고 부딪히고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빨리 잊는다. 다시 오늘이다. 내일은 생각 안 한다.


공무원이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같은 일을 무한 반복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었다. 언뜻 멀리서 보면 그렇지만 직접 일을 해보니 하나하나가 다 개별적이고 개성이 있다. 서류도 민원인도 조직의 공기도 다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띠고 있다.


이런 말을 동기에게 했더니 나보고 4차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은근 4차원이라는 말을 듣는 이들이 공직생활이 안 맞을 거라고 섣불리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4차원의 영혼을 가진 나에겐 이곳은 나의 들썩거리는 마음과 도전의식을 불태워 볼만한  '블루오션'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ㅎㅎ

내 공무원증 짝꿍은 누룽지 간식이다. 항상 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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