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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Dec 12. 2021

'선생님'이라고 말한 거 사과하세요

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니 8년간 콜센터에서 겪은 여러 가지 유형의 진상(?) 선생님들이 머리를 스쳤다. 이들은 처음엔 악성민원이었으나 어느 순간 '특별민원'이라고 명칭이 바뀌었다.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바꾼 듯한데 상담원 입장에선 달라질 건 없었다.


일단 '특별민원'에게 전화가 오면 빨간색 경고등이 요란하게 번쩍번쩍했다. 그리고 그동안 그 '특별민원'을 받았던 이전의 상담사들이 그들이 '특별민원'이 된 이유에 대해 상세히 적은 창도 컴퓨터 화면에 뜬다. 하지만 이것을 자세히 읽을 시간은 없다. 이들은 '특별'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게 받으면 바로 '특별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요란한 경고등과 함께 뜬 카드에 '남편과 본인의 엄마가 도모해서 농약을 먹이려고 했고'까지 읽었는데 본능적으로 '전화받기'버튼을 눌러서 연결된 '특별민원'이 있었다.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여성분이셨다. 그리고 곧바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참고로 나는 해당부서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거나 신고절차를 안내하는 상담원이었다.

"제 남편이 우리 엄마랑 절 속여서 저에게 농약을 먹이려고 했어요."

"네, 선생님"(콜센터 근무 시 민원인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음)이라고 나는 말했다. '아 그 뒤를 더 읽었어야 했는데 이런 '이라고 생각했다.

"저한테 왜 선생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나 놀려요? 남편이랑 엄마가 나에게 이상한 말을 하고 속이려고 하는데 방법을 알려주세요. 이 사람들 문제가 있어 보여요"


나중에 전화를 끊은 후 마저 '특별민원'이 된 이유를 적은 카드 창을 다시 열어봤다.


카드엔 '~~ 농약을 먹이려고 한다고 주장, 절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하지 말 것, 계속 횡설수설 반복함.'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저 '특별민원'과 제대로 상담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팀장님에게 전달됐고 팀장님도 한참을 그 '특별민원'과 통화 한 이후 전화를 종료했다.


팀장님은 민원인분이 상담사가 본인이 '선생님'이 아닌데 '선생님'이라고 한 것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팀장님이 사과를 드렸고 나중에 그 직원을 크게 혼낸다고 했더니 '그분'이 화를 풀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좀 쉬세요"라고 하셨다.  


그때도 아리송했다. 저 특별민원의 논리가.

지금 다시 적어보니 더더욱 아리송하다. 어째서 농약에서 시작해서, 선생님, 그리고 '사과'로 끝난단 말인가?



콜센터 이야기가 생각난 김에 나를 힘들게 했던 '특별민원' 유형을 정리해봤다.

 

첫 번째 '특별민원'은 욕+성희롱을 세트로 겸비하신 분들이셨다.

"뭘 도와드릴까요"

"야! 거기 나이 좀 든 남자 바꿔! 씨 xxx 빨리 안 바꿔"

"개xx들이 이런 정책을 만들어서 우리 힘들게 해,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봐

내가 이해 못 하면 너네 다 칼로 쑤셔버려 미xx들아"

"아가씨 거기 어디야? 거기는 여행하기에 좋은 데 어디야"


무섭기도 한 이런 분들은 차라리 쉬웠다. 명확하고 깔끔하게 욕을 했기 때문에 악성민원 관리 지침대로 전화를 끊을 수가 있었다.


두 번째 유형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치의 인내력을 요구하는 분들이었다. '도'를 닦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가슴이 답답해왔다. 소위 멘탈이 탈탈 털린다는 말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었다.


그건 질문형이었다. 엥 이게 뭐가 진상이냐고?

핵심은 '같은' 질문을 30분 이상 반복한다는 것이다.

-"뭘 도와드릴까요"

"그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아 네 그건 그렇고 그렇게 해서 된 겁니다."

" 아 이해했고요.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거냐고요?'

-"아 네 그건 그렇고 그렇게 해서 된 겁니다."

" 아 이해했고요.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거냐고요?'


그렇다. 이런 전화는 끊을 수 없다. 차라리 욕을 해주기를 바라지만 이런 분들은 안다. 욕을 하면 끊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욕을 절대로 안 한다.


세 번째 '특별한 분'들은  잘난 체하면서 남을 무시하고 싶은 유형이다.

-"뭘 도와드릴까요"

"내가 그건 알고 저거에 대해서 알아요?"

-"아 네 저거는 이렇게 이렇게입니다."

"내가 그거 몰라서 지금 전화한 거냐고?? 내가 이거 저거 다 안다니까 지금 나 무시해? 그러니까 저거 아냐고?"

-"아 네, 저거는 이렇게 저렇게라고 말씀드렸는데요."

" 거기 앉아서 뭐해? 지금 내가 저거 안다고 했잖아"


그리고 마지막 특별한 유형이 내가 처음에 소개한 일화의 주인공 같은 분들이시다.

콜센터에서 하는 일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용들을 들이대며 해결책을 알려달라는 분들이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해당 상담사의 '사과'를 원한다. 그리고 누구든 '사과'를 해야 전화는 종료된다.



출처:pixabay.com

2018년 4월 17일, 산업안전보건법상 감정 노동 관련 사업주 의무사항이 신설됐다. 이어 감정노동자 대표 직군인 콜센터 상담원 보호 매뉴얼도 만들어졌다. 그래서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 산업안전 보건법 제정에 따라 상담원에게 폭언, 욕설 시 상담이 중단되며 고발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멘트가 도입됐던 초창기 '특별민원'들은 이 '멘트가 듣기 싫다''며 전화연결을 늦게 만든다'며 '본인 통화비가 올라간다'며 등등의 이유를 대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훈계 연설을 하신 분들도 많았다. 지금은 최소한 이 안내멘트에 대해선 이 분들도 수긍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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