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겸직허가 신청에 대하여 붙임과 같이 겸직이 허가되었으니, 겸직활동 시기 준수 및 겸직 내용 변경 시 변경사항 보고 등 유의사항을 준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김주무관의 겸직허가 통보서 일부 발췌
0000처의 블로그 운영 담당자분께서 나의 브런치에 기타 제안을 해주시면서 이 모든 것은 시작됐다. 최초로 글쓰기 의뢰를 받은 것이다. 신기했고 믿기지가 않았다.
'여러 명의 브런치 작가에게 제안을 한 후, 이들이 제출한 글을 본 후,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다. 대단한 브런치 작가님들에 비하면 한없이 글쓰기 끈이 짧은 나는 이런 흐름의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쩌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광고성 메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메일에 남겨진 담당자 폰번호를 메모지에 적어 사무실에서 몰래 나갔다. 계단을 통해 옥상에 올라가 아무도 없는지 구석구석을 확인한 후에야 핸드폰에 담당자 번호를 조심히 눌러봤다.
"메일 받은 00 센터 김00주무관입니다. 저에게 그러니까 제가 글을 써서 올리는 건가요?"
앞뒤가 안 맞는 몇 줄의 문장을 건네자, "0000처 블로그 담당하는 000입니다. 네 작가님의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이 저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방향이 같아서 글을 의뢰한 것입니다."
내용이 빈약한 질문에 찰떡같은 답을 주셨다.
"아, 넵 써 보겠습니다. " 뇌가 판단하기 전에 입이 먼저 말을 했다.
"네 작가님, 일정과 원고료 관련 내용 등은 작가님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참고하세요. 그리고 겸직허가 신청 관련해서도 자료 넣어드릴 테니 공문 필요하시면 말씀하시고요."
이번에도 콩떡 같은 답변을 한 김주무관에게 담당자분은 꿀떡 같은 안내를 해주셨다.
프로젝트는 현직 공무원의 공직생활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쓰는 것이었다. 3개월 동안 3편의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쓰기를 좋아한 나는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원고료가 있었다. 이게 문제였다. 추가 소득이기에 겸직허가를 받아야 했다. 겸직허가 지침을 보면
공무원 겸직의 경우, 계속적으로 재산상의 이득을 취하는 행위가 아닌 창작활동(일회성 수익)의 경우 겸직의 기준에 들어가지 않아 허용되나, 기관장마다의 재량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소속기관 내부 규정 확인 후 사전에 기관장의 허가를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되어있다.
고민이 되면 담당자에게 물어야 한다. 바로 우리 지청 고용관리과 공무원 복무 담당 주무관님에게 '3개월 글쓰기 프로젝트'에 대해 겸직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문의했다. 담당 주무관님은 '이런 경우가 없어서 팀장이나 상위 00청에 문의를 해보고 알려준다'라고 하셨다.
'아 간단한 게 아니었구나' 순간 내가 왜 그렇게 쉽게 '글을 쓴다'라고 말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하루 지나서 우리 지청 고용관리과 담당 주무관님이 답을 주셨다. 우리 지청을 관할하는 상위 00청에 문의하니 '일회성이라도 겸직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겸직허가 신청서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해당 0000처의 겸직허가에 필요한 공문을 요청하라고 했다.
나의 겸직허가 신청서는 우리 지청 관리과로 보내면 다시 상위 00청 관리과에 보내지고 상위 00청에서는 이 신청서와 0000처의 업무 요청 공문을 받은 후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그 통보문은 다시 우리 지청으로 보내지고 담당 주무관님이 나에게 통보를 하면 완료가 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 모든 것이 열흘 안에 끝났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글을 올릴 수가 있었다.
고맙게도 우리 지청과 상위 청 담당자분들이 프로젝트 일정대로 글이 게재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처리해드리겠다며 도와주신 덕분이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겸직허가를 받는 시간이 더 걸렸다. 절차도 복잡했다. 올초 발령을 받고 고용센터에서 배운 첫 번째는 온나라 문서대장에 문서를 접수하는 방법이었다. 가르쳐주신 분은 "공무원은 서류에서 시작해서 서류에서 끝납니다."라고 하셨다.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는 김주무관과 묶여있고 김주무관은 서류와 절차에 묶여있다.
이제 3개월의 프로젝트와 3개월간 허락된 겸직허가는 끝이 났다. 또다시 글을 써서 돈을 벌면 겸직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젠 뇌가 판단하기 전에 입이 먼저 말을 하는 경우를 줄여야 하는데, 충동적 성향의 김주무관이 그걸 잘 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긴 하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