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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ul 25. 2021

9급 서기보의 첫 인사이동 후 업무분장 목격기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김 주무관의 지극히 개인적인 수기입니다.>


7월 나름 소규모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먼저 4급 5급 이상의  인사이동이 시작됐었고 이후 6급 이하 주무관들의 대이동이 이어졌다.

우리 팀도 세명의 공무원이 지청이나 타 고용센터로 발령 나고 곧 3명의 계약직 선생님들이 떠나신다. 하지만 보충은 2명의 공무원이 전부였다.  


9급 서기보에게 참으로 이 사실은  중요한 대목이었다. 곧  태풍 같은 업무 분장이 다시 이뤄질 것이다. 그것은 즉 일을 더 시키려는 자(윗사람)와 일을 덜하고 싶은 자(아랫사람)의 한판 대결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용센터의 국민취업지원팀이나 실업급여팀 또는 민간위탁관리팀의 동기들은 올해 2월 발령 이후 한 번도 업무가 바뀐 적이 없다. 하지만 기업지원팀은 특성상 지원금 종류가 엄청 많고 시기별 몰리는 지원금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팀장님이 한 사람에게만 일이 몰리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쓰신다. 그렇기 때문에 고로 신규인 나는 자주 일이 바뀐다.


기업지원팀도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여하튼 우리 팀장님 일 스타일은 그러신 듯하다. 사무실 내 모든 사람의 노동의 양은 동일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이 있으신 것 같다. 물어본 적은 없지만 결과만 봤을 때, 감히 합리적 추론을 해본다.


우리 팀 내 7급 주무관님들이 7월 초부터 먼저 본인들이 하고 싶은 업무나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업무 등을 추천하는 모습들이 자주 목격됐다.  이에 6개월 차 9급 조무래기인 나와 1년 차 된 지역인재 7급 K주무관과 4개월 차 한시임기제 P주무관은 거의 2주일 동안 밥을 먹다가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화장실에서도, 심지어는 하루 날을 잡아 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업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심도 있게 토론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플랜 A, 플랜 B, 플랜 C, 플랜 D 등등 끝없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업무분장의 탑을 쌓았다.


우리의 관건은 이번에 본인의 연고지로 발령을 받은 J주무관님과 P주무관님이 맡고 있던 핵심 지역의 사업장들이 누구에게 가는 가였고 우리 팀에서 3년간 근무한 C주무관이 하던 서무는 누구에게 가는 것이며 과연 돈을 지급하는 팀에선 3년 넘으면 칼같이 다른 팀을 가는 게 맞는지도 궁금하고 그 중심에 서 있는 3년 넘으신 H주무관님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리고 그분의 업무는 누가 하는가? 등 토론 주제는 넘쳐났고 2주를 매일매일 해도 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항상 각자의 자리에서 귀를 쫑긋하게 세우며 쏘머즈(옛날 영화인데, 아 설명 길어지네 그냥 지금 보이스 4의 이하나 역할 생각하시면 됨) 같은 숨겨진 능력들을 이번 기회에 극대화하여 정보들을 모아갔다. 최대한 틈나는 대로 조각 정보들을 모아서 군더더기들을 떼어버리니 업무 분장 일주일 전 플랜 A, 플랜 B만 남았다.


업무 분장 3일 전, 우리는 떨고 있었다. 최소한 인수인계를 생각하면 일주일 전 정도가 상식적이지만 이곳은 뭐, 흠, 다른 세계니깐, 3일 전에는 얘기를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플랜 A와 플랜 B,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지만 3일 전에도 뭔가 팀장님과 선배님들이 조용히 얘기를 나누는 모습들은 포착됐지만 발표는 없었다.


업무 분장 2일 전, 아무 말이 없이 지나갔다. 사무실엔 서류를 뽑는 프린터만  곡소리를 내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올 초 줌 연수할 때 선배와의 대화에서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인수인계는 잘 되나요?"

그 가르마 파마를 하시고 굉장히 유쾌했던 7급 선배 주무관님이 말씀하셨다.

"그런 건 없어요. 없다고 생각하시면 편해요." 아주 짧게 말씀하시고 역시나 유쾌하게 웃으시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업무 분장 1일 전, 금요일이었다.  아침에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들어갔지만 사무실은 익숙한 정적으로 우리를 반겨줄 뿐이었다. '엥 설마 다음 주 월요일에 바뀐 업무를 하는데  다음 주 월요일에 알려주나?' 전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떠나버리게 되면 정말이지 남겨진 '파일'로 '글'로 인수인계를 할 상황이었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느꼈지만 고용노동부 신규 9급 공무원 연수에선 항상 선배와의 대화의 시간이 있다. 선배의 말을 잘 들으라. 모두 진실이니깐.


나도 K주무관도 P주무관도 이제 플랜 A 뭐시기든, 플랜 B 뭐시기든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업무를 하던 제대로 된 인수인계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려운 사업장이 많은 지역만 피하기를 그 하나만 빌면서 자리를 지키고 지키고 지키다 결국 지쳐서 화장실에 갔다. 나는.


오전 11시 넘어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K 주문관에게 잠시 들러 "오늘도 이렇게 업무 분장 발표 없이 우린 월요일에 새 업무를 날벼락처럼 맞는 건가?" 소곤대듯 말을 건넸다.


K주무관이 말했다.

"샘 업무분장 나왔어요, 샘 업무 보니깐 좀 직격탄 맞았는데요. ㅎㅎ"

내가 말했다.

"언제 나온 거야? 그리고 내 업무가 뭔데?"


그렇게 처음 맞이한 인사이동 이후 업무분장은 화장실 간 사이 메일로 서면 통보됐다.


나는 원래 고용안정, 고용유지 업무를 하다가 한 달 반 만에 모성보호 업무로 바었다. 그리고 이번에 또 세 달 만에 고용안정 + 모성보호 업무를 하게 됐다. 양쪽 파트를 하게 된 것이다.

이건 플랜 A, 플랜 B, 플랜 C. 플랜 D에도 없었다. 저 높은 팀장님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헤아리기엔 우린 한없이 부족한 말단 조무래기였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벼락을 동반하는 천둥번개 같은 팀장님의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뒤통수인지 옆통수인지 등짝인지 어딘가를 맞은 것 같은데 어디 맞았는지 알 수 없어 헤매고 있을 때 발과 손이 빠른 옆 주무관님은 벌써 업무 분장에 항의하러 가신 것이었다.


옆 주무관님도 나름 이유가 있었지만 팀장님도 이유가 있는 것이고  6개월 차 신규가 보기엔 뭐가 뭔지 몰라 내용도 적지를 못하겠다. 심은 발령 이후 처음으로 산이 갈라지는 것 같은 팀장님의 호령 소리를 들어봤다는 것이다.   청룡열차를 탄 이후 심장의 벌렁거림이 오래가는 것처럼 나도 심장을 안정화시키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처음으로 인사이동 후 업무분장이 이뤄지는 전 과정을 목격한 9급 서기보는 이거 하나는 정확히 알게 되었다.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결국 모든 것이 그렇듯 중요한 건 서면 통보되니 메일을 잘 확인하면 되는 것이고, 나는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여름엔 시원한 달고라 라테 한잔 마시면서 서류의 산을 올라가면 되는 것이었다.

공부 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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