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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ul 16. 2021

9급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어디로 갔을까?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문제는 착신전환에서 시작됐다.



우리 사무실 전화는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을 경우, 통화 중일 경우, 담당자에게 오는 전화들을 무조건 옆자리 주무관들이 받도록 착신전환을 해 놓았다. 대부분은 비슷한 업무들을 한 사람들끼리 착신전환을 해 놓는다. 그래야만 민원인이 묻는 업무에 대해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간단한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고용안정장려금 업무를 하다가 모성보호 업무 쪽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팀은 같아도 업무가 상당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꼬인 착신전환으로 인해 나는 고용안정부터 모성 업무 등 5명의 주무관님들의 전화를 대신 받아야 했다.


그중 L 주무관님은 10시 출근, 4시 퇴근하시고 자녀가 어려서 휴가도 잦았다. C주무관님은 8시 20분 출근,  4시 20분에 퇴근하시는 시간선택제 주무관님이셨고 또 다른 B주무관님은 8시 20분 출근, 5시 20에 퇴근하시는 유연근무를 하시는 주무관님이셨다.


저 담당자들이 없는 시간대는 '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주무관님들의 담당 사업장 민원인들의 내용을 메모하느라 바빴고 저분들이 왜 없냐는 등 저 사람들만 내 업무를 처리하냐는 등 이런저런 식의 태클들도 방어해야 했다. 심지어 내 업무 관련 민원인들 전화는 받을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를 몰라서, 그다음부턴 어떤 상황인지 대충 파악은 했지만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콜센터도 아닌데 매일 '전화들과 한판 씨름'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저 주무관님들이 출근 중일 때도 통화 중이면 나에게 전화가 넘어오기 때문에 어쩌면 하루 종일 '전화 전쟁'이었다.


결국 며칠 전, 저 중 한 명의 주무관님이 연속 휴가를 가면서 계속 연결이 안 된 그 주무관님의 화난 민원인들에 의해 나는 처참하게 KO 당했다. 티끌이 쌓이면 태산이 되듯 이렇게 3개월 쌓인 '착신전환' 태산에 산사태가 났고,  나를 쳤고,  온갖 살림들은 다 떠내려가고 몸만 겨우 살아남은 나는 결심을 했다. 

'이젠 말할 때가 됐다.' 


일단 서브 팀장 격인 D주무관님에게 이 사태를 천천히 정리해서 말씀드렸다. D주무관님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셨다. 그리고 내놓은 결론은 계약직 선생님께 가장 착신이 많은 주무관님 전화를 맡게 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엔 그건 기간제 선생님이 해보신 일도 아니고 상담이 불가능해 오히려 민원을 유발할 것 같았다. 이런 문제를 말씀드리자 D주무관님이 이 문제가 상당히 애매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라며 직접 해당 주무관과 대화를 하면서 해결을 해보라는 미션을 주셨다.


나는, 그래도 3개월 넘게 오다가다 대화를 나눈 얄팍한 친 기대고,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용기에 기대어 가장 착신전환이 많은 담당 주무관님을 찾아갔다. 이런저런 상황 설명하고 '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임을 알려드리고 다른 착신 전환할 대체자를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사실 그분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지만 몰빵(?)할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있었다고 하셨다. 속으로 나는 '역시 생각했던 대로 내가 몰빵 당한 사람이었'라고 생각하니 씁쓸했다.


결국 팀실질적 권한들을 많이 가지고 계신 서무님께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서무님도 듣더니 깜짝 놀라시며 그런 줄 몰랐다 하셨다.

속으로 나는 말했다. '말하길 잘했어. 정말 잘했어'


그래서 우리가 말했다.

"그럼 이 착신전환은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요? 이제부터"라고 했더니 서무님이 쿨하게 답하셨다.

"팀장님 번호로 착신전환 설정해 놓으세요"

옆에 팀장님이 계셨다.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P.S: 나중에 안 사실인데 D 주무관님이 이미 이 문제를 팀장님에게 말씀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넘겨야 하는 것이라 답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고 한다.  결국 버티다 버티지 못한 신규의 '힘들다'라는 외침에 팀장님이 흑기사가 되기로 한 듯하다.)


석 달 넘게 나를 괴롭혔던 모든 '착신전환'들은 끝이 났다.


가장 많은 착신전환을 하신 주무관님은 팀장님 번호로 착신을 설정했고  나머지 두 주무관님들도 내가 직접 가서 호소를 하니 생각 외로 쉽게 착신번호를 다른 번호로 설정하셨다.  다들 그렇게 많이 착신 전환되어 있는 줄 몰랐다며 미안해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현재 예전에 비해 전화 인입 건수가 90%가 줄었다.  제 9시부터 6시 사이에 '내 일'을 편하게 맘 놓고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말 안 해도 미리 해결해주면, 또는 한마디 하면 바로 해결을 해주면 좋겠지만 일이 많아 서로에게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은 우리 조직 특성상 그런 걸 기대해선 안된다. 괜스레 상처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들다'라고 말을 하니 다들 하던 일 멈추시고 방법도 알려주시고 얘기도 들어주셔서 나름 조금은 놀랐다.

래, 힘들면 말을 하면 된다.


그렇게 9급 서기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팀장님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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