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차 공무원 생활, 다른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쉬운 업무를 맡았으면 좋겠다. 나는 저 힘든 업무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쌓이기 시작했다.
모두가 저런 생각을 하니깐 나도 그래야 하는 것처럼 같은 생각을 쫓아가는 모습이 낯설다. 그냥 좋아서 그 일이 쉽든 힘들든 상관없이 마구마구 좋아서 뛰어다니던 그날들이 그립다.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내내, 학교 신문을 열심히 만들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내 청춘을 이곳에 다 쏟았고 부었고 바쳤다. (ㅎ)
학보사 기자였던 나는 아침 8시에 있는 아이템 회의를 가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언니와 같이 살던 반지하집은 서울의 서쪽 끝에 있었고 학교는 서울의 동쪽 끝에 있었다. 새벽 첫 차 1호선 지하철을 타고 20분 정도 달리다가 2호선으로 갈아타서 또 거의 한 시간을 달려가다가 7호선을 갈아탄 후 10분 정도 달려가면 학교 정문을 볼 수 있었다.
좀 더 짧은 이동 시간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었다. 먼저 버스를 타고 중간에 2호선, 다시 5호선으로 달리다가 마지막은 버스로도 가보고 또 한 번은 일단 1호선으로 가본 다음 거의 끝무렵에 2호선 그리고 버스로도 가보기도 했다. 한 번은 오기가 나서 그냥 1호선으로 끝까지 타고 올라가다가 3호선,5호선을 이용해 보기도 했지만 총 이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냥 처음 방법이 가장 빨랐다.
포기하지 않고 나는 전략을 짰다. 서울의 지렁이처럼 얽혀있는 무수한 지하철과 끝을 알 수 없는 색색의 버스들을 보면서 '잘만 활용하면 1시간 내에 집에서 학교를 도착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곳은 열정만 있는 스무 살 김주무관에게 친절한 도시는 아니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집에서 학교까지의 이동 시간을 줄이고 싶어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철학적인데 그땐 단순했다.
"그 학보사 회의실이 너무너무 말도 안 되게 좋았다."
말도 안 되게 좋아서 빨리 보고 싶었고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었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그냥 있어도 뜬금없이 감동했고 이유 없는 행복감에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따뜻해서 좋았고, 추워서 좋았고, 지저분해서 좋았고, 숱한 인쇄물들의 잉크 냄새가 좋았고, 선배들의 그냥 하던 '요즘 너는 고민이 뭐냐' 같은 질문에도 심장이 요동쳤다.
학교 정문을 5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학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낡은 회색 벽돌 3층 건물이 보인다. 담쟁이덩굴이 둘러싸고 있는 으스스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짙은 회색 계단이 보인다. 그 계단으로 올라가다 보면 3층 긴 통로에 빽빽이 각종 나무 현판들이 걸려있고 그 옆 회색 철문들이 보인다.
학교 신문사, 영자신문사, 학교 잡지, 학교 방송국 등 학내 언론사들이 한 곳에 다 모여 있었다. 어두운 통로 끝 oo대 학보사라는 나무 현판이 걸린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빛이 눈에 한꺼번에 쏟아져서 눈을 한번 감게 된다. 기자실 한쪽 벽면에 큰 창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창으로 들어온 햇볕에 자판기를 두드리며 기사를 쓰고 있는 학생 기자들이 보인다. 각종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온 자료들이 다른 쪽 벽에 가득 쌓여있다.
넓은 기자실을 지나면 안 쪽에 또 다른 회색 철문이 보인다. 그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회의실이 보인다. 열명 정도 앉아서 회의할 수 있는 공간에 커다란 사각형 책상과 주인 없이 돌아가는 회전의자들이 공간 부족으로 엉켜있다. 그곳도 반대쪽 벽에 큰 창들이 있어서 뜨거운 해가 마구 밀려들어왔다. 그래서 누군가가 한쪽 창에 커다란 흰색 종이를 붙여놓기도 했지만 철철 쏟아지는 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회의실에서 우린 신문의 시작과 끝에 대한 모든 회의를 했다. 신문을 만들기 전 부서 아이템 회의, 전체 기자들 아이템 회의, 중간 기사 보고 회의, 편집회의, 최종 완성 본 기사 검토회의, 신문이 발행된 후 평가회의 등등. 우리는 시간에 개의치 않고 회의를 했다.
한번 시작된 회의는 끝이 날 때까지 이어졌다. 중간에 배가 고프면 학생식당 가서 밥을 먹고 다시 와서 회의를 했고, 밤이면 컵라면을 먹기도 했고,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면 첫 차를 타고 각자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돌아와 회의를 했다.
가끔 원고가 잘 안 써질 땐 회의실에 들어갔다. 회의실 창문 사이로 삐져 들어온 초록색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을 보고 있노라면 끊겼던 글 흐름들이 폭포수처럼 뚫리기도 했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나무향, 꽃향을 맡으며 원고를 쓰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잠 한숨 못 자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가든, 수업을 들으러 가든 회의실에서 글을 쓰는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다.
누가 재촉을 했는가? 이걸 하면 승진을 하는 건가? 이렇게 하면 보너스를 받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좋아서 그랬다.
오늘 나는 저 날들의 나를 오랜만에 기억해본다. 저 마음을 훔쳐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