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들이 둘 있다. 주변에서 "딸 하나는 있어야 엄마가 좋은데"라는 말을 10년간 들어왔다. 나는 이 말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딸만 넷인 집에서 셋째 딸이었는데 나의 소원은 '다시 태어나면 꼭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였다. 집안에 남자가 없으면 세상 살면서 이런저런 서러움을 겪는다. 그래서 난 꼭 '아들만 낳자'가 목표였다. 일단 목표 달성은 됐는데 중요한 건 그 아들들이 참으로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할 일이 많았다.
육식주의자의 시작
자잘하게 다른 건 제쳐두고 가장 핵심은 먹는 스타일이 아주 천지 차이라는 것이다.
한 명은 육식주의자이고 다른 한 명은 채식주의자이다. 내 기억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7살 이후로 뚜렷해진 것 같다. 육식주의자 아들은 과일은 아예 먹지 않는다. 오로지 모든 육고기만을 섭취할 뿐 다행인 것은 육고기에 곁들인 파무침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파'라도 먹으니 얼마나 천만다행인가'였다. 처음엔 억지로 채소를, 과일을 먹여보려고 노력했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아들은 금세 알아차렸다. 예민한 혀는 채소와 과일의 미묘한 맛들을 아들의 입 속에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냥 과일에서 신맛만 나서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딸기, 수박, 배, 사과, 망고, 체리, 포도 어떤 과일에서도 똑같은 맛이 난다고 했다. 우리로서는 먹기 싫어서 저러는 것 같다고 치부해버렸지만 나중엔 남편과 나도 '저 말이 진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심각해졌다.
육식주의자 아들은 어느 날 수업시간에 과일의 영양소를 배우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내린 아들의 결론은 비타민 c를 먹겠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그걸로 만족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들이 4살 즈음 포도를 정말 좋아해서 한 알 한 알 소중하게 입에 넣어 오물거리는 동영상을 보며 그나마 육식주의자 아들이 과일을 예전에는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채식주의자의 시작
형을 무조건 따라가는 둘째였기에 남편과 나는 적잖게 놀랐다. 육식주의자 아들이 '고기'만을 먹기 시작했을 무렵 채식주의자 아들은 '나물'과 '과일'만 먹었다. '고기'를 먹기 힘들어했다. 그냥 고기에서 느끼한 맛이 난다고만 했다. 나도 간장에 고추장에 고기를 숨겨봤지만 채식주의자 아들의 혀는 '느끼하다'라고 외쳤다.
과일과 나물만 먹는 아들은 또래에 비해 몸무게가 적게 나갈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2학년 때는 1년 내내 같은 몸무게를 유지했다. 이건 학대도 아니고 남편과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졌다.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고 똑딱똑딱 시간만 흘러갔다. 우리는 식은땀이 났다. 형처럼 학교에서 고기의 영양소를 배우게 되면 어떤 결단을 내리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기대해봤다.
채식주의자 아들도 육식주의자 아들이 그랬듯 비슷한 시기 초등학교에서 고기의 영양소를 배웠다. 집에 돌아온 채식주의자 아들도 형처럼 고민에 빠진 게 보였다.
채식주의자 아들이 내린 결론은 '두부'를 먹겠다는 것이었다. '두부'가 '고기'와 같은 영양소를 가졌다며 '두부'와 '콩'의 섭취량을 늘려보겠다고 했다. 우리는 만족하려 했으나 이번엔 만족이 안 됐다. 육식주의자 아들은 그나마 살도 붙고 커간다는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 아들이 아직도 여섯 살때 입었던 내복이 길이만 짧아졌을 뿐 편히 입고 집에서 활보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육식주의자가 다섯 살 때 너무 말라 걱정했고, 채식주의자가 세 살 때 통통해서 형의 어떤 옷을 입혀도 맵시가 나지 않는다며 아쉬워하던 날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남편과 나는 이들이 언제 또 뒤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을 견뎌본다.
육식주의자 아들은 요즘 심각하게 다이어트를 고민 중이다. 친구에게 '태권도를 해볼까?' 했더니 '유산소 운동을 하라'는 조언에 나름 학교 끝나고 아파트 정원을 넓게 두세 바퀴 걷다가 온다고 한다. 가끔은 뛰기도 한다고 한다.
채식주의자 아들은 반전이 있었다. 아주 우연히 육식주의자 형이 먹던 '육회'를 (그 색이 과일처럼 보였는지) 한 젓가락 먹어보더니 처음으로 '고기에서 느끼한 맛이 나지 않고 고소한 맛이 난다' 고 말했다. 여전히 육식주의자 형의 양을 쫓아갈 순 없지만 그나마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남편과 나는 희망의 빛을 보았다.
이들의 동거는 서로는 불편할 게 없겠지만 남편과 나는 이중으로 반찬을 만들어야 하거나 외식을 할 때마다 이 둘의 절충점을 찾아야 하기에 고단하다.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가 더 나이가 들면 부모의 고충을 알아서 어느 정도 입맛을 변화시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