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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an 23. 2022

주무관의 친절을 막는 것은 무엇인가?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아직도 그 목소리가 생생하다.

콜센터에서 일을 했던 나의 직업병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불친절했는데 그게 불친절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뭐에 쫓기는 목소리였다고 할까. 그래서 2년이 지났지만 기억이 난다.


내가 민원인이었을 때 이야기이다.

나는 00 고용센터 모성보호 육아휴직급여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입금된 육아휴직급여가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산정이 잘못된 것 같았다. 당시 근무조건이 약간 특이한 케이스라 주변 동료들도 내가 육아휴직을 들어갔을 때 한 마디씩 해줬다. '고용센터 담당자가 자주 바뀌어서 우리 회사 근무조건에 대한 부분이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육아휴직급여가 초반에 잘못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적게 들어오면 꼭 확인 전화를 하라'고 했다. 역시나 나도 적게 들어왔었다.


조심스럽게  "육아휴직급여가 적게 들어와서요."

그랬더니  그 당시 담당자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사에 연락했더니 그런 내용에 대해 별 말이 없었는데요."(우리 회사 담당자도 바뀐 상황)

그래도 내가 재차 확인을 부탁했더니

" 이전에 누가 그렇게 받았는데요? 이름을 말해보세요"

나는 급하게 생각난 동료의 이름들을 말했다.

담당자는 바로 "알겠습니다."하고 끊었다.


'헉 이건 뭐지?" 내 말을 이해한 것 같은데 뭐랄까 뭐가 많이 생략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지나서 추가 육아휴직급여가 입금됐다는 문자가 왔다. 그게 끝이었다. 문제는 해결됐다. 그리고 잊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00 고용센터  '그 담당자의 자리'에 앉아서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하는 주무관이 됐다.  종종 저런 문의를 하는 민원인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저 때의 내'가 생각이 나서 최대한 들어주고 설명해주려고 한다. 특히 이 업무가 모성 업무라 그런 것 같다. 나도 자녀 두 명으로 육아휴직을  2년간 사용했다.  때문에 고용센터 육아휴직 급여 담당자와 통화할 일이 꽤 있었다. 좀 모두가 급해 보였고 뒤에서 누가 밀어대듯 빠르게 설명을 했다.


모성보호 업무를 하고 한 달 즈음 됐을 때 알게 됐다. 당시 그 담당자(나의 전전전 전임자)는 지금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많은 업무 양을 맡고 있었다는 것을. 그 담당자는 1년을 열심히 하시다 결국 병가를 낸 뒤 다시 복귀를 못하시고 본인 연고지의 고용센터로 가셨다고 한다. 지금 하는 업무도 헉헉 대면서 하고 있는데,  당시 그분의 업무 양을 내가 지금 하고 있었다면 난 아예 전화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민원인들은 전화를 해서 '내 동료는 하루 만에 급여를 받았는데 왜 나만 늦게 주냐' 또는 'dd고용센터는 빨리 처리해주던데 여기 고용센터는 왜 이리 늦냐'라며 꾸짖는다. '처리기한이 원래 14일이다'라는 말을 꺼내면 '그렇게 늦게 주면 한 달 생활을 어떻게 하냐'부터 험한 말까지 나오기에 그냥 언젠가부터는 '최대한 빨리 처리해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마무리한다.

일례로 저번에 처리기한이 14일이라고 하니 국민신문고에 불친절로 올리겠다며 이름을 다시 한번 말하는 민원인도 있었다. (실제로 올리진 않으셨다.)


이 정도 업무에 이 정도 전화 문의들이 있는데 도대체 저 정도의 업무를 할 땐 얼마나 많은 전화 문의들이 있었겠는가. 전화 문의라는 게 절반은 순수한 질문형이고 절반은 화가 난 질문형이다.  

많은 양의 일과 민원인들의 재촉, 그 과정에서 불친절은 당연한 결과물이었다. 누구도 처음 듣는 목소리에 불친절하게 답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때 짧게라도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부끄러워졌다.


어쩌면 빨리 전화를 끊었던 이유는 빨리 일을 처리해주는 게 낫다는 판단으로 그러셨던 것 같다.

일을 해보니 그렇다. 나도 천천히 설명하자, 조금 더 들어주자 해도 민원인들에게는 나의 전임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처음에 고용센터에 '전화했던 날'의 느낌과 내가 처음으로 고용센터에서 '전화를 받았던 날'의 그 마음가짐을 "반드시"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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