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무관의 작별의 편지
40대 늦깎이 공무원의 슬기로운(?) 공직생활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 오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 윤동주 시인의 편지 -
최근 대규모 인사이동이 있었다. 지역을 달리해서 누군가는 떠나시고 누군가는 오셨다. 그런 기간이어서 그런 지 내부 직원 게시판에는 떠나온 센터나 지청의 동료들에게 고마웠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그 글 중에 윤동주의 편지를 서두에 쓰신 어느 주무관님의 글이 마음에 들어왔다. 읽는 내내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3년간 함께 보낸 동료들에게 이런 시의 마음으로 작별할 수 있을까.
난 아직 1년밖에 안 됐는데도 이 시를 읽자마자 벌써 나의 1년이 그리워졌다. 앞으로 더 2년간 이곳에서, 이곳의 사람들과 있다가 헤어질 생각을 하니 감히 벌써 저 시의 한 글자 한 글자가 마음에 새겨지고 눈에 밟힌다.
엑셀 서식에 칸 하나를 추가하는 것도 몰랐던 나는, 아직 이곳에 서 있다.
모든 늦깎이 공무원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특히 서류와 숫자에 서투르고, '안내'는 능했지만 '조사'는 할 줄 몰랐던 나. 1년간 큰 사고(?) 없이 하나하나 일을 처리하도록 도와줬던 나의 모든 사수님들께 큰 절을 올리고 싶다. 아쉽게도 벌써 그 사수님들 중 절반은 팀에 없다.
센터 본관에서 떨어져 나와 뜬금없이 화장품 가게와 치과가 있는 건물 한 층을 빌려 쓰고 있는 기업지원팀을 동기들은 갈라파고스 섬이라 부른다.
이 섬에서 우리는 정말로 '우리끼리' 살았다. 업무가 좀 달라도 우리끼리 도와주려 애썼고, 무슨 일인지 몰라도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동료를 우리끼리 위로했다. 센터 본관 구내식당이 멀어 우리끼리 도시락을 싸와 밥을 먹었고, 우리끼리 커피를 마셨다.
21년 2월 발령을 받고 왔을 때 스무 명 남짓했던 우리 팀은 지금 10명 조금 넘게 남아있다.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앞으로 또 한 분이 계약이 종료되어 가실 날이 예정되어 있다. 특히 이 분과는 같은 시기에 팀에 와서 동고동락한 사이라 이별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벌써부터 마음이 시큰시큰 해지니 말이다.
나이가 들어 '헤어짐'에 둔해져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떻게 보면 예정된 이별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에 구멍이 숭숭 나서 차가운 바람이 휑하니 부는 것을 보니 그렇다.
새로운 발령지로 가는 길에 이전에 함께 했던 동료들이 '반짝반짝' 빛나기를 기원하는 어느 주무관님의 아름다운 작별은 수백 킬로 떨어져 있는 김주무관에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나도 우리 팀 모두에게 이 마음과 이 시를 올려본다.
<사진출처: 블로그 별헤는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