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국가'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공무원이 되기 전에 '국가'라는 단어를 이렇게 많이 사용했었나? 자문을 해봤다. 없다.
연초 22년 새로 시행되는 육아휴직급여 정책 문의로 전화들이 빗발쳤다. 방문 민원인도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 눈처럼 기업지원팀 문을 열고 쏟아졌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관련 가족돌봄비용 사업도 시작됐다.
최소 출산휴가급여나 육아휴직급여는 아이가 있는 근로자들이 문의를 한다. 그러니까 아이가 없는 근로자가 아닌 국민들은 1차 걸러진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가족돌봄비용은 일단 가족이 있으면 다 문의를 한다. 분명 '코로나19'라는 말이 붙어 있지만 '가족돌봄' 단어가 먼저 들어오기 때문에 가족이 아프면 다 문의를 한다.
얼마 전에 아내가 화상을 입어서 돌봄 휴가를 냈다며 비용 지원이 되냐는 문의가 있었다. 궁금할 수 있다. 하지만 몇 백 명이 세 사람에게 한꺼번에 매일매일 묻는다면 이건 좀 생각이 달라진다. 문의를 받는 세 사람은 생각한다. '코로나19 관련 가족돌봄비용'이라고 돼 있는데 라며 마음에 '화'가 쌓이기 시작한다.
'화'를 쌓이게 하는 질문도 있다.
"왜 나는 지원이 안 되냐, 세금도 꼬박꼬박 냈는데"이다.
어쩌면 간단하게 '지침'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콜센터에서 8년을 일하지 않았던가. 민원인들은 사실 안 되는 이유를 알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담당자를 찾는 이유는 진짜 안 되는 거에 대한 최종 확답과 담당자에게 진심 어린 '죄송함'을 듣고 싶어서이다.
그러니까 세금도 잘 내는 국민인 나를 어찌 된 사유로 제외했으니 '국가'는 죄송하라는 것이다. 그걸 공무원이 대신 사과하라는 것 같다.
그걸 알기에
나는 모든 설명을 들은 후에도 민원인이 그 질문을 던지면, 내 마음속 프로세스를 작동시킨다.
민원인도 민원인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나에게 사과를 요구하듯 나도 나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회로를 돌리는 것이다.
첫째, 민원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지금 지원금 지원 대상자가 되지 못해섭섭하고 슬프고 화가 난 감정에 동화돼 본다.
둘째, 이 민원인은 알고 보니 그 어디선가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나'였다.
셋째, 나를 위로하기 위해 최대한 안정감 있고 따뜻한 음성으로 나에게 말을 건네본다.
자, 이제 말을 하면 된다. (처음엔 떨려서 많이 더듬었는데 요즘엔 자주 하다 보니 덜 더듬는다.ㅎ)
<'국가'는 모든 것을 세심하게 보고 있으며 다양한 지원금 사업을 통해 국민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하는 지원금 사업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지원하기 힘듭니다.
그때그때 국민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고 이 지원금은 이런 국민을 위해 저 지원금은 저런 국민을 위해 세부적 지침을 통해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주는 혜택의 방향은 언제나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지원금을 주는 것입니다만 국민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상이 더 좋아져서 선생님도 혜택을 받을 수 있게끔 제도가 다양해지고 지원금대상자에 대한 지침이 완화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한번 정말 국가를 대신해 죄송합니다.>
연설이었다.
시의원을 넘어서 국회의원 정도의 급이 하는 연설문 같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그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
어떤 민원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어떤 민원인들은 지루해하기도 하며, 어떤 민원인들은 내가 왜 질문을 해서 연설을 듣고 있나 싶은 분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민원인들은 다 끝나기도 전에 '알겠다'하고 가버리는 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