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초심자의 자기 고백
그다지 영양가 없는, 그러니까 다음 여행자를 위한 정보제공이나 기 여행자들에게 그곳의 추념을 자극할만한 무언가가 전혀 없을, 지극히 개인적 여행기를 기록하기에 앞서. 나는 공책 한 권 크기의 낡은 창 하나가 겨우 뚫린 좁은 골방의 눅진 벽지 한편, 기름때와 죽은 곰팡이로 얼룩진 거울 앞에 서서 눈물을 글썽이며 생수병을 들고 수상소감을 맹연습하는 무명배우의 그것처럼, 에필로그가 되어야 마땅할 성급한 프롤로그를 미리 한 번 구상해본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써도 수심을 알 수 없는 장광설의 바다가 될 이 선제적인 글은, 그동안 그럴싸한 명분이 없어 여행기록을 줄곧 미루어왔던 나를 표류케 하고 탈진에 이르게 해 결국 익사시킬 것인가, 아니면 부지런히 노를 저어 게으른 자의 발길이 아직 닿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의 섬들에 이르게 할 것인가.
아무튼, 이것은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답하는 과정이 될 것인데, 나는 이 질문을 골라내는 단계에서부터 곤란을 겪게 된다. 아직 답변자에게는 어떠한 대답도 딱 부러지게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질문자가 뻔히 알고 있는 사정 때문이다.
내심 자신과의 질의응답 구상에 골머리를 앓는 와중에 나는, 주말 축구 경기 중계의 마지막에 으레 나오는 시시한 장면들을 떠올려본다.
마이크를 든 인터뷰어가 아니나 다를까 “오늘 경기 어떠셨어요?”라는 흔해 빠진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거의 매 경기 MVP로 선정되어 인터뷰이로 나서야 하는 유명 축구선수들의 대답은 매번 틀에 박힌 이야기여서 특별히 귀담아들을 것이 없다. “성원해주신 팬들께 감사하고, 이번 승리는 동료들과 함께 땀 흘려 이뤄낸 것이고,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경기 준비에 최선을 다할 테니 계속해서 성원을 부탁드린다.” 이것은 이천 년가량 암송된 기도문과 닮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주문들, 주술의 언어들로, 이 계명들을 적절히 잘 섞어서 말하기만 한다면, 선수는 현역생활 중 말실수로 구설수에 오를 일은 없을 것이다. (인터뷰 중에 주뼛거리며 눈알을 굴린다면, ‘리스트에서 뭐 빼먹은 게 없나?’하는 신실한 자기 검열에 들어간 것일 뿐.) 보라,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쑥스러워하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헤죽헤죽 웃는 저 두 번째 선수는 짐작한 대로 이러한 주목이 아직 어색한 신인 선수가 아닌가.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에 노출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노련한 레토릭을 보유하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의 서가에 꽂힌 어마어마한 양의 장서들을 구경한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올 질문이란 지극히 뻔하다.
“이 많은 책들을 다 읽으셨습니까?”
아마도 그 질문에 이골이 났을 에코는, 특유의 냉소와 건들거림으로 몇 가지의 노련한 대답들을 준비해두었다가 상황에 맞게, 또는 질문자에 따라, 아니면 그 날의 기분에 맞춰 하나씩 골라내어 쓰곤 했다. 실제로 에코는 밀라노에 살면서 장서들을 보관하는데 필요한 공간 면적과 그에 따라 발생하는 연간 부동산 비용에 대한 계산까지 끝내 둔 사람이었으므로, 그 서가에 관한 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부분의 질문에 즉시적인 디펜스가 가능한 수준에 올라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석가모니는 이 노련한 질의응답 과정을 통해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까지 올랐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오늘날 전해져 오는 불교 경전에는 부처의 설법과 더불어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여 던진 참된 가르침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보리수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 긴 세월 세상의 이치와 우주의 순리를 고민하고 마음을 비워내었던 부처가, 마침내 제자들로부터 존재론적 질의들이 날아왔을 때, 어 그러니깐, 어디 보자, 그건 말이지 하며 눈알을 굴리고 머리를 긁적이거나 다리를 달달 떨고 말과 말 사이를 늘어뜨리며 더듬더듬 대답을 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는 힘들다. (다만 석가모니는 무익한 14개의 형이상학적 질문에는 답하지 아니하였는데, 이 질문들을 십사무기(十四無記)라고 한다. 질문에 답하지 아니함으로써 답을 하는 궁극의 경지인 것이다!)
우리가 비록 부처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 뻔하지만, 직업적으로 또는 취미 수준으로 반복되는 모든 인간 행위들 중 하나라도 영위하는 것이 있다면, 또는 남들이 아직 하지 않았던 일을 선행하여 질문공세에 시달리게 될 것이 뻔히 점쳐진다면, 미리 그럴싸한 대답 하나쯤 준비를 해두는 것이 순탄한 삶을 위한 처세에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예컨대, 굳이 불교적 우주론에까지 멀리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오늘날 학교 재단에서 녹을 취하는 월급쟁이 선생일지라도, 무릇 교단 위에서 내공이 쌓인 스승이 되고자 한다면 따분해진 학생들로부터 매년 지긋지긋 반복되는 “선생님 첫사랑은 어땠어요?”하는 질문에는 즉각적으로 대응이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씀이다.
만약 극적이고 기가 막힌 대답 하나를 거기서 뽑아낼 수 있다면, 그 대답이 발화자의 이름을 압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고서야) '조지 말로리’라는 이름을 이제 와 누가 기억하겠는가. 그는 1924년 동료 어윈과 함께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던 영국 등산가이다. 그 산행에서 말로리와 어윈은 (과연 최초로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라섰는가 아닌가 하는 논란을 남기고) 안갯속으로 실종되었고, 세월과 함께 그 이름도 세간에서 서서히 잊혀갔다.(그의 시신은 75년 만에 발견되었다.)
다만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말로리의 짧은 대답 한 줄이었다. 왜 에베레스트를 오르려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무심히 대꾸한 “거기 산이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라는 대답은, 에베레스트는커녕 동네 뒷산도 손사래 치는 사람들마저도 모두 알고 있는 선문답이 되어, 여태껏 모험심 강한 인류의 도전정신과 알피니즘에 불을 지피는 경구로 인용되고 있다.
변명을 위한 변명을 이쯤에서 접고, 이 장광설의 끝에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로 돌아와 보자.
나는 몇 차례 여행의 경험이 반복되면서, (여행지가 어디든, 떠나기 전이든 돌아와서든) “거기는 왜 간 거야?”하는 질문을 한 번 이상은 반드시 듣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겉으로는 ‘그 질문만을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네!’하는 티를 결코 내지 않으면서 무심한 얼굴로 (술잔을 손 안에서 슬쩍 굴려주는 제스처가 곁들여지면 더욱 좋겠다), “거기에 있으니까”하고 냉큼 대답을 받아치면 좋겠지만, 이는 이미 백 년 전에 누군가 써먹어버린 바 있는 데다 사실상 나의 진심과는 다른 허위의 말이 되고 말 테니, 나는 매번 허를 찔린 듯 깜짝 놀란 후, 마땅한 대답을 찾아 한참을 더듬더듬 헤매야 한다. 그리고는 고작 “그냥......” 따위의 대답을 테이블 위에 내놓고야 마는 것이다.
나와 같이 소박한 삶에 놓인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무릇,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이고, 수많은 정보를 찾아 잘 정리한 후 일정을 꼼꼼히 계획하여 떠나는 (상당히 한국적인 현상이기도 한), 무게감이 막중한 일일 텐데, 항상 대답이 모호하게 흐리다는 것은 결국 부끄러운 하나의 진술로 귀결된다. 그래, 문맥상 이 시점에서 겸허한 자기 고백이 이어져야 마땅하겠다.
나는 아직, 여행의 경험이 일천하고 전혀 숙련되지 못한 여행 초심자라는 말이다.
“왜 그곳에 가십니까?” 누가 마이크를 들이대고 플래시를 터트리며 이렇게 물어봐주지 않는다 해도, 사실 나는 여행 내내 ‘나는 왜 이 곳에 왔지?’하고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완결된 문장의 대답을 뽑아내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폭압의 식민지배를 버티고 이겨낸 투쟁의 역사를 찾아보기 위해 쿠바에 왔습니다.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을 걷고 자연의 위대함 앞에 겸손해지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그들의 문자만큼이나 유일하고 성스러운 이들의 종교사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 조지아에 왔습니다. 이와 같은 말을 한마디라도 내가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모조리 위증이다. 나는 왜 이 곳에 왔는지 마땅한 목적의식도 없이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누르며 헤실헤실 돌아다니는 경박한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단 한마디도 제대로 된 대답을 아직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일 게다.
따라서. 이 경험 일천의 여행초보의, 왜 거기 갔는지 대답할 한 마디 갖지 못한 이 초심자의 기록이란 게 결국 아무 이야기나 생각나는 대로 써갈겨내는 개인적 수기 이외에는 무엇도 아닐 것이다.
덧붙일 사실은 이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여행 이야기를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공간이 공유되고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만큼이나 모호하고 따분한 이야기도 없으니까. 한편, 자신의 여행 계획을 짜기 위해 필요한 열차 시간표라던가, 하다못해 ‘맛집’ 정보라도 없는 여행기라면 또 역시나 살펴볼 가치가 없을 것이 마땅하고. 그러니 인류의 집단지성을 더욱 살찌우고 위대한 문화유산을 더욱 빛내는데 전혀 공헌하는 바가 없을, 이 사적인 여행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개적인 곳에 놓아두기로 마음먹은 마당에, 이 정도 했으면 이제 (무려 오천 자에 육박하는) 변명도, 더 이상의 양해를 구하는 일도 그만 멈추어도 괜찮지 않겠나 싶다. 오히려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받아야 할 처지가 아닌가 싶다만.
채 쓰지 못한 여행기는 언제나 다음번 여행의 이야기가 덮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여행의 이야기들이 숙제처럼 그 위에 쌓일 것이다. 그렇게 켜켜이 눌린 이야기의 지층이 제법 깊어져, 이제 하나씩 파내어 먼지를 털어 보는 작업의 재미가 쏠쏠하리라.
멈추지 않고 걷고, 지치지 않고 써내 본다면. 나도 언젠가는 이 질문에 아주 근사한 대답 하나를 만들어 내 이름보다 오래 남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여행을 왜 떠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