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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에서의 표류

다시 동물이 되다

by 후안

“한 달 만에 자리에서 일어선 두 다리는, 걷는 법이 이제 까마득하다.

절름거리며 문밖을 나서보는 걸음 뒤로, 발자국이 무질서하게 찍히고. 따라서 나는 건강한 동물이 아니다.

이제 조금만 더 추워져 두 겹씩 문이 잠기면, 나는 정말로 무릎 아래로 뿌리가 돋아나 더 이상 동물이 못 될까 봐.

허겁지겁 채운 배낭을 짊어지고 큰길을 따라, 광장을 가로질러, 멀리, 도망을 시작했다.”

- 2018년 10월 28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의 기록.


비행기 바퀴가 셰레메티예보 공항 활주로에 닿은 후에도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던 까닭, 그리고 (고산지대가 대부분이었던) 이번 여행 내내 컨디션이 엉망인 몸을 힘겹게 끌고 다녀야 했던 연유는 이러하다.

으레 여행 출발일이 다가오면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놓겠다며 결승전을 준비하는 운동선수처럼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나를 밀어 넣곤 했지만, 이번 여행은 한 달 전부터 그야말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심어둔 한 그루 나무처럼 꼼짝없이 앉아서 출발 직전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서서히, 그리고 효율적으로 몸을 망가뜨리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선행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일, 그리고 돈이었다.) 하루 세 시간가량의 수면, 식곤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만 밀어 넣는 섭식과, 자꾸만 각성을 잃는 현대인의 나약한 두뇌를 긍휼히 여기사 거룩하신 화학의 힘을 녹여 넣은 각종 미래적 음용물들과 함께, 독방에 갇힌 죄수보다 더 긴 좌식의 시간과 더 적은 보행의 삶을 한 달간 성실히 행하는 것만으로도 두 다리에서 힘을 빼내고 육체에서 동물성을 지우는 데는 충분하였다. 오직 두 눈알만 짧은 구간을 오고 가길 반복하며 데스크 위에서 마디가 불거져가는 손가락만 까딱까딱거리다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저 창밖의 나무와 나를 구별 짓는 것이 무엇인가 싶어 정신이 또 아득해지는 시간을 보낸 후, 나는 곧장 모스크바로 날아간 것이다.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낸 고대 문명의 기계처럼 원래의 목적대로 작동하기를 멈춰버린 나의 두뇌가, 마침내 번쩍 정신을 차린 곳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물론 10월 말 모스크바의 차가운 공기도 한몫을 했겠지만) 키가 높은 아치문을 통과한 후 거대한 광장이 여태껏 본 적 없는 색감의 야경으로 눈앞에 펼쳐지던 순간, 자꾸만 쳐지던 눈꺼풀이 크게 열리고 다리에 꼿꼿한 힘이 들어오던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농도 높은 각성제 주사 한 방이 정맥을 타고 순식간에 퍼지는 것처럼, 끈적거리는 흙탕물 아래에서 얼굴을 불쑥 내밀고 마침내 큰 들숨을 쉬는 것처럼, 나는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총 같은 “아!”하는 짧은 탄식을 한 발 쏘아냈다.


마침 내가 지났던 입구는 ‘부활의 문(Voskresenskiye Vorota)’이었으니, 그 기운을 받아들여 잠들어있던 정신이 다시 살아났다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다만, 문을 지날 때만 해도 사실상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나온 곳의 뒤편, 부활의 문 남면에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예수의 부활을 담은 이콘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치고 만 것은 조금 아쉬운 일이다. 언제고 제대로 러시아 여행을 한 번 떠나자고 아내와 약속을 하였으니, 다음번에 기회가 또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러시아 친구들에게 언젠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볼 것이라 다짐의 말을 하였다.) 이 날 인천에서 아홉 시간을 날아 도착한 모스크바는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가기 전 레이오버 기착지로, 우리가 시내를 구경하고 다시 공항에 돌아올 때까지 허락된 시간은 고작 일곱 시간이 조금 넘을 뿐이어서, 우리의 걸음은 조금 서두르는 기색이 있었고, 짧은 유람의 시간만큼이나 붉은 광장에 대해 내가 기록할 수 있는 이야기는 길지 않다.



15세기 모스크바 대공국 시기에 세워진 크렘린 궁전과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 시기의 굼 백화점 사이, 광장은 두 구조물의 평행한 벽면을 따라 기다란 사각형의 모양으로 활짝 열려있다. 전혀 다른 지질시대의 퇴적층에서 파내 온 암석으로 쌓아 올린 듯한 황톳빛 성벽과 상아빛 건물벽의 대조가, 세계사 교과서에 줄 그어진 연대표처럼 이 곳의 시간을 명료하게 구획 짓는다. 지층이 쪼개어져 벌어진 틈으로 바다의 짠물이 고여 들고, 다시 그 물이 말라 소금기가 가득한 평원이 된 것처럼, 광장은 그 역사의 갈라진 틈에 허연 바닥을 드러내고 수백 년을 거기 누워, 혁명의 피를 받아 양생 되고 분열(分列)하며 전쟁터로 나서는 병사들의 군홧발 무게를 버티어 단단하게 굳었을 것이다.

몇 군데 열려있는 틈을 타고 이제는 조금도 화나 있지 않은, 적어도 오늘은 혁명을 꿈꾸지 않을 행복감에 젖은 군중들이 토요일의 밤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광장으로 흘러들어왔고, 나와 아내도 어지러운 그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 부유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광장의 모양을 닮은 길쭉한 사각형의 휴대전화를 치켜들어 사진을 기록하고 다시 몇 걸음 걷기를 반복한다. 그 작은 사각의 기계는 세슘 원자시계의 전능함을 빌려와 순간이 담긴 시간을 초 단위로 기록할 뿐 아니라, 위성과 교신하며 사진의 주인이 발 디딘 위치까지도 정확히 병기한다. 사진들은 곧장 네트워크를 타고 타임라인이라 이름 붙여진 각자의 비망록에 저장되고 친구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의 담화들이 차곡차곡 매달려 기록되어 갈 것이다. 한 인간의 짧은 개인사가 촘촘히 기록되는 저 작고 놀라운 물건이, 도시의 수백 년 역사를 담아낸 이 광장의 모양과 닮은 것은 어쩌면 우연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의 주머니 속 작은 광장 위에 개인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성실한 사관의 임무를 다한다.



광장의 중심에 닿았을 무렵, 나와는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의 풍경 속에 나는 가만히 멈추어 서보았다. 외계의 어느 별에 꽂힌 우주비행사의 펄럭이지 않는 깃발처럼 쓸쓸히 직립한 채, 나는 낯선 언어를 말하고 생소한 문자를 기록하는 다른 생김새의 인류들 사이에서 긴장과 떨림으로 심박수가 올라가는 기분을 즐긴다.

(군대가 차지하지 않은) 광장이란,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불규칙하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고 멈추고 빙글 돌고 서로를 부르고 끌어안고 흔들리며 스치고 비켜가지만 결코 부딪히지 않는 조화로운 공간이다. 마치 물 위에 뿌려진 꽃가루처럼, 사람들은 저마다 품은 생명의 기운을 싹 틔울 곳을 찾으며 숨 가쁘게 브라운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아인슈타인이시여, 당신께서 다시 돌아오신다면 이 곳에서 벌어지는 비통계적 요동을 설명할 공식을 명료히 써내실 수 있겠습니까.


광장의 테두리를 둘러싼 풍경들은 어떠한가. 중세 건축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위대하고 웅장한 조형들과 구조물들은 단 한순간도 잊히지 않겠노라 어둠에 저항하며 전등불을 쬐고 있다. 물론 화창한 하늘 아래 이것들을 놓아두고 바라보는 즐거움도 무척 큰 것이겠으나, 어느 도시에나 공평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 밝은 하늘과 구름이 닦여나가고 나면 지상에 눌린 것들이 더욱 존재감 있게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어디든 대도시의 야경이란 비슷한 구석들이 있어서, 죄다 유행하는 스타일로 메이크업을 하고 밤거리를 지나는 여인들의 얼굴처럼 서로 닮아 보인다는 점이다. 황금빛으로 조명, 거기에 비친 파사드의 단면들과 그림자 진 곳의 진한 대비감, 어둠의 무게로 육중해진 공기 속에 더 크게 깔리는 인파들의 발소리, 교차되는 그 발걸음 사이로 명멸하는 수백 년간 매끈하게 닳아버린 포석들, 고무 타이어들이 굴러가는 멀지 않은 아스팔트 도로에서 울려오는 공명음, 이러한 것들은 수백 년을 버텨온 오늘날의 유명 도시라면 모두 느껴지는 감상이라 나는 어쩔 수 없이 기시감을 느껴야만 한다.


기시감. 그러고 보니 특별히 이 곳에서 나의 마음 한 구석을 쿡쿡 찌르는 이 부조리한 감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텔레비전 뉴스나 영화를 통해 수도 없이 보아왔던 바로 이 장소, 바로 이 붉은 광장에서 (물론 그 풍경 속에는 거대한 미사일들이 군용 트럭에 실려 지나가고 있었지만) 내가 느껴야 했던 그 복잡한 감정들의 정체가 말이다. 더불어 내가 이 곳, 구 소비에트 연방의 심장인 곳에 올 수 있었다는 어리둥절한 놀라움, 한편으로는 이 유명한 장소에 드디어 내가 오고야 말았다는 감격스러운 성취감까지도 약간.

어디 여기 붉은 광장뿐이겠는가. 에펠탑 아래에서도, 트라팔가 광장 앞에서도, 콜로세움 안에서도, 카를교 위에서도 느꼈던 감정이 저것과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수 백 편의 영화로 학습한 뉴욕을 위시한 미국 전역의 대도시들에 가게 되어도 아마 그러할 것이며, 타지마할이나 피라미드 앞에서도 나는 오랫동안 멀리서 스토킹해 오던 사람과 마침내 대화를 나누게 된 것처럼 퇴폐적인 반가움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런 기분이, 전혀 모르는 곳에 내던져진 스트레스 상황에서 맛보는 엔돌핀의 달콤함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여행자는 조금 더 먼 곳으로, 조금 더 깊고 높은 곳으로, 여로가 더 험하고 객인이 적은 길을 따라 다음 목적지를 찍어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타향수병’이라고 번역해도 옳을지 모르겠지만, Fernweh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면으로 한 번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모스크바를 떠나고 나면 바로 이번 여행길이 그러한 여정이 될 것임에 분명했다. 왜냐하면 이제 길은 다시 국경들을 넘어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로 이어질 예정이었고, 나는 그곳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 바실리 대성당의 아름다움에 빼앗겼던 넋을 겨우 회수한 후, 버스킹 밴드가 시끌벅적하던 니콜스카야 거리에서 활기 넘치는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거대한 바위를 뚫고 우뚝 솟아오른 칼 마르크스의 흉상에 인사를 건네고, 길 건너 볼쇼이 극장의 닫힌 문까지 두들겨 본 후에, 우리는 공항으로 돌아가는 급행열차에 서둘러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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