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by 후안

묻는다


그날 나에게도 서슬 같은 언어가 있었다면

적선 받은 술에 익사할 듯 밤을 탕진하지 않고

빳빳한 백상지 위에 볼을 구겨 잠들지 않고

나에게도 시퍼렇게 날 선 말들이 세습되었다면

연고 없는 방안에 누워 행려병사를 기다리지 않고

무딘 펜 끝으로 긁어 쓴 미완의 거짓말로 공갈하지 않고

내 혀 밑에도 시퍼렇게 독이 오른 면도날 같은 말이 있어

단칼에 네 심장의 피를 받아낼 수 있었더라면


나는 구원받았을까

종양처럼 부풀어 매달린 흉터들 슥슥 베어내고

비명 지르고 통성하던 모가지들 죄다 따버리고

핏줄도 끊고 악연도, 그래 선연도 끊고

발목에 감기는 대학노트의 창백한 줄금마저

남김없이 모조리 잘라버릴 수 있는

시이퍼렇게 벼린 그런 언어가 나에게도 몇 마디 있었다면

날 구원할 기도문을

나는 결국 썼을까


아니면

충수처럼 쓸모를 찾지 못한

내 검은 혓바닥 하나 겨우 끊어 던지고

시간에 짓밟혀 로드킬 당한 채로

한 삼십 년 썩지 않고 죽어있었어도

그래도 마냥 괜찮았을까


주머니 안에서

오래된 분실물을 더듬다가


나는 손을 높이 들어

마침내 묻는다